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웃 vs 오지랖퍼
일명 치킨 구출 대작전!
지난밤 치킨 한 마리를 구출해 냈다.
우리 가족은 치킨계의 형사가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리고 결국 치킨을 무사히 구출해냈다.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띵동!”
벨 소리가 울렸고 남편이 현관으로 향했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무슨 일 일까?’
남편은 한 손에 배달 치킨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여보 우리 치킨 시켰어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치킨 안 시켰는데….”
“어, 이거 803호로 갈 치킨이 여기로 왔나 보네.”
“배달 사고네. 그럼 제가 옷 입고 있으니까 8층에 올려다 놓고 올게요.”
남편과 아이들은 가벼운 속옷 차림, 나는 원피스 차림.
몸은 무거웠지만 치킨을 기다리고 있을 8층 이웃분들을 생각하니 한시라도 빨리 배달을 해 주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그때 배달원 분을 불러 세웠더라면 일이 비교적 수월 했을 텐데, 두 개 층만 올라가면 되니 직접 배달을 해 주는 것이 간단할 것 같아 치킨을 들고 8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배달원 분이 하셨던 것처럼 803호 앞에 치킨을 두고 벨만 한번 눌러 주고는 집으로 내려왔다.
집으로 들어서자 남편이 묻는다.
“803호꺼 맞대요? 여보?”
“모르겠는데요. 저는 여보가 803호라고 하셔서 확인도 안 하고 그 집 앞에 그냥 두고 왔죠.”
“아, 저도 되게 대충 본 건데…. 확인을 해 봐야겠네요.”
평소 같았으면 남편에게 부탁을 했겠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몸과 마음이 가벼웠던 저녁이라 또다시 8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주문서를 제대로 읽었다.
[306동 603호]
배달 기사님이 배달을 제대로 잘못하셨다.
우리는 304동, 배달되어야 할 곳은 306동.
남편은 노안인지 야맹증인지 때문에 603호를 803호로 봤고, 간단할 줄만 알았던 배달 사고에 깊이 관여하게 되고야 말았다.
마음이 급해졌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영수증에 나온 안심 번호로 치킨을 받으셔야 할 분들께 전화를 드렸다. 여긴 304동인데 306동 치킨이 와 있노라고… 일단 치킨집에 연락을 취해드리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오지랖이었는지, 치킨집에 연락을 드렸더니 배달원 분께 다시 연락을 해서 재 배달을 하시겠단다.
‘치킨 다 식는데….’
오지랖을 한단게 더 업시켜 산책도 나갈 겸 우리가 대신 306동으로 배달을 해 드리겠다고 사장님께 말씀을 전했다.
“아니 이거 죄송해서 어쩌지요.”
하시는데 치킨이 식을까 봐 걱정하는 건 나뿐인 것 같다. 신속 배달에만 마음이 온통 집중되어 있어 어느 순간부터 사장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도 얼른 가져다 드리자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아이들은 덕분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 놀 수 있게 되었다고 신이 났다.
온 식구가 집을 나서서 두 개의 조로 나누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광장에 나가 자전거를 타고 나는 치킨 배달을 하기로….
306동으로 건너가 집 앞에 치킨을 두고 벨만 누르고 호다닥 내려오는 것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어설프게 오지랖만 넓었던 탓에 이리저리 전화를 걸고 몇 분을 지체했지만, 결국은 주인 손에 안전하게 치킨을 전달한 것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사건이 있고 하룻밤이 지난 시점에서 곰곰이 상황을 되짚어 본다.
나는 그저 치킨이 식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고,
306동의 식구들에겐 익명의 좋은 이웃이 되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온갖 오지랖을 떨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누군가가 ‘참 고마운 이웃이네.’ 하고 생각하며 기분 좋은 저녁을 보내기를 바랐다.
그런데 잘 따지고 보면 내 생각과 같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치킨을 주문하신 분 입장에서는 치킨을 좀 늦게 받더라도 치킨집과 직접 상황 정리를 하고 싶었을 수 있다.
깔끔하게 말이다.
짧은 순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기쁨에 물불 가리지 않고 만삭의 몸으로 나섰는데, 그 기쁨은 하룻밤만에 아쉬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오히려 상황을 어지럽게 만들고 몸은 몸대로 고되었다는 기분에 어젯밤 사건은 친절이었다기보다는 선을 넘은 오지랖이 아니었나 싶다.
아쉽지만 별난 경험을 한 것으로 만족을 하고, 또다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조금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거면 된 거다.
부디
306동 식구분들이
치킨을 따끈하게 잘 드셨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