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셨다면, 함께 읽으셔야 할 글이 있어요. 아래 1, 2편 먼저 읽어주세요. ^^
이왕 이렇게 글로 만나게 되었으니 저는 부지런히 쓸 테니 독자님은 애정을 담아 읽어주세요. 좋아요 꾸욱! 그리고 응원의 댓글은 저와 뱃속의 아가를 함께 춤추게 합니다.
아래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1,2편’의 링크를 걸어두었어요.
https://brunch.co.kr/@felizdani410/320
https://brunch.co.kr/@felizdani410/322
꿈 많던 소녀 ‘서연이’는 어디로 간 걸까. 평생 커리어우먼을 꿈꾸던 활발했던 서연이는 어디로 간 걸까. 패기 넘치던 그 서연이는 온데간데없고, 몸과 마음을 바닥에 내동댕이 친 사연 가득한 ‘사연이’만 거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계속 이대로 삶을 이어나가는 건 의미가 없었다. 나와 남편, 그리고 가족의 행복을 송두리째 뽑아내고 있는 게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걸치고 있던 우중충한 거적때기 같은 옷을 벗어던지고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몸과 마음을 깨우는 작업이 필요했다. 몸을 깨끗하게 씻어 내고는 외출복과 실내복의 경계에 있는 단정한 옷을 찾아 입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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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아무래도 나 다시 무언가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서연’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싶어요. 그동안 진짜 나를 잃고 살아온 기분이 들어요. 여보가 저한테 이것저것 해보라고 했던 것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그때 당신의 목소리는 허공에서 불명확하게 울리는 메아리 같았거든요.
사실 그동안은 당신의 말들을 듣고 싶지도 않았어요. 내 삶에는 더 이상 색채도 없고 향기도 없어져 버렸다고만 생각했어요. 희망이라는 건 더더욱 없고….
그런데, 이젠 아니에요.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어요. 다시 내 색깔을 찾고 내 향기를 찾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인지 지금 이 순간 강한 행복감이 밀려와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내가, 나 조차도 외면해왔던 내가 다시 살아난 기분이거든요. 다시 지서연 만의 폐로 호흡을 시작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도와주세요. 뭐라도 좋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당신도 합께 고민해 주세요.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책을 읽는 일이에요. 육아서나 이유식 책 말고, 나를 깨우는 책들을 읽고 싶어요. 아이가 자는 동안, 내가 눈뜨고 있는 시간 동안 나를 위한 책들을 마구 읽어내고 싶어요.
나 늦지 않았겠죠?
나 다시 삶에 대한 의욕으로 가득 찼던 지서연으로 살아갈 수 있겠죠? 그렇죠 여보?”
그날 저녁 남편은 평소보다 이른 퇴근을 했다.
왼쪽 어깨에는 회사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가득 담긴 에코백을 메고 있었고, 오른쪽 팔에는 파스텔 톤의 꽃을 한 다발 안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아내의 우울증으로 마음껏 웃지 못하고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온 남편은 오래 간만에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6개월간 오로지 책만 파고들었다. 남편이 회사와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다 주는 책과 중고로 구매한 책, 그리고 새 책을 가리지 않고 읽었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한 대로 움직였다.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블로그를 시작했고 일기로 시작된 매일 글쓰기는 결국 소설까지 낳게 된 것이다.
산후 우울감에 시달리며 나를 잃어버린 날들을 지나 책으로 수혈받은 삶의 끝에는 글쓰기가 있었다. 그렇게 매일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 되었고 글을 쓰다 보니 삶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도전한 것이 해외 인터넷 봉사단이었다. 그렇게 해서 떠나온 곳이 에콰도르였고. 그렇게 해서 격리된 곳도 이곳 에콰도르 땅이 되었다.
눈물을 거둔 나의 첫 번째 격리 메이트는 감정을 추스르는가 싶더니 앉아 있던 침대에 뒤돌아 누워 고른 숨소리를 유지했다. 하얀색 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이 지루해지고 달리 할 일이 없던 나도 어느새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쿠당탕탕.’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소음에 눈을 떴다. 몸을 돌리지 않은 채 귀를 기울였다.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이길 간절히 바라며 기다렸다. 또 한 번 작은 금속 제품이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스페인어로 나직하게 다투는 두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져온 짐을 정리하던 중에 쏟은 모양이다. 한 사람이 문을 박차고 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더 이상 그림자처럼 누워 있을 수만은 없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우리 두 사람이 잠든 사이에 방에는 두 개의 간이침대가 더 들어와 있었다. 침대 네 개가 꽉 들어찬 방은 겨우 문밖으로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여유 공간만 허락이 되었고, 방에서 머무는 동안엔 모든 일을 침대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방 배치가 마무리되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과 한 침대를 쓰는 것만큼 끔찍하지는 않았지만 네 개의 침대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처음 방에 들어섰을 때만큼이나 실망스러운 광경이었다.
쏟아진 액세서리 상자와 여행용 트렁크를 정리하던 곱슬머리의 세 번째 격리 메이트는 먼저 아는 체를 한다.
“Hola!”
“Hola!”
내쪽에서도 금방 경계를 풀고 인사를 건넨다.
우당탕탕 소리를 낸 주범 치고는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기 이름은 ‘아나(Ana)’이고 쌍둥이 동생과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열린 카니발 축제에 갔다가 에콰도르를 거쳐 멕시코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어디에서 옮았는지도 모를 지랄 같은 역병에 걸려 이곳에 며칠 더 머물러야 하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온화한 얼굴과는 달리 표현이 거칠었지만 명랑하고 사교적인 그녀와 함께라면 일주일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4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