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니엘라 Nov 16. 2023

분수와 소수, 한글, 그리고 걸음마

터울 큰 삼둥이 양육의 찬가

분수와 소수.

우리 집 첫째, 사 학년 형아에 관한 키워드다.

분수와 소수를 배우고 인수분해의 기초 지식을 쌓아가는 우리 집 첫째는, 다 컸다는 말을 밥먹듯이 듣고도 아직 덜 자란 사 학년 형아다. 아직 덜 자란 이유는 여러 가지를 댈 수 있지만, 아직도 밤이면 베개를 끌어안고 둘째, 셋째와 내가 자는 안방으로 쳐들어 와 자리를 잡고 잔다. 오늘만 엄마 옆에서 자겠다는 말을 몇 년째 반복 중인지 모르겠다. 아이 셋에 나까지 한방에서 밤을 보내다 보니 비좁은 데다가 밤새 이산화 탄소가 가득 차 방 안의 공기가 탁해지는 게 영 불편하다. 그럼에도 아이 셋을 모두 끼고 자는 일도 머지않아 끝나버릴 것을 알기에 지금은 그저 '영광'으로 여기며 누리려 한다.   


한글 떼기.

우리 집 둘째, 일곱 살 형아에 관한 키워드다.

한글을 떼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우리 둘째는 비교적 독립적인 성향의 일곱 살 형아다. 애교가 많은 둘째는 막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우리 집의 딸 역할을 하며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지만, 지금은 진짜 딸로 태어난 막냇동생과 귀여움을 나눠 받는 중이다.


걸음마.

우리 집 셋째, 이제 막 돌이 지난 막내딸에 관한 키워드다.

첫째 오빠와는 아홉 살 터울, 둘째 오빠와는 다섯 살 터울의 완전한 막내딸이다.

귀엽고, 귀여우며, 귀엽다.


우리 집의 양육 대상은 학령기의 아이와 아직은 까부는 게 최고인 유치원생 아이, 그리고 A부터 z까지 전적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영아기의 아이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2013년 12월에 첫째 아들을 낳았고, 그날부터 시작된 육아는 오래지 않아 양육의 단계로 뛰어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첫째 출산 4년 후 둘째를 향한 새로운 육아가 시작되었고, 그것으로 정말 육아는 마감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로부터 5년 후 또다시 셋째를 향한 새로운 육아가 시작되었다. 육아에서 양육으로 넘어가는 기준을 만 7세로 잡는다면, 나의 육아는 16년짜리 대규모 사업인 것이다. 육아를 양육에 포함시키고 기본적인 양육이 끝나는 시기를(결혼 전 AS기간 제외)만 20세로 본다면, 나의 양육 사업은 29년짜리의 국가 공공사업급에 해당하는 대대적인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그렇게 봤을 때, 여자인 나의 결혼 이후의 삶은 애만 키우다가 다 끝난다는 어미의 삶의 본질에 충실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결혼 이후에 거의 평생을 아이들 양육에 바치는 셈이다. 이 만큼 성경적인 삶이 또 있을까? 내게는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인 동시에 진지하게 생각하다 보면 현타가 훅! 치고 들어오는 약간은 슬픈 일이기도 하다. 정말로 애들 삼시 세 끼만 먹이다가 이 세상 하직하는 날을 맞을까 봐.


셋째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2022년 봄, 축하한다는 말만큼이나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계획해서 가진 거예요? 아니면 실수예요?"였다. 위의 아이들과 터울이 큰 데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임신이었기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적절한 질문이었겠으나, 아이를 품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이것만큼 시시한 질문도 없었다. 건강한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기는 데 실수라는 게 있을 리가 있나. 아이가 생기는 건 우리 부부에겐 언제나 축복이었다. 셋째 아이를 갖기 1-2년쯤 전부터, 우리에게 만약 아이가 한 명쯤 자연스럽게 더 생긴다면 낳아서 키워보자는 말을 주고받곤 했다. 둘째 아이를 가질 때처럼 '반드시 가져야 해!'의 마음은 아니었지만 '생긴다면 그 아인 우리 집 막내!'라는 마음으로 우리 부부는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젠 나이가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생기는 셋째에 대한 욕심은 버리자는 마음을 가지려 할 때쯤 아이가 들어섰다. 그리고 지금, 우리 집 막내는 건강하게 잘 태어나 온 가족의 사랑과 귀여움을 듬뿍 받으며 성장하는 중이다. 아들도 정말 좋지만, 딸도 정말 좋다는 걸 골고루 낳아보니 알 것 같다.


아이만 키우다가 인생이 끝나버리는 일은 나에게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까만 밤을 즐기며, 꿈을 품고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낮에는 엄마, 밤에는 작가로 활동 중인데 나에게 무슨 아쉬움이 있을까. 풀타임 작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주 조금은 거시기하지만, 이 지구상에 온전한 풀타임 작가가 몇이나 있을까. 게다가 나는 아이들 덕분에 동화도 쓰고 에세이도 쓸 수 있으니 아이들은 나에겐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축복이며 보석들이다.  


나는 아주 보통의 요즘 사람들보다 육아 기간이 길어질 예정이다. 양육 기간 또한 길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내가 키우는 이 보석들은 오래오래 뒹구르고 갈고 닦여서 이 땅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을 주는 존재들로 자라날 예정이다. 그리고 나 역시 우리 집의 보석들을 잘 만들어내기 위해 오래오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낼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서로를 성장시키는 삶을 멋지게 살아낼 것이다.


이 정도라면...

터울 큰 아이 셋 육아, 해 볼만 하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