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파도는 계속 쉼 없이 밀려오는데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제자리에 서서 뛰어오른다
- '인생은 내 키만큼'
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이하 <쇼맨>)의 첫 넘버는 주인공 네불라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헤엄칠 줄을 몰라 제자리에 서서 뛰어오르다, 결국 파도에 잠식되어 가라앉으며 사라지는 모습.
숨을 쉬려고 애쓰는 발끝은 위태롭고, 파도는 끊이질 않는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정말 내 자리가 맞는 걸까. 우리는 어쩌다 이 바닷속에 오게 된 걸까.
어릴 때부터 우리는 각자 특별한 존재들이라고 배우며 자랐다. 물론 그런 말을 충분히 듣지 못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개는 교과서적인 멘트를 한 번 이상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는 결코 대체될 수 없는, 각자의 고유한 특별함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그러나 뮤지컬 <쇼맨>은 이 생각을 완전히 반박한다. '네불라'와 '수아'라는 두 명의 캐릭터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존재들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각자가 특별해서 지금 이곳에 있는 게 아니라,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자리를 그저 우연히 일시적으로 메우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주인공 네불라는 다섯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첫째도 막내도 아닌, 눈에 띄기 어려운 순서다. 네불라가 형제 중 넷째였던 것과 대역배우 역할도 하필 4번이었던 것은 그가 늘 잊히기 쉬운 존재였다는 걸 상징하는 듯하다. 스스로를 계속해서 증명해야 하는 위치.
어릴 적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 흉내를 냈다가 비로소 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받았다고 느낀) 네불라는, 이후 평생 타인을 끊임없이 흉내 낸다. 자신의 존재 가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흉내 냄으로써 남들에게 웃음을 줄 때 생긴다고 믿게 된다. 재능을 펼치기 위해 들어간 극단에서도, 줄곧 잘 나가는 다른 배우들의 흉내만 내느라 정작 자신만의 것을 찾지 못한다.
또 다른 주인공 수아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가정의 첫째로 입양이 되었다. 그렇지만, 부모에게 온 순서로 보면 두 번째다. 수아의 양부모는 수아보다 두 살 어린 지체장애인 친딸을 보살펴줄 언니가 필요해 수아를 입양한 것이었다. 부모가 자리를 비울 때면, 수아는 자신의 생일에도 친구들과 마음껏 놀지 못하고 동생을 돌봐주는 착한 딸이어야 했다.
그래서 수아는, 자신의 동생을 보살펴줄 언니가 꼭 수아일 필요는 없었다는 걸 어린 나이에 이미 깨달아버린다. 자신은 단지 그 순간 부모에게 가장 적당한 나이의 적당한 선택이었기에 입양된 것뿐이라고.
네불라와 수아는, 진작부터 알았다. 자신의 존재만으로 소중해서 사랑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역할에 내가 끊임없이 필요해야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수아는 동생의 보모로서, 네불라는 타인에게 웃음을 주는 존재로서. 그러면서 수아의 마음은 무너지고, 네불라는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기에 이른다.
버려지는 것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흠 잡힐 게 없다면 제자리를 지킬 수 있어
빈틈없이, 빈틈없이, 빈틈없이
- '빈틈없이'
사실 네불라가 독재자의 대역배우가 된 과정도 어처구니가 없다. 극단에서 결국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연기를 그만둔 그는, 어느 날 동료의 오디션에 따라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면접관이 갑자기 네불라를 부르며 "너도 아무거나 해봐, 가장 자신 있는 걸로"라며 연기를 시켜본다. 그리고 네불라는 그 순간, 정말로 '자신 있는' 자신의 레퍼토리가 아니라, '자신이 아는 가장 자신 있는 모습'을 흉내 낸다. 바로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본, 독재자 미토스의 연설 흉내. 스스로 자신 있는 것이 없었으니, 그 순간조차 타인의 자신 있는 모습을 흉내 냈던 것이다.
