둘째 녀석도 이제 사춘기구나
둘째가 갑자기 애교를 부리면서 다가온다.
뭔가 쉽지 않은 부탁을 하려는 애교 섞인 목소리다. 이런 건 안 가르쳐줘도 참 잘한다.
"왜? 뭐 주까?"
"그게 아니고요 엄마..."
라고 하면서 이만 원을 건넨다.
"이게 뭐야?"
"아니~~ 엄마~~ 저 사고 싶은 게 있는데 이걸로 좀 사주시면 안 돼요?"
이미 내 휴대폰으로 검색까지 해서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철두철미함!!
자기 용돈으로 사고 싶다는데 무조건 안돼라고 하는 것은 쿨한 엄마의 모습이 아니다. 마지못한척하며 일단 결재 버튼을 눌렀다. 내가 안 사주면 언니를 이용할게 뻔하다. 그럼 내 울타리를 벗어나기 시작할 테니 긴장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영특하다는 걸 늘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 다 가진 듯 기뻐하는 아이를 보니 이게 뭐라고 그렇게 좋을까 싶다. 큰 아이 때 이미 한바탕 아이돌과의 전쟁을 치렀던지라 다시 그 패턴이 돌아오는구나 싶었지만 뭔가에 집중해보고 에너지를 쏟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어 굳이 말리진 않는다. 뭐든 과하지만 않으면 문제 될 건 없다.
큰 아이는 용돈이 생기는 족족 아이돌 굿즈와 앨범을 사들여서 나와 많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는데 결국 자기가 알아서 다시 되파는 식으로 해결하는걸 본터라 용납할 수 있는 선에서의 덕질은 그냥 봐주기로 한다.
"엄마,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좀 과하게 샀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안 그러려고요"
거짓말처럼 그 이후부터는 좋아하는 아이돌의 포카(포토 카드)도 예전만큼 사지 않고 음악 위주의 순수한 덕질을 하기 시작했다. 사랑은 변하는 거라 좋아하는 아이돌도 계속 바뀌었다. 그렇게 우리 큰 아이를 거쳐간 아이돌만 대략 열 그룹은 넘는 거 같다. 그들은 꿈에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이가 조금씩 아이돌을 좋아하는 방법을 진화시키는 걸까? 아님 다 해본 자의 여유인 것일까? 여하튼 내 기준에선 쓸모없는 굿즈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날 밤에 밥 먹다가 아이들과 덕질과 굿즈에 대한 얘기를 잠시 나눴다. 한참 얘기하다가 라테는 말이야 책받침이란 게 있었지 그래서 좋아하는 연예인들 책받침 모으는 거 많이 했었다며 남편과 나는 서로 누구 거를 샀느냐 신이 나서 한창 얘기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
"엄마~ 책받침이 뭐예요?"
아차! 얘들은 그걸 모르는구나. 우리 때는 공책 밑에 받치고 썼었는데 그러고 보니 요즘 아이들은 책받침 자체를 안 쓴다. 알턱이 없지..
"엄마는 그럼 누구 좋아했어요?"
"엄마는 변진섭~~"
"변진섭이 누구예요?"
"응, 있어"
설명해본들 알 리가 없다. 변진섭 오빠도 책받침도 잘못은 없다. 야속한 세월 탓을 해야지 어쩌겠는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티브이는 만화만 보던 아이가 이젠 만화가 시시하다며 엠넷 방송만 본다. 언제 다 외웠는지 잘도 따라 부른다. 몸치 박치인 아이가 또 언제 춤 동작은 익혔는지 어이가 없다. 아이가 즐겨보던 만화를 안 보기 시작하면 사춘기가 시작되는 신호탄이란 느낌이 드는데 이렇게 우리 둘째도 으른의 세계로 한 발짝 내딛는 연습을 하는 건가?
큰 아이의 사춘기를 겪으면서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마다 그 세계는 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거 같아 살짝 긴장하게 된다. 닮았지만 다른 듯 둘째도 이제 나름의 성장통을 겪게 되겠지. 최대한 우리 사이가 멀어지지 않게 아이의 아이돌에 대해 공부를 좀 해볼까?
아이의 세계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와 공유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 이야기의 소재거리는 더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더보이즈 기다려~ 내가 곧 접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