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지 30일.
아이들이 방학을 끝내고 학교와 선교원으로 돌아가고 퇴사 후 처음으로 나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한다.
아이들을 보내고 급하게 거실 정리를 하고 출근하던 그때와는 마음가짐부터 사뭇 다르다. 급했던 마음, 그리고 쫓기던 마음은 사라지고 느긋함이 그 자리를 채운다.
퇴사 전.
5시-5시 30분에 기상을 하고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그날의 글을 발행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리고 간단하지만 빠르게 아침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등교, 등원시켰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10분쯤 휴식을 취하고(임신 후 기준) 9시 15분경까지 재빠르게 거실 정리 후 출근!
여기까지가 퇴사 전 오전 시간을 보내는 법이었다.
일분일초가 아쉽고 아까워서 동동거리는 나의 모습을 자주 마주했다. 조각난 시간들을 어떻게 해서든 활용해 보려고 애를 쓰고 조금이라도 시간이 낭비되는 날에는 후회를 하며 땅을 쳤다. (아- 너무 극단적인가….)
하여간 그땐 그랬다. 시간에 집착했고, 시간을 낚는 어부처럼 어떻게 해서든 내 시간을 확보하려고 애를 썼고 아이들에게도 “빨리빨리”라는 말을 침을 삼키는 횟수만큼이나 자주 내뱉었다.
그렇게 빠듯했던 시간이 퇴사를 하게 되며 속도를 서서히 늦추기 시작했다. 언제나 고속도로 갓길을 꾸역꾸역 달리듯 살아왔던 게 이전의 삶이었다면, 이제는 국도를 내 페이스에 맞추어 달리는 기분이다. 그동안은 스치기만 했던 경치도 천천히 구경하며 달리는 그런 기분.
퇴사 후.
오전 6시경에 기상을 하고 지난밤의 블로그 댓글을 살피고, 오늘은 어떤 글을 쓸지 천천히 생각에 잠긴다. 아침에 글을 끝내면 좋지만, 혹시 그렇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을 보내고 여유 있게 쓰면 된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역시 글은 새벽이 좋다. 요즘은 다시 조금 더 일찍 일어날 생각을 하는 중이다.)
어떤 날은 남편의 셔츠와 바지도 다려주고 여전히 간단하게 아이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8시 30분이 채 되기 전에 두 아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15분쯤 쉬기도 하고 곧바로 집안일에 돌입하기도 한다. 살랑살랑 기분이 내키면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 거실 정리부터 쓱싹쓱싹 청소를 한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 나지 않고 해도 해도 다시 생겨나는, 지루한 노래의 후렴구 같다.
기분에 따라 이른 점심 또는 느지막한 시간의 점심을 챙겨 먹고 (자꾸 라면이 먹고 싶어 큰일이다.) 이제는 슬슬 아기 옷 빨래도 하고 집안에 개보수할 것들을 챙겨 출산 전에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운다. 그러다 커피 한 잔이 생각나면 디카페인 믹스로 살살 타서 에이스 크래커와 함께 호로록 마신다. 의식의 흐름대로 하루가 살아진다. 뭐가 좋은지는 아직까지 판단하고 싶지 않고 퇴사 전과 후의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 것만큼은 확실하다.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 만큼 생활비의 무게도 달라졌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두고 보았을 때 퇴사 전에 비해 지금은 그 가치가 훌쩍훌쩍 뛰어 올라가 있음을 느낀다. 여전히 챙겨야 할 것들과 사야 할 것들은 생겨나는데 지갑을 움켜쥔 마음은 점점 좁아진다. 그럼에도 또 살아질 것이고 살아내야 한다.
지금은
이제 막 시작된 퇴사 후의 삶을 누리는 중이다.
느릿해진 시간의 흐름이 좋고, 아이들에게 더 이상 빨리빨리 채찍질하지 않아도 되는 엄마로 사는 것도 좋고 가끔은 남편 옷도 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다.
이 여유 또한 10월이면 새 식구를 맞아들이며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버릴 것을 안다.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끝이 있다는 걸 알 때에 버틸만하고 누릴만하다. 길 끝에 벌써 변화가 보이고 있다. 작은 꼬마 손님이 우리들의 삶 속으로 입장할 채비를 하고 있다.
또 바뀌어질 시간의 속도와 삶의 모습을 일단은 기대하기로 하며, 오늘은 오늘의 것을 가만히 누리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