독재자 미토스는 네불라 외에도 여러 대역배우를 썼다. 그러니 네불라가 아니라도, 네불라만큼 그를 잘 흉내 낼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충분히 쓸 수 있었다. 수아의 양부모는 수아 또래의 다른 여자 아이를 입양할 수도 있었다. 둘이 각자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필연이 아니라 단순한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인물의 인생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라도 살 수 있었던 인생이라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있었을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친구를 사귈 때를 떠올려보자, 서로가 특별한 존재라는 걸 알아서 친구가 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짝꿍이라서, 점심시간에 같이 앉아서, 체육시간에 같은 팀이어서, 그렇게 가까이 지내다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사람과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시작은 특별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함께 쌓인 추억이 특별해져 버렸으니까.
내 삶이 나만의 것으로 고유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렇게 만들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첫 시작이 어떠했든, 내가 이 자리에서 써 내려간 이야기는 모두 내 삶이다. 우연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필연이 된다.
그리고 내 이야기는 무수히 많은 자리를 거쳐 빚어진다. 단 하나의 자리가 내 삶을 완성하지는 않는다. 가끔 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은 우리 스스로를 마치 공장의 부품 또는 무대 위의 소품처럼 여기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반대로 각각의 부품과 소품 역시 어디서든 다른 쓰임을 가질 수 있다.
<쇼맨> 공연에서는 다양한 소품들이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인다. 수아가 일하는 마트의 쇼핑카트가 네불라가 일하는 놀이공원의 회전목마가 되기도 하고, 네불라가 대역배우로서 올랐던 단상이 이후 그를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두 명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네불라는 다섯 남매 중 넷째이면서, 극단의 일원이었다가 대역배우가 되고, 세탁소 직원이었다가 놀이공원 직원이기도 하다. 수아는 언니이자 딸이고, 누군가의 친구이며, 마트의 직원이고, 아마추어 사진사다.
우리는 다양한 자리를 동시에 또는 차례로 메워간다. 너무나도 촘촘해서 다른 이가 함부로 대신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어떤 자리는 아주 잠시 머물고, 어떤 자리는 영영 차지한다. 어딘가에서는 부족할 수 있어도 다른 곳에서는 충분하고 넘친다. 내가 거친 모든 자리, 그 속의 모든 사건과 관계를 엮으면 내가 될 것이다.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공연 말미에 리프라이즈(*1)로 반복되는 '인생은 내 키만큼'은 첫 시작 때만큼 비극적이지 않다. 이번에는 네불라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다 함께 각자의 바다에서 가라앉는 대신 힘차게 도약하며 높이 뛰어오른다.
이 바다에 속에 오게 된 이유가 내 뜻도 세상의 뜻도 아니었을지 몰라도, 파도를 하나하나 헤쳐나간 내 이야기의 끝은 내가 쓰게 될 것이다. 엉망이어도 계속해서 뛰어오르고, 허우적거리며.
언젠가 내가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다고 해도 세상은 여전히 멀쩡하게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떠난 뒤 남겨진 바닷속 발자국은, 다시 쉽게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시작에서 끝까지 가는 그 여정동안, 나의 흔적들은 차근차근 특별해졌을 테니까. 대체될 수 없는 그 어떤 것들이 만들어졌을 테니까. 그거면 충분하다.
[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 개요 : 2022년 초연된 국내 창작 뮤지컬로,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 극본상, 남우주연상(윤나무)을 수상했다.
▷ 제작 : 국립정동극장 / 작·작사 : 한정석 / 작곡 : 이선영 / 연출 : 박소영
▷ 매우 주관적인 추천 넘버 : '인생은 내 키만큼', '빈틈없이', '이것은 쇼'
▷ 2025년 삼연 캐스트 (국립정동장, 2025년 7월 11일 ~ 8월 31일)
네불라: 윤나무, 신성민, 강기둥
수아: 정운선, 박란주
첫 번째 배우/간부 외: 안창용, 장민수
두 번째 배우/점장 외: 김연진, 남궁혜인
세 번째 배우/로버트 외: 김대웅, 장두환
다섯 번째 배우/베리타스 외: 전성혜, 염희진
1) 리프라이즈 (reprise) : 음악의 반복을 뜻하며, 뮤지컬에서는 대부분 곡조나 가사 등에 변주를 주어 처음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를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