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가족의 완전체 제주여행
우리 가족의 완전체 첫 제주여행의 날이 밝았다.
여행 하루 전, 아이들과 집 앞 공원에서의 피크닉과 여행용품 쇼핑으로 온 식구가 초저녁에 넉다운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여행짐을 싸지 않았다는 걸 잠결에 깨달은 나는 새벽 한 시쯤 몸을 일으켜 세웠고, 결국 새벽 네 시 반이 넘어서야 일을 끝내고 잠이 들었다. 홀로 새벽을 지켰지만 ‘셀럼’ 하나로 모든 것이 가능한 시간이었다.
일요일 오후, 비행기 탑승 시각을 빠듯하게 남겨두고 공항으로 향했다. 주차 비용을 조금 줄여보겠다고 주차를 공항 건너편 사설 주차장에 하고선 아이들의 개월수 확인을 위한 주민등록등본 발급까지 끝내고 나서야 헐레벌떡 수속을 시작했다.
수속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는가 싶더니, 이번 여행을 위해 구입한 온 가족의 샌들을 차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빠듯하니 그냥 가자는 나와, 여행 내내 불편할 것 같으니 꼭 가져가야겠다는 남편의 짤막한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은 남편의 승. 본인이 얼른 뛰어갔다 오겠다는데, 막을 순 없지. 그렇게 우린 한국판 나 홀로 집에 여행 출발 신을 찍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19개월 된 막내 딸아이는 그날이 여행 날인걸 알았는지 아침부터 최상의 컨디션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비행기라는 낯설고 답답한 공간에 난생처음 들어섰다.
아이는 피곤했을 텐데도 좀처럼 잠들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만 앞 좌석의 컵홀더를 접었다 폈다 하다가 급기야 가족과 함께 여행 온 중년의 여성분께 “아이 X~진짜!”의 불편을 호소받게 된다. 그러곤 막내는 아빠에게 번쩍 들어 올려지며 비행기 복도와 화장실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여기서 조금 재미있는 이야길 덧붙이자면, 비행기에서 “아이 X~ 진짜!” 멘트를 날리셨던 중년의 여성분을 다음 날 아침 조식뷔페의 바로 옆 테이블에서 만나게 된다. 그분은 비행기 앞 좌석이었기에 우리를 기억 못 하셨지만, 나와 남편은 그분과 가족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제는 우리 막내의 철없는 무례함(?)에 고통을 받으셨던 분이 하루 지난 시점에는 알콩달콩 삼 남매에게 사랑의 눈빛을 보내고 계셨다. 한두 번 바라보고 말았다면 이렇게까지 쓰지도 않았겠지만, 우리에게 여러 번 아이컨택을 시도하며 ‘참 귀엽네’의 눈빛을 여러 번 발사하셨기에 그녀와의 추억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어디서든 만나고 헤어지며 또다시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참 재미있다.
몇 년 만에 맞는 제주의 첫 얼굴은 ‘반가운 설렘’ 그 자체였다. 제주는 조금 더 모던해져 있었고, 제주를 찾는 이들은 조금 더 국제화되어 있었으며 제주의 공기는 여전한 설렘의 맛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순조롭게 렌터카를 찾고, 막내의 낮잠이 시작되었으며 덕분에 더욱 쉬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제주의 도로와 까만 돌담이 둘러진 농작지와 민가들, 이 모든 조합이 제주 여행이라는 설렘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제주에 올 때마다 감탄하며 푹 빠져 버리게 되는 아름다운 풍경들이었다. 이곳이 내 삶의 터전이 아니라 설렐 수 있음에 감사했고, 이곳을 몇 년에 한 번씩 잔뜩 기대하며 마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에 익숙해져 버리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물론 제주에 사는 이들은 이 축복을 매일매일 누릴 수 있으니 그만큼 행복한 일이 또 없겠지만, 나에겐 지금 딱 이만큼의 낯섦과 딱 이만큼의 설렘이 큰 행복인 것이다.
대가족이자 아기를 동반한 우리에게 최적화된 숙소
아기를 포함한 5인 가족에게 허락된 숙소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우리에게 최적화되어 있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우리를 반기는 숙소들 중 하나였기에 더욱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막내가 아직도 가끔은 자다 말고 깨서 우는 경우도 있고, 가끔 오빠들 틈에서 자다가 깔리는(?) 사고도 발생하기에 우리가 머무는 숙소에서 잠자리 분리는 거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이다. 이번 여행에서 경험한 두 곳의 숙소 모두 침실이 2개씩 마련되어 있어, 3박 동안 만족스러운 수면의 질을 보장받았다.
