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피할 수 없다면
closure라는 말의 뜻을 찾아보면 대개 폐쇄, 종료 등이 적혀있다.
I need closure.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나는 종료가 필요해? 이건 좀 어색하다. 그렇다면 나는 끝을 내고 싶다는 뜻일까? 꼭 그렇지도 않다.
"I need closure."라는 말은 '나는 분명한 마무리가 필요해' 혹은 ‘마음의 정리가 필요해’ 정도의 뜻으로 볼 수 있다. closure란 단순히 종료 그 자체를 넘어, 끝났음을 확인하고 마음으로 수용하여 마무리하는 과정이 모두 함께 담겨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끝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조금 두렵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끝을 맞이하는 순간을 최대한 뒤로 미루려 하거나, 끝이 왔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척한다.
나 또한 오래 사귄 연인과 멀어졌음에도 완전한 마침표를 찍는 일이 두려워 한동안 이별을 미뤘던 적이 있고, 오