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나는 여학생들만 있는 기숙사에 살았다. 이십 대 초반의 여자들끼리 모여있으면 어찌나 재밌는지,신입생 시절부터 졸업할 때까지 매일 우리끼리 시끄럽게 웃고 떠드느라 밤을 새기도 했다.
특히 신입생 때는, 드디어 교복에서 벗어나 옷과 신발과 가방을 마음껏 고를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들뜨게 만들었다. 갓 대학생이 된 우리는 긁어모은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비로 동대문이나 명동에서 쇼핑을 했고, 그렇게 옷장을 다양한 색깔로 채워갔다.
하지만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6년 동안 매일 같은 옷에 같은 가방을 메고 다녔으니, 갑작스럽게 다양해진 선택지들이 곤란할 때도 있었다. 어떤 티셔츠에 어떤 바지를 입고 어떤 겉옷을 걸치고 어떤 가방을 메야할지, 매일매일 의상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과 한 지붕에서 살았다는 것. 우리는 매일 서로의 의상을 골라주었고, 뭐가 나은지 각자의 의견을 교환하며 신중하게 친구의 의상을 이리저리 봐주곤 했다. 소위 말하는 집단 지성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서로 골라주다가도, 어느 순간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교착 상태에 봉착하는 순간도 있었다. 새 가방을 메고 싶어서 고른 의상인데 아무리 해도 가방이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그렇다고 가방을 중심으로 의상을 다시 맞추어보면 옷이 날씨에 맞지 않거나 혹은 너무 불편하다거나. 서로에게 자신의 옷과 가방을 기꺼이 빌려주었기 때문에 선택지는 훨씬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답이 안 나오는 날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누군가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야, 아무도 안 봐.
그러면 모두가 한바탕 웃고, 일생일대의 고민을 하듯 옷과 가방을 잔뜩 손에 들고 있던 친구는 결국 '어울림'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랐다.
아무도 안 본다는 말은 농담이었지만, 사실은 아주 당연한 진실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남들이 뭘 입고 뭘 하는지 관심을 가지는가?'를 떠올려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간혹 길을 가다 대단히 독특한 차림의 사람을 마주친다고 해도, 우리는 쓱 한번 돌아볼 뿐 곧 잊어버린다.
타인을 불쾌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차림만 아니라면, 무얼 입어도 괜찮다. 우리에게는 원하는 대로 옷을 입을 자유가 있다. 내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야 기분이 좋고, 날씨와 체형에 맞는 옷을 입어야 편안하다. 결국 입는 사람은 나이므로, 매번 타인의 취향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무수히 많은 외출이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하게 옷을 맞춰 입어볼 기회가 있다. 모든 순간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조금 어색해도 괜찮고, 때로는 다소 무모해 보이는 시도를 해도 된다.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가는 건 하나의 여정이고, 각자의 취향과 목적에 따라 그 여정은 다양하다. 남들이 많이 택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해서 잘못된 방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