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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3시간전

내가 틀렸다는 사실이 벅찬 순간

이과수 폭포로 가는 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푸에르토 이과수로 향하는 날이었다. 푸에르토 이과수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과수 폭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과수 폭포는 남미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과수에 대한 기대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 크고 화려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폭포가 대단해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느냐'는 마음이었다.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조차 이미 명성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움을 더 많이 느꼈기 때문인지, 남은 아르헨티나 일정이 크게 기대되지 않는 상황이기도 했다. 여유로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줄 알았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내게 거리에서 '깜비오(환전)'를 외치는 사람들과 어마어마한 무더위의 기억만을 남겨주었던 것이다.


그날 오전 공항, 하필 배정받은 좌석창가 좌석이었다. 오래전 학생 때는 창문 밖 풍경을 보는 것이 좋아서 막연하게 창가석을 선호하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장기 비행이 많아지면서 복도석만을 고집하던 나였다. 비행시간이 고작 2시간 남짓이라고는 하지만, 오랜만에 구석에 들어가 앉을 생각을 하니 답답해졌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으로 창가석에 앉았던 건 아득한 오래전. '창가석=무조건 불편한 자리'라는 공식을 만들었던 건, 이미 더 이상 창가석에 앉지 않게 된 내 머릿속에 형성된 편견이었다.


막상 오랜만에 창가석에 앉고 보니, 작은 국내선 여객기였음에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람과 창문 사이에 낀 기분이 들어 살짝 답답한 느낌이 들었으나, 이내 적응이 되었다. 비행 거리가 길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함이 커졌을지 모르지만, 짧은 비행이었으므로 걱정했던 것에 비해서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창밖 너머로 보이는 구름이 설렘을 더해주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간간히 창밖을 바라보며, 그렇게 꽤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내릴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갑자기 기내 방송이 이어폰을 뚫고 들어왔다.


"손님 여러분, 지금 창문 밖을 보시면 이과수 폭포를 보실 수 있습니다."


기장의 말에 창문 너머 구름이 아닌, 조금 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과연 물줄기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엄청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막연하게 '폭포가 그냥 폭포겠지'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얼마나 좁은 생각이었는지, 그 작은 비행기 창문이 알려주고 있었다. 그토록 길고 크게 이어지는 폭포는 이전에 본 적이 없었다. 이과수 폭포는 비행기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거대한 폭포였다.



나는 시선을 폭포에 고정시킨 채,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찍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풍경이었으니까. 복도 쪽에 앉아있던 분의 카메라까지 받아 사진을 찍어드렸다. 대부분 관광객으로 채워져 있던 기내는 이과수 폭포의 풍경에 모두 한 마음으로 흥분했다.


이과수 폭포에서는, 헬기를 타고 폭포를 내려다보는 투어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헬기를 타면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미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경험으로도 충분히 황홀했으니까.


"원래 비행기에서 이렇게 폭포가 잘 내려다 보이나요?"

"원래는 아닌데, 오늘 날씨가 좋아서 기장님이 살짝 항로를 틀어서 가신 거예요. 정말 가끔 있는 일이라, 오늘 운이 아주 좋으신 거예요."


다른 승객과 승무원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원래 이런 것이 아니라니, 하필 내가 창가 자리에 앉은 이날, 날씨가 좋아서 비행기 창문 밖으로 이과수 폭포를 볼 수 있는 것이었다니. 그저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날씨가 이렇게 좋았다는 건 분명한 행운이었다.


고집이 꺾이는 순간은, 부정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였다. 만약 굳이 복도석에 앉겠다고 자리를 변경해 달라고 했다면 얼마나 아쉬웠을.


내가 아는 선에서의 기대치나 걱정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폭포가 대단해봐야 얼마나 대단하겠어'라는 마음이나, '비행기 창가 자리는 무조건 불편하기만 해'라는 마음이나, 모두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전부라는 생각에서 생기는 오류였다. 해보지 않은 건 해보지 않은 대로 알 수 없고, 오래전 경험은 오래전 경험대로 바래기 마련이다. 분명히 내가 알지 못하는 작은 요소, 어떤 반전은, 언제나 숨어있다.


그동안 복도석만 고집하면서 놓친 창 밖의 풍경이 얼마나 될까. 이미 지나간 걸 다시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꼭 일부러 창가 좌석을 선택할 필요는 없지만, 나에게 충분한 선택권이 없을 때에는 큰 걱정 없이 그 선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그날 이후 나는 길지 않은 거리는 종종 창가 좌석에 앉아보고는 한다. 내가 가는 곳, 혹은 돌아가는 곳 주변의 풍경이 어떤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비행기의 창가에서는 그 높이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비행기의 작은 창문은 내게 때로는 기막힌 산맥을, 때로는 뜨거운 노을을, 때로는 밤하늘의 별들을 선사했다. 가능성을 하나 열어두면,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창문이 하나 더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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