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의별 Jun 19. 2024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안다고 한다

길 위에서, 유쾌하지 않은 만남

*고민 끝에 현장감을 위해 지명을 넣었지만, 지명에 너무 집중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정 나라, 특정 도시, 특정 국적의 사람이 저지른 일이라고 규정짓게 되면, 그것 또한 새로운 편견이 될 수 있으니까요. <도착하기 전까지의 이야기>의 일부로 수록한 만큼, 여행 중에 스쳐 지나갔던 일들 정도로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주 오래전 프랑스에 처음 갔을 때, 문구류를 사기 위해 파리의 한 가게에 들어간 적이 있다. 할인 표시가 붙은 노트를 한 권 들고 계산대 앞에 섰는데, 직원이 내게 요구한 금액은 할인되지 않은 금액이었다. 나는 서툰 프랑스어로 '할인하는 것 아니에요?'라고 물어봤지만, 직원은 내게 너무 빠른 말로 대답했고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긴장한 채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천천히 말씀해 주실래요?'라고 물어봤더니 그는 인상을 팍 쓰고는 비아냥거리듯 입꼬리를 쓱 올렸다. 그의 동료직원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이 중국인이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를 하네."


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다 알아들었음에도 너무 당황해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처음 당해보는 일에 그저 울고만 싶었다. 머뭇거리는 내게 뒤에 서 있던 한 여자가 '회원 카드가 있어야만 할인을 받을 수 있어요'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나는 그 길로 가게 밖으로 나왔다.



지금의 나 같았으면 영어로든 한국어로든 일단 화부터 냈을 텐데, 너무 어렸던 그때의 나는 머릿속으로 프랑스어 단어들을 나열해 보다 포기했다. 이후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사납게 되갚아주리라 다짐했건만, 아쉽게도 (혹은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그런 경험이 없다.


그 후로 인종차별을 안 당해봐서가 아니다. 인종차별은 그렇게 대놓고 다가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매우 은은하게 다가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뉴욕 지하철은 우리나라의 지하철 시스템과 꽤 다르다. 우리나라는 지하철역 출구 어디로든 일단 들어간 다음에 행선지에 맞추어 지하철을 골라 탈 수 있는데, 뉴욕에서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게 출입구를 선택해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나는, 여행 초반에 실수를 했다. 그저 가까운 출구를 이용해 들어갔을 뿐인데, 내가 가려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가는 지하철만을 탑승할 수 있는 출입구였던 것이다.


출입구에서 티켓을 넣고 들어간 후에야, 내가 저지른 실수를 알게 되었다. 반대 방향 지하철을 타려면 다시 나가서 다른 출입구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다행히 내가 가지고 있던 티켓은 일주일 동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7일권 티켓으로, 횟수가 차감되는 형태가 아니었다. 돈을 낭비한 건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얼른 나가서 다른 출입구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그렇게 다시 들어가려니 티켓이 인식되지 않았다. 이미 반대편 출구에서 인식이 되었기 때문인 듯했다. 결국 역무원 창구로 다가갔다.


"죄송한데, 제가 반대편으로 잘못 들어갔다가 나왔거든요. 같은 역이라 그런지 여기선 다시 안 찍히는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OO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반대방향으로만 갈 수 있는 저쪽 출구로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지금 다시 여기로 왔어요. 일주일간 쓸 수 있는 티켓인데 카드 인식이 안 돼요."

"그쪽이 이런 실수를 해요? 믿기지가 않는데요. (I don’t believe you.)"


나는 웃음과 함께 부드러운 말투로 요청했지만, 역무원은 굳은 표정으로 내 티켓을 들여다보고는 정색을 하고 답했다.


"네?"

"이런 실수를 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요."

"… 뭐가요? 저 뉴욕 처음이에요."

"일단 이번에는 봐줄게요. 들어가요."


예상치 못한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나를 언제 봤다고, 내가 이런 실수를 하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하는 거지? 나를 다른 사람과 착각했나? 그럼 알은척을 했어야지. 그리고 애초에 주민은 7일권을 쓸 이유가 없는데? 아니, 생각해 보니 횟수가 차감되는 이용권도 아닌데, 내가 일부러 이렇게 해서 얻을 게 뭐가 있어? 웃기는 사람이네.'


속으로 구시렁거리다가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너 같은 동양인'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저 '너는 동양인이잖아, 너네 머리 좋잖아'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것 말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7일권 티켓은 말 그대로 7일간 원하는 만큼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이용권이었으니, 남용의 여지도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대응을 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동양인에 대한 감정이 평소 좋지 않은 사람이었겠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지하철을 반대로 탈 뻔한 건 나였는데, 시대를 역행하는 건 그 사람이었다.




그리고 몇 달 뒤, 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의 한 버스터미널에서, 크로아티아로 가는 버스티켓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앞에 서 있던 서양인이 창구의 직원과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티켓을 구입하는 사람은 유로를 냈고, 창구에서는 보스니아 화폐로 거스름돈을 줬는데 환율이 안 맞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승객은 직원과의 대화가 답답했는지 뒤를 돌아 주변을 훑어보더니, 줄을 서 있던 내게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저기, 수학 잘하잖아요. (Hey, you’re good at math.) 이거 계산 좀 해주실래요?"


옆으로 나란히 한 줄로 서 있었기에 내 양옆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많았는데, 굳이 그 속에서 나를 콕 집은 것이었다. 이 사람도 참, 나를 언제 봤다고? 물론 나를 언제 봐서 고른 건 아니었다. 나는 그 줄에 서 있던 유일한 동양인이었을 뿐이다.


"수학 못하는데요."

"(내 말 무시하고) 환율이 지금 이런데, 나는 이만큼은 받아야 하는 것 같은데, 저 사람이 이거밖에 안 줬어요. 계산 한 번 해봐요."

"몰라요."


나는 살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수학은커녕 마치 영어도 못하는 것처럼 짧게 대꾸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직원에게로 돌아가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그 자리에는 나 말고도 여러 이 서 있었는데, 동양인이 아니면 물어볼 가치도 없었던 걸까.


내 뒷차례 순서였던 다른 사람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는 내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전 사실 계산 잘하는데, 기회도 안 주고 갔네요."

우리는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이 이야기를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해줬더니, 그래도 수학 잘한다는 건 칭찬인데 왜 매몰차게 대꾸했냐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수학문제를 푸는 걸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내가 수학을 잘할 거라고 단정 짓는 것을 칭찬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뉴욕 역무원이 비아냥거리며 '네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믿을 수 없다'라고 한 것 또한 똑똑해 보인다는 말이니 칭찬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이유, 어떤 배경이든, 처음 만나는 사람을 그의 외모, 인종, 성별만으로 판단하고 단정 짓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차별이다. 같은 여행자의 입장에서 환율 계산 정도는 충분히 같이 해줄 수 있었음에도 해주지 않은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 더 힘을 실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은 인종차별이란 없다. 특정 집단의 흔히 알려진 장점이라 할지라도,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 단정 짓는 것은 결코 호의가 아니다. 그것마저도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잣대, 편견 어린 기대치가 되어버리고, 또 다른 편견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동양인들은 계산을 잘해'라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칭찬 같을지라도, '동양인들은 계산이나 잘하지, 창의성은 없어'라는 또 다른 편견을 낳는다.


길 위에서 만난 모두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내가 당한 일들이 길 위에서 일어났던 일들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또 다른 편견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도 그들도 스쳐 지나가는 개개인의 사람들일 뿐이었고, 어떤 특정 목적지가 한 마음으로 나를 대했던 건 아니라고. 길 위에서 일어난 일들은 길 위에서 흩어지도록 둘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