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이 아닌 음악극(*1)으로 분류된다.
음악극 <섬>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얽혀있다. 1930년대 한센병 환자 백수선의 이야기, 196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한국 소록도로 온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 그리고 2000년대에 아이를 키우는 고지선의 이야기. 이중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실존 인물이고 백수선과 고지선은 가상의 인물이다. 실제로 마리안느의 한국이름은 고지선, 마가렛의 한국이름은 백수선이었다고 한다. 두 주연 배우가 각각 그 두 인물들을 1인 2역으로 연기한다.
백수선의 이야기는 소록도에 쫓겨 들어가 고통받아야 했던 여러 한센병 환자들의 모습과 더불어 그려지고, 고지선의 이야기는 현대에 발대장애 아동을 키우며 겪는 일들을 중심으로 그려지며, 각 개인의 서사를 보여준다. 반면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는 그들이 했던 숭고한 활동들을 단편적인 에피소드 형식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백수선의 이야기와 고지선의 이야기 사이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세 가지 이야기는 끊기지 않고, 무대를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교차되곤 했다. 그래서 세 개가 아닌 하나의 이야기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시놉시스를 처음 봤을 때는, 이 세 가지 이야기가 어떻게 서로 연결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과거의 한센병 환자들의 이야기와 현대에 장애 아동을 기르는 이야기가 어떤 의미에서 연관이 지어질까 하고. 처음에는 신선한 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시선이 참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애인, 많이 못 보셨죠? 그게 다 '장애도'에 갇혀있어서 그래요.
두 이야기 모두 섬에 갇혀 사는 이야기였다. 소록도는 물리적인 섬, '장애도'는 추상적인 섬일 뿐. 한센병 환자들이 갇힌 소록도는 이제 사라졌지만, 지금의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은 여전히 '장애도'에 갇혀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대신 피해버리곤 하므로, 그들은 썰물에 휩쓸려 그들만의 섬으로 멀어져 버리고 만다. 세상은 변한 듯하지만 변하지 않았다.
한센병 환자들은 '아이를 잡아먹는다', '공기 중으로도 옮는다' 등의 거짓된 소문과 편견에 쫓겨 소록도에 갇혔다. 이후 임신을 하면 강제 낙태를 당하기도 했고, 잘 피해서 아이를 낳을 경우에는 아이와 강제로 분리당하기도 했다. 그들이 당한 차별과 말도 안 되는 대우들이 무대 위에서 펼쳐질 때마다 '그 당시 무지했기에 그랬구나' 싶다가도, 어쩌면 장애도 먼 훗날 사람들이 보면 비슷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당시 사람들은 장애에 대해 무지해서 저랬구나',라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세상이 정말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백수선과 고지선이 직접적으로 핍박과 차별을 겪는 인물이라면,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차별받는 존재들을 헌신적으로 돕는 성인(聖人)과 같은 인물들이었다. 머나먼 타지에 와서 진심으로 환자들을 돌본 두 분 모두 대단한 분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대비 덕분에 우리가 봉사자들을 볼 때의 시선과 막상 그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의 시선이 다르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봉사자들은 뭘 하든 대단한 사람들인데, 장애 아동을 기르는 엄마는 웃으면 '밝아 보이려고 애쓴다'라고 하고, 진지하게 인권을 요구하면 '민폐'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시선들은 우리를 서로 점점 더 멀어지게 한다. 거리가 그대로인 섬이 아니라, 풍랑을 만나면 점점 더 멀어지는 배처럼.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의 사정을 보고 싶어 하지 않거나, 보더라도 자신만의 왜곡된 시선에 한정되어 보는 비장애인들은, 그렇게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을 '장애도'로 더 깊숙이 몰아넣는다. 그럴수록 장애인들은 더 숨게 되고,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더 보지 못하므로, 간극은 더 커져만 간다.
사람들은요, 익숙해지면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아요.
세상에는 '장애도' 외에도 수도 없이 다양한 섬이 있고, 그 섬에 갇혀있는 사람도 수도 없이 많다. 그렇게 각자의 섬에 흩어져 있다 보면, 우리는 서로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들리는 소문'에만 의존하게 된다. 그럴수록 서로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음악극 <섬>에서는 서로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우선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익숙해지면 거부감이 줄어들고, 거부감이 줄어들면 비로소 이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미 모두 각자의 섬에 갇혀 사는 거라면, 익숙해질 기회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섬>과 같은 이야기가 그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한다. 좋은 이야기는 망원경의 초점을 맞춰준다. 존재하는 건 알지만 흐릿하기만 했던 시야를 선명하게 해 준다. 비록 전체 풍경 중 망원경 안에 들어온 일부분만을 보는 것이지만, 그게 시작이라고 믿는다. 작은 일부라도 한 번만 선명해지면 거기서 시야를 넓히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좋은 이야기는 한 번만 들어도 깊이 새겨진다.
다른 점만 찾으려고 들면 한없이 다른 사람이 되지만, 비슷한 점을 찾으려고 들면 한없이 비슷한 사람이 된다. 다양한 이야기, 다양한 작품의 힘으로, 서로에 대한 낯섦이 조금씩 덜어졌으면 좋겠다. 같은 섬에 함께 있을 정도까지 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지나가며 눈인사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극 섬]
▷ 개요 : 장우성 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이 귀감이 되는 실존인물의 삶을 재조명하기 위해 결성한 '목소리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 도서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 (성기영, 2017),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류승연, 2018),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2017), 그리고 소록도 주민들의 인터뷰 등을 참고 및 재구성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 제작사 : 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2024) (*2)
▷ 작가 : 장우성 / 작곡 : 이선영 / 연출 : 박소영
▷ 매우 주관적인 추천 넘버 : '자탄가', '사랑이 머물던 시간', '희망은'
▷ 2024년 재연 캐스트 (국립정동극장, 2024년 5월 22일~7월 7일)
마리안느&고지선 역 : 백은혜, 정연
마가렛&백수선 역 : 정운선, 정인지
목소리들 : 고철순, 김대웅, 김리현, 김성수, 김승용, 김지혜, 류제윤, 박세훈, 박슬기, 신진경, 안창용, 윤데보라, 이민규, 이시안, 이예지, 이지숙, 임별, 임진섭, 정소리, 하미미
1) 사실 뮤지컬과 음악극의 경계는 다소 모호하다. 굳이 차이를 꼽자면, 뮤지컬에서는 노래가 극의 전반적인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반면, 음악극에서는 상대적으로 노래의 비중이 적다.
2) 2019년 제작은 우란문화재단과 목소리프로젝트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