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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Jul 10. 2024

불편함을 어디까지 감수해야 할까

버스에서

한동안 겨울에 버스로 출퇴근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꽤 먼 곳으로 8시 출근을 하고 있었기에, 이른 아침의 버스에는 늘 사람이 많지 않았다. 광역버스라 시외버스처럼 맨뒤를 제외한 모든 좌석이 2인석이었고, 각각의 2인석을 한 사람씩 차지하고도 자리가 남을 정도였다. 그렇게 모두가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중간에 약 30분 정도는 정차하지 않고 쭉 달리는 버스였으니, 방해하는 안내방송도 없이 푹 잘 수도 있었다. 겨울철 오전 6시 40분, 밖은 늘 깜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창가에 앉아있던 내 옆에 어떤 남자가 와서 앉았다. 내가 타고난 뒤 두 정거장 뒤에서 탑승한 사람이었다.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도 꽤 많았는데 왜 굳이 내 옆에 앉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옆자리까지 내 자리는 아니었으므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반복해서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처음에는 내가 주로 앞쪽에 앉아서 그분도 앞자리를 선호하나 보다 했지만, 내가 뒤쪽에 앉은 날에도 굳이 내 옆으로 와서 앉는 것이었다.


'왜 그러지? 대체 왜 굳이?'


기분이 괜히 찜찜해졌다. 모두가 혼자 떨어져서 편하게 가는 이 버스에서, 이 사람은 대체 무슨 이유로 항상 내 옆에 좁게 앉아 가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딱히 나를 쳐다본 적도 없었고, 자리를 잡고 앉으면 바로 눈을 감고 잠드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저 수많은 자리를 놔두고, 혼자 편하게 갈 수 있는 자리들을 놔두고, 굳이 내 옆자리를 고수하는 그 사실이 불편했다. 남들은 두 자리씩 차지하고 가는 아침 시간, 나는 매일 무릎 위에 배낭을 끌어안고 가야 하는 데다가 내릴 때마다 그와 앞 좌석 사이를 비집고 나가야 하는 것도 불편했다.


만원 버스였다면 덜 억울했을까? 그랬을 수 있지만, 같은 사람이 매일 내 옆자리에만 앉는 건 여전히 불편한 일이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언가 조치를 취하고 싶어졌다.


한 번은 창가가 아닌 복도 쪽에 내가 먼저 앉아있어 보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비켜주기를 바라는 듯 옆에 와서 서 있었고, 결국 나도 마지못해 안쪽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혹시 옆에 가방을 놔두면 그냥 지나가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나보다 두 정거장 뒤에서 타는 사람이었기에 그 시간에 맞춰 가방을 내려놓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 자리를 전세 낸 것도 아닌데 타자마자 가방을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한 번은 가방을 살짝 어정쩡하게 걸쳐두었는데, 그럼에도 그는 그 자리에 앉았다. 매일 어쩔 수 없이 타야 하는 버스였기에, 내가 먼저 피해버릴 수도 없었다. 어쩌다가 그 사람이 그 시간에 타지 않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건물로 출근할 일이 생겼다. 평소 내리던 곳보다 세 정거장을 더 가면 되는 곳이었다. 어차피 자주 오지 않는 버스 덕분에 늘 회사에 40분 일찍 도착하던 나였므로, 그날도 평소와 동일한 버스를 타면 충분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날도 그는 내 옆에 앉아 잠이 들었다.


30분이 지나고, 내가 평소에 내리던 정류장을 지나다. 그리고 다음 정류장, 그다음 정류장까지 도착했다. 내릴 사람들이 다 내리고 버스가 다시 출발하자, 평화롭게 잠들어있던 옆 사람이 갑자기 화들짝 놀라 깼다. 그는 창밖을 확인하고 정류장을 확인하더니, 아직 옆에 앉아있던 나를 묘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그냥 슬쩍 본 거라고 하기엔, 몇 초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아서 같이 쳐다봤더니, 그는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다음 정류장에서 황급히 뛰어내렸다. 나도 물론 거기서 그의 뒤를 따라 내렸다. 그날은 거기서 내려야 하는 날이었으므로.


내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내가 내릴 때 그가 항상 깊이 잠에 들어있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면, 나의 움직임에 잠을 깼던 것이다. 이날은 내가 평소와 다른 곳에서 내렸기 때문에 그는 내릴 곳을 지나쳐버린 것이었다. 그러니 그 눈초리의 의미는 '네가 왜 아직도 안 내리고 여기 있어?'다. 그는 나를 알람 삼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다!'


나는 드디어 그 작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방법을 발견했다. 그래서 다음날, 나는 조금 치사하지만 전날 내렸던 곳에서 다시 내렸다. 그는 전날의 사건 때문인지, 이날은 내릴 곳을 놓치지 않고 먼저 잘 내렸다. 어차피 나는 늘 여유롭게 사무실에 도착기 때문에, 세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려 걸어가도 시간이 충분했다.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기분도 꽤 상쾌했다.


그렇게 며칠 지나고 나니 그는 더 이상 내 옆에 앉지 않았고, 나는 이후 편하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 후로는 원래 정류장에서 내려도 그가 내 옆에 다시 오는 일 없었다.


얼마 후 나는 그 회사를 그만두었고, 다시 그 버스를 탈 일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일은 계속 기억에 남아, 내 마음속에 불편하게 남아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사람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앉을자리를 고르는 건 그 사람의 자유다. 물론 나도 내가 내릴 정거장을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내가 계속 불편하게 갔어야 했을까? 나에게도 나의 시간, 나의 편안함이 소중하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내가 스트레스를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지금도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옳았을지 잘 모르겠다. 대놓고 말을 해보자니 혹여 보복을 당할까 봐 걱정되었고, 내가 먼저 다른 사람 옆에 앉아 있자니 또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는 행동일 것 같았다. 나는 적당히 내 옆에 앉지 않았으면 한다는 걸 내비쳤고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결국 내 뜻을 전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아니면 단지 쓸모없는 알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불편한 상황들을 정면돌파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 불편함을 감수하고, 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맞을까. 나는 지금도 정답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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