이번여행은 펜션을 도전해 볼까 하다가 막내가 아직 어리기에 복불복에 도전하기에 무리가 있었고, 비용은 조금 더 들었지만 적당히 비수기라 가격할인도 많이 되어 있어 검증된 숙소를 이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두 번째 숙소는 수영장 및 사우나 이용이 무료라 온 가족이 숙소마저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여행이었다.
왜 다들 함덕, 함덕 하는지 이제야 알아버렸다.
대한민국에 이런 해수욕장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국적인 풍경의 하얀 모래사장을 기반으로 한 해수욕장이었다. 첫날, 첫 여행지가 함덕 해수욕장이었던 건 큰 행운이었다. 수목원길 야시장을 포기하고도 전혀 아깝지 않을 을정도로 아름다운 바다였고, 아이들이 옷을 적시며 한참을 뛰어놀 수 있었던 이번 여행 중 최고의 자연 놀이터였다. 또다시 제주에 가더라도 찾고 싶은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불평불만이 가득하고, 형제끼리 티격태격하다가도 자연을 만나는 순간 아이들은 하나가 되고 모든 근심을 털어낸 얼굴로 놀이를 즐긴다. 자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티 없는 모습은 초록나무, 푸른 바다, 높은 하늘만큼이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함덕, 우리 꼭 다시 만나!"
제주도에 여러 번을 들락거렸지만 늘 타이밍의 문제로 감귤 따기 체험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터라 아이들은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꼭 체험을 하고 싶다며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당연히 계절 상 감귤체험은 어려운 상황이었고, 차선책으로 찾은 것이 바나나 따기 체험이었는데 기대 그 이상의 체험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농장 전체를 돌며 처음 보는 열대 식물들을 들여다보고 안내 음성을 들으며 열대 식물에 대해 배우고, 아이들과 대화를 참 많이 했던 시간이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우리 가족만 단독으로 돌아다니며 즐기고 사진 찍을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온전히 서로만 의지하며 나아가고 서로에게만 들리는 이야기를 건네고, 여유 있게 사진을 찍으며 체험과정 전체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체험 후반부에는 토끼 먹이 주기와 토끼와 놀아주기 체험도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은 그야말로 몰입의 시간을 경험했다. 우리가 직접 따온 바나나는(1인 500그램) 지금 우리 집에서 열심히 후숙 중이다. 서귀포 동쪽에서 잔잔하고 알찬 체험을 경험하고 싶다면 유진팡은 꼭 들러봐야 하지 않을까?
흐린 아침이었다. 우도에 가기로 했는데, 바람도 불고 쨍하지 않은 날이라 고생스럽게 배를 타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싶어 우도 입도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번 여행도 '도전'을 모토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날씨와 시간을 재지 말고 그냥 경험해 보기로 했다. 우도 땅콩 아이스크림을 이번에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기에 우도 입도를 확정 지었다. 우도로 향하는 배에 오르기 위해 성산포항에 도착하니 날씨가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바람은 여전했지만 햇살이 환하게 내리쬐는 날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차를 탄 채로(만6세 미만 아이와 동반 여행할 경우 우도에 차량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 배에 올라타고, 배에서 바다를 느끼며 우도에 도착했다. 우도에서는 딱 두 군데의 포인트만 가보기로 했다. 검멀레해변, 산호해변(사빈백사) 두 곳 모두 매력적인 해변이었다. 특별히 어떠한 포인트가 기억에 남을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분명 우도는 한 번쯤 다녀와야 하는 아름다운 섬이 틀림없었다. 우도 땅콩도 놓치기엔 섭섭해서 하나씩 맛보았고, 아이스크림 앞에서 아이들은 그저 싱글벙글했다.
아이들은 약속한 대로 여행이 시작되자 휴대폰 게임이나 유튜브 시청 등을 전혀 하지 않았고 하고 싶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대신 숙소에서 저녁시간 티브이 시청은 잠깐씩 허락되었다. 미디어 없이도 우린 잘 노는 가족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서로를 더 애정했고, 때론 더 다투기도 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 일정을 같이 고민하고, 점심 메뉴에 대해 더욱 깊이 논했다. 저녁엔 그날의 일정이나 느낌을 나누기도 했고, 몇 년 전의 여행과 비교해보기도 하며 여행 기간 동안 온전히 여행에만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약속을 잘 지켜준 아이들에게 참 고마웠다. 아이들은 늘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약속을 잘 지키는 담백하고 멋진 작은 사람들이다.
다음 여행이 언제가 될지 벌써부터 기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멋진 여행이었고,
서로에게 마음껏 관심 가져줄 수 있는 황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