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6, 47 - 캐나다 퀘벡시티 (Quebec City)
2017.03.19, 20
지난겨울, 굉장한 화제를 몰고 온 드라마가 있다. 매 회 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으며, 수많은 명대사들과 명장면들이 지금까지도 패러디되고 있는 드라마 '도깨비'.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마지막회 방영일이 나의 여행 출발 바로 전이었기에 연장방송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으니 말이다. 드라마 속 김고은이 그토록 외치던 '단풍국'을 가을이 아닌 겨울에 가게 되어 조금은 아쉽지만, 겨울의 캐나다는 또 그것만의 아름다운 매력이 있었다.
그 로맨틱한 퀘벡시티에 가기 위해 나는 몬트리올에서 기차를 탔다. 하지만 이곳은 마치 비행기를 타듯, 보딩 시간이 장해져맀었고 무엇보다 짐을 따로 실어주어 마음이 편했다. 사실 버스보다는 기차를 선호하지만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곳에 짐을 놔두고 자리로 가서 앉아있는다는 게 마음이 편하지만른 않은데, 이렇게 해주니 마음이 편했다.
도착한 첫날 오후, 간단한 저녁 식사 후 아브라함 평원에서 석양과 야경을 보러 길을 나섰다. 하늘색이 점점 물드는 것이 먼발치에서도 보였고, 분홍빛으로 물드는 것이 너무나 예뻐서 마음이 조급해쟜다. 하지만 지도가 알려준 길은 공사 중이라 막혀있었다. 역시나 비수기란.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흙탕물이 바지에 다 묻기도 했다.
결국 분홍빛 하늘은 찍지 못하고, 가는 길에 연보라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얼른 찍었다. 전망 포인트에 올라가기 전이었지만 그래도 예쁜 하늘을 보았던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길이라고 쉬운 것은 아니었다. 위에서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보니까 계단도 두껍게 다 얼어있고, 아마도 풀밭이었을 나머지 부분도 꽁꽁 얼어있었다. 고민하다 아이들처럼 장갑을 끼고 손으로 계단을 잡으며 천천히 올라갔다.
드디어 마주하게 된 퀘벡시티의 저녁.
퀘벡시티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호텔 프롱트낙(Fairmont Le chateau Frontenac)이 뷰를 빛내주었다. 건물들이 조금씩 빛나고, 주위 가로등들도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언덕은 눈이 많이 쌓여있었는데, 실제로는 사진 속에 보이는 것보다 벤치들이 굉장히 많았다. 눈 속에 파묻힌 벤치들이 많았다.
완전히 어두워지니 호텔은 더욱 화려해졌고 퀘벡시티에서의 밤이 더욱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날씨가 날씨인 만큼, 그리고 시즌이 시즌인 만큼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언덕에는 나 말고 3명 정도가 서 있었다. 모두 석양만을 보고 내려갔는지 내가 카메라에 야경을 충분히 담은 후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나름대로 드라마 속 공유가 이곳의 무덤을 보며 느꼈을 쓸쓸함을 한번 느껴보았다. (물론 실제로 무덤은 없다.)
조심조심 내려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 또 하나 반가운 곳을 발견했다. 크리스마스 가게. 저녁이라 닫혀있었지만 유리창 속에 전시해둔 물건들을 실제로 하나하나 살펴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 예뻤다. 나도 이곳에서 초를 불면 나를 지켜주는 도깨비가 나오지 않을까 잠시 상상을 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불을 끌만한 초가 없었다. 그래도 도깨비 '덕후'로서 퀘벡시티 첫날을 보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코스였다.
다음날, 본격적으로 퀘벡시티를 둘러보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전날 저녁, 8시에 언덕에서 내려가자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다시 아침이 되니 거리에 사람들이 꽤 보였다.
오래전 성으로 둘러싸였던 것으로 보이는 이 도시는 이렇게 곳곳에 성벽과 성문이 남아있다.
걷다가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있는 것 같아 가보니 아래로 로얄 광장(Place Royale)이 보였다. 이 풍경을 보고 있으니 정말로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로얄 광장에도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한 건물에 예쁘게 벽화가 그려진 것이 눈에 띄었다.
어디서든 눈에 띄는 호텔 프롱트낙이 퀘벡시티의 랜드마크라면, 쁘띠 샹플랭(Petit Champlain) 거리는 퀘벡시티의 상징쯤 되려나. 그만큼 쁘띠 샹플랭 거리는 대표적인 장소이고 번화가이며 퀘벡시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려가는 계단이 살짝 가파른 편인데, 그래서 넘어지는 사람이 많아서 '목 부러지는 계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드라마 속 사랑스러운 '사랑해요' 고백 장소가 이런 무서운 곳이었다니. 섬뜩한 이름은 잊고, 조심조심 내려가며 쁘띠 샹플랭의 예쁜 모습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거리는 길지 않지만 가게들 보는 재미에 몇 번을 왔다 갔다 걸어 다닌 것 같다. 처음에는 다양한 색들이 눈에 들어왔고 두 번째에는 예쁜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다음부터는 이 거리의 분위기에 취했다. 동화 속 마을에 들어온 것 같았다.
이 길을 걷다가 도깨비가 나오는 문도 발견했다. 실제로는 한 소극장의 문이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는데, 그 후 나 말고도 몇몇 동양인들이 사진을 찍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요즘은 중국 등에서 실시간으로 방송을 함께 볼 수 있다고 하니, '도깨비'도 꽤 알려진 모양이다.
쁘띠 샹플랭 거리를 몇 번 오가며 구경하다, 아기자기한 입구가 마음에 들었던 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맛집이라고 알려져 있던 곳이기도 했다. 캐나다 하면 연상되는 메이플 시럽을 넣고 양념한 립 요리와 시원한 스트로베리 다이키리를 주문했다. 메이플 시럽이 너무 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굉장히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에는 강가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위로 올라가는 목 부러지는 계단 외에도 중간중간 이렇게 더 낮은 길로 나올 수 있는 계단길들이 있었다.
한쪽에는 호텔 프롱트낙이, 한쪽에는 눈 쌓인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세인트 로렌스 강이 있었다.
이렇게 강가를 걷고 있노라니, 전날 보았던 야경이 떠올랐다. 낮의 풍경은 어떨지, 다시 한번 올라가 보기로 했다.
의외로 낮의 풍경이 더 마음에 들었다. 가지만 남은 나무들의 색과 호텔의 색이 고즈넉하게 잘 어울렸다.
날이 따뜻했더라면 반나절 정도는 이곳에 앉아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주 춥지는 않아서, 눈에 파묻히지 않은 벤치에 앉아 일기를 조금 써보았다. 언덕에는 저 멀리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지막으로 드라마 속에 나왔던 예쁜 분수를 보기 위해 국회의사당에도 가보았지만, 겨울이라 분수에서 물도 안 나오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도록 막혀있었다.
그래도 아주 많이 아쉽지는 않았다. 날이 그리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쁜 도시의 모습을 충분히 보았으니까. 토론토와 몬트리올에서는 겨울이라 아쉬운 점들이 많았는데, 이곳은 하늘이 흐린데도 예뻤고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어 걸어 다니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이곳에서 3박을 한다 했을 때 모두들 하루면 다 보는 곳에서 왜 그렇게 오래 있냐고 했지만, 나는 그 시간 내내 퀘벡시티가 좋았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 사소한 메모 #
* 모든 날이 눈부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