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와의 데이트를 이어가며.
센터 상담 이후로
첫째 아이와의 월요일 데이트를 지속하는 중이다.
상담 선생님의 제안으로
첫째 아이와 엄마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틈이 날 때마다 확보하는 중이다.
엄마가 출근하지 않는 매주 월요일,
아이의 하교시간인 12시 40분이 되면
학교의 중앙현관 앞으로 아이를 만나러 간다.
아이는 활짝 핀 얼굴로 학교 건물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아이와 나는,
오로지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12시 40분부터 3시 20분까지는
우리 둘만의 시간이다.
첫째 주엔,
아이가 좋아하는 딱지를 사러 대형 문구점에 다녀왔고,
둘째 주엔,
동생이 등원하지 않는 바람에
셋이서 울산 외곽에 있는 책방 카페에 다녀왔다.
그리고 셋째 주엔,
‘이제껏 해보지 않은 일’을 하자는 아이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비 오는데 우산 안 쓰고 뛰어다니기,
맨발로 재주넘기 등을 하자고 할 줄 알았지만
아이의 하고 싶은 일은
나의 상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한 것이었다.
아이는 용돈을 모아둔 저금통을 열어,
엄마에게 1,800원을 건넸다.
그리고 자기 손에도 똑같이 1,800원을 쥐고
동네 마트에 가서 과자를 사 먹자고 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새우깡이 1,800원인 것을
마트에서 미리 확인했단다.
우린 그날 평소에 하지 않은 일을 했다.
아이의 용돈으로 과자를 사 먹고
집으로 돌아와 느긋하게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아이는 그림을 그렸고,
엄마는 책을 읽었다.
아이에겐 5월까지만, 엄마랑 데이트하자고 해 두었다.
6월부턴 엄마도 월요일마다 볼일을 보고
집안을 좀 가꾸어야 한다고..
그런데, 이번 주를 지내고 보니
아이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진다.
별것 아닌 일에 이렇게 행복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더라도 이렇게 평온한데,
칼로 무 자르듯
우리의 데이트 횟수를
굳이 뚝! 자를 게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우리의 데이트는 3주 차까지 무사히 진행 중이고,
아이는 확연히 안정을 찾아간다.
육아는 기다림의 연속이라 했던가,
가만히 기다리진 못했지만,
어쨌든 기다려왔다.
아이가 점점 안정을 되찾아 가는 중이다.
아이가 점점 일상을 찾는 중이다.
학교를 향해 걷는 아이의 발걸음이 한층 더 가벼워졌다.
등굣길 아이의 얼굴에서 밝은 미소를 엿본다.
아이가 학교를 어려워하지 않은 지
이제 겨우 2주 차다.
‘이걸 믿어 말어?’
하는 마음으로 첫 주를 보냈고,
‘이왕 되찾은 일상, 즐겨보자!’
하는 마음으로 둘째 주를 보내는 중이다.
아이는
“엄마, 오늘 하루만 학교에 안 가면 안 돼요?”
하는 말 대신,
“엄마 이따가 태권도 끝나면 데리러 나오실 거죠?”라는 말로 엄마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그 말이 얼마나 고맙고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아이의 그 말이 내 귓가에는 이렇게 들리는 것만 같다.
“엄마, 학교는 당연히 잘 다녀올 거고요~
이따가 학교 끝나면 우리 빨리 만나요!”
건강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아이의 밝은 마음이 내 마음까지 환히 비추는 것 같다.
아이의 등교거부의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이제 막 빛을 찾아 나서는 중이다.
이걸로 아이의 고민과 어려움이
완전히 막을 내렸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아이의 어려움과 맞섰고
할 수 있는 일들은 부지런히 찾아서 해냈다.
선배 엄마들의 애정 어린 조언이 그랬던 것처럼,
‘기다림’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성향에 따라
기다림의 형태는 조금씩 달라지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는 아이가 겪는 어려움의 불구덩이 속에
온몸으로 같이 뛰어들었다.
의도하고 말 것도 없이,
내 육아 방식이 그랬고,
내 마음이 그렇게 생겨 먹었기에,
믿는 대로 따랐다.
이성적으로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고 싶었고,
일희일비 하지 않는 강인한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한 결심을 하고 뒤돌아서자마자
내 마음은 일희일비하며 날뛰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던,
나를 아끼는 이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엄마가 불안한 기색을 보이면 아이는 더 불안해할 거라고..
그러니 조금 진정하고 아이를 바라보라고...
맞다 싶은 조언들은 최대한 따르려고 애를 썼다.
아이가 없는 곳에선 마음껏 불안해했다.
힘들 땐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옷소매에 눈물을 훔쳐냈다.
그리고
아이와 마주할 때면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를 대했고,
아이와 대화를 할 때면
목소리 톤부터 ‘하나언니’ 목소리 톤으로 싹 바꾸고
가벼운 척 대화에 임했다.
불안을 최대한 감추었다.
쿨한 엄마인 척 아이를 대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꼬옥 안아주고
사랑을 고백하는 일도 꼬박꼬박 해냈다.
아이와 나와 남편,
우리는 그렇게 같이
아파하며
보듬으며
기다려왔다.
여전히
“우리 아이 학교 생활은 완벽합니다!”
외칠 수는 없지만,
변화는 분명 일어나고 있다.
긍정의 변화가.
어떤 일이건
결국 끝이 있는 법이다.
다만 그 끝에 대한 믿음이 견고한 사람은
과정이 조금 더 버틸만한 것이 되고,
끝에 대한 믿음에 흔들림이 있는 자는
그 과정 또한 거친 자갈밭이 되는 것이다.
어떤 모양의 길을 걷고 있건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는 부모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일단 걷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