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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4

by 다니엘라


*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셨다면, 함께 읽으셔야 할 글이 있어요. 아래 1, 2, 3편 먼저 읽어주세요. ^^


이왕 이렇게 글로 만나게 되었으니 저는 부지런히 쓸 테니 독자님은 애정을 담아 읽어주세요. 좋아요 꾸욱! 그리고 응원의 댓글도 기다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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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진 액세서리 상자와 여행용 트렁크를 정리하던 곱슬머리의 세 번째 격리 메이트는 먼저 아는 체를 한다.


“Hola!”


“Hola!”


내쪽에서도 금방 경계를 풀고 인사를 건넨다.


우당탕탕 소리를 낸 주범 치고는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기 이름은 ‘아나(Ana)’이고 쌍둥이 동생과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열린 카니발 축제에 갔다가 에콰도르를 거쳐 멕시코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어디에서 옮았는지도 모를 지랄 같은 역병에 걸려 이곳에 며칠 더 머물러야 하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온화한 얼굴과는 달리 표현이 거칠었지만 명랑하고 사교적인 그녀와 함께라면 일주일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


아나는 짐 정리를 하면서도 콧노래를 불렀고, 콧노래를 부르면서도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나와 쌍둥이 동생 셀레네는 멕시코에서 타코와 엠빠나다를 전문으로 파는 음식점을 운영 중이란다. 브라질 리우에서 열리는 축제는 그녀들이 개업한 지 3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여행이란다.


“일 년 전부터 항공권을 예매하고 여행을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코비드 19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거야. 나참, 황당해서. 동생이랑 나는 일단 걸리지만 말자고 조심조심했지. 리우에 가서 코비드 19에 걸려 땅에 묻히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여행은 떠나기로 했지. 셀레네도 나 못지않게 노는 일은 절대 양보가 없거든. 그래서 여태 코비드 19에 걸리지 않고 잘 버티다가 여행까지 온 거야. 아니 근데 집에 갈 때가 되고 보니 셀레네가 열이 좀 나더라? 워낙 독한 애라 혼자 끙끙 대다가 말더라고. 괜찮은 줄 알았지. 그런데 오늘 코비드 19 검사에서 둘 다 덜컥 양성이 나와 버린 거지. 가게 문 닫고 나온 지가 벌써 열흘인데, 일주일 더 놀게 생겼네. 좀 더 놀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지. 큭큭.”


“그랬구나. 그럼 네 동생, 그러니까 셀레네는 괜찮은 거야? 열이 났었다면서? 증상이 있으면 다른 방으로 배치되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까 말했잖아 그년이 꽤나 지독하다니까? 하룻 저녁 열이 나서 꽁꽁 싸매고 자더니 곧바로 괜찮아졌어. 코비드 19도 항복하는 인간이라니까. 하하하.”


“아아. 하하하.”


대화 내용을 들었는지, 아니면 격리 병동 복도에서 누군가와 한판 붙고 들어 온 건지 잔뜩 구겨진 얼굴의 또 다른 아나가 걸어 들어왔다. 셀레네였다. 왼쪽 눈가의 회색빛 점만 빼면 아나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아 있었다.


“어, 셀레네 인사해! 여긴…. 저, 아까 이름이 뭐랬지?”


“지… 서연인데.. 편하게 ‘연’이라고 불러.”


“그래 지.. 소우연? 수연?…에잇.. 모르겠다. ‘연’이야 인사해 셀레네.”


“Hola!”


“Hola! mucho gusto!(안녕. 반가워)”


활짝 웃으며 건넨 인사가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셀레네는 벽을 향해 인사말을 던진 뒤 차갑게 등을 돌려 짐을 풀기 시작했다.


“별난 지지배. 연! 신경 쓰지 마. 항상 저런 식이야.”


무안함을 눈치챘는지 아나는 나의 시선을 애써 다른 곳으로 돌렸다.


“15분 있으면 저녁이 나온다는데? 식당은 따로 없다고 여기 앉아서 먹고 도시락은 폐기 통에 집어던지면 된다 그러네? 어떤 꿀꿀이죽을 주려나, 한번 기다려 보자 큭큭. 그런데 저 여자애는 누구야? 아까부터 잠만 자네? 쟤는 증상이 있는 애야? 숨은 쉬고 있는 거지?”


“아직 나도 잘은 모르는데, 나랑 이야기하다 말고 갑자기 잠이 들었어. 곧 일어나겠지.”


아나와 셀레네 두 자매는 끊임없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짐을 정리했다. 짐을 꺼낼 기분도, 그럴 만한 흥미로운 짐도 없는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서 복도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잘도 흘렀다.


‘딩동댕동, 딩동댕동.’

하는 단순하고 명확한 알림음이 복도 전체에 울리더니 각방 앞으로 큼지막한 도시락이 배달되었다. 어제도 그제도 봉사단 숙소 근처에서 사 먹었던 닭다리 구이다. 훌훌 날아가는 쌀과 계란 후라이, 닭다리 구이 하나 그리고 으깬 감자다. 이나라 사람들은 닭고기를 어지간히도 좋아하는가 보다. 어딜 가도 닭 닭 닭.

눈치 없는 배꼽시계는 따르릉 거리며 울려댄다.

하는 수 없이 도시락을 받아 들고는 같은 방 격리 메이트들에게 나누어 준다. 언제 잠에서 깼는지 긴 생머리의 그녀도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긴 생머리 그녀와 나머지 멤버들과의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그 틈에 그녀의 이름을 알아낸다. ‘안드레아’.

식사를 하는 중에도 음식을 잔뜩 구겨 넣고 떠드는 이는 아나뿐이다. 셀레네는 지겹다는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안드레아는 한 번 씩 억지웃음을 지어주며 식사를 이어갔다. 적극적인 호응을 하느라 도시락을 절반도 먹지 못한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었다. 도시락을 모아서 폐기함에 넣는 일까지 마치면 오늘의 공식 일과는 마감이다.


멤버들이 도시락을 한 곳으로 막 모으기 시작하는데 안드레아가 갑자기 휘청 하더니 자기 자리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호흡은 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쓰러진 건가? 갑자기 쉬는 건가?’

판단할 새도 없이 아나가 복도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푸른 가운을 걸친 의료진을 둘이나 데리고 우리 방 쪽을 향해 달려오다시피 한다. 늘 한 박자 씩 느린 나는 그저 안드레아와 의료진들만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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