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여행과 여행사를 통한 여행상품은 끊임없이 비교당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자유여행이 더 깊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의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5주간의 투어를 했다.공식 명칭은 '오버랜드 트럭킹 투어'였는데, 버스로 개조한 트럭을 타고 5주 동안 남아공에서 케냐까지 7개국을 넘나들며 캠핑을 하는 투어였다. 아무래도대중교통으로 다니기 어렵고 혼자 다니기위험할 수 있는 아프리카 대륙을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 같아서 선택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꽤나 쉽게 여행했다. 트럭이 다음 캠핑장으로 데려다주면 텐트를 꺼내서 치고, 샤워를 하고 식사를 했다. 아침에는 모이라는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 텐트를 걷고 아침 식사를 했다. 내리라는 곳에서 내려 볼일을 보고, 타라는 차에 올라 사파리 투어를 했고, 별을 보러 오라고 하면 하늘을 쳐다보았다. 매일 번갈아가며 해야 하는 당번활동도 있었는데, 스케줄표에 따라 식사 당번인 날이면 음식 재료를 썰었고, 트럭 청소 당번인 날이면 트럭에서 먼지를 쓸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꽤 편안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5주 중 4주가 지났다. 당시 나는 탄자니아의 대표적인 휴양지 잔지바르의 해변가에서 파라솔 아래에 누워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문득 트럭킹 투어가 고작 1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누워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다음 주에 포르투갈에 가는데 나는 아무 계획도 없었다.나이로비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비행기표만 달랑 있을 뿐. 몇 달 전에 그저 지리적인 부분만 고려해 예약해 둔 항공권이었다. 도착지인 리스본 외에는 어느 도시에 방문할지도 정한 것이없었다. 평소 숙소와 이동 편 정도는 미리 정해놔야 마음이 편한 나로서는 당혹스러운 깨달음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계획을 세워보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멍해졌다.한 달간 매일 정해진 대로 따라가는 데에 익숙해진탓이었다. 그래서 다짜고짜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여기 포르투갈 가본 적 있는 사람?"
다행히 호주에서 온 친구 한 명이 포르투갈을 여행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친구는 좋았던 곳들을 몇 군데 알려주었고, 나는 바로 받아 적었다. 포르투갈의 어떤 도시들이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저 급하니까 친구가 추천하는 곳들 기준으로 서둘러 계획을 세워버렸다.
나는 여행 전에 꽤 상세한 계획을 세워두는 편이다. 어차피 계획한 대로 여행이 순탄하게 흘러간 일은 없지만, 그래도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두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임기응변이 좀 더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미리 찾아보는 일이 잘 없었다. 어차피 계속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안내해 주었으므로, 내가 굳이 지도를 보거나 미리 무언가를 찾아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여행 자체에 대한 긴장감이 많이 풀어졌다. 매일 장시간의 이동에 육체적으로 피로를 많이 느꼈기에 그런 편안함이 좋기도 했지만, 거기에 익숙해지니 내가 중심을 잡고 계획을 세우며 갈 길을 정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아프리카에서 함께 여행하던 사람 중에는, 여행사를 통한 여행을 선호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여행을 굉장히 많이 다니던 친구였는데 자유여행은 잘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친구들이 다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이드 투어를 하면, 내가 원하는 곳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좋아.자유여행을 하면 오히려 내가 원치 않는 부분에도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거든."
그 친구는 역사와 유물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당시에는 '원하는 곳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좋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친구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 숙소를 고르고, 일정을 정하고, 교통편을 고민하는 시간은 가이드에게 맡기고, 자신은 관심이 있는 부분, 아마도 그 나라의 역사와 유물 위주의 공부에 온 시간을 쏟는 것이다.
그 친구는 아프리카에서도 이동 중에 꼬박꼬박 지도 앱을 열어 우리의 이동 위치를 살피며 알려주었고,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을 때는 준비해 온 아프리카 관련 책을 읽었다.가이드에게 모든 걸 맡겨버린 나와 달리, 꾸준히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자유여행이냐 여행상품이냐의 차이가 아니라, 여행자 자신이 주체적이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사람들이 자유여행을 더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일정에 대한 자유도의 차이도 있겠지만, 여행자가 자신의 여행에 참여하는 정도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자유여행을 하는 여행자는,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순간부터 여행을 다녀오기까지, 꾸준히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선택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기억들은, 새로운 풍경을 보고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만큼 강렬한 기억이 아니라도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는다. 반면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가이드에게 모든 걸 양도해 놓고 따라가기만 하므로, 지나고 나면 내가 어디를 어떻게 갔었는지도 흐릿해지는 것이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가이드 투어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내 여행이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여행한다면 자유여행과 다를 게 없다. 자유여행이라 하더라도 동행인에게 모든 걸 맡기고 따라다니기만 한다면 여행 상품에 참여하는 거나 다를 게 없는 것처럼. 포르투갈에서 나 역시 친구가 세워준 스케줄대로 여행할 뻔했지만, 다행히 이 사실을 상기하며 내 여행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각자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다르고 각자 중요시하는 부분도 다르니, 자유여행이든 여행사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얻을 수 있는 방식을 택하면 된다. 다만 여행의 모든 순간을 생생하게 느끼려면, 늘 내 여행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주체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모든 여행은 가장 깊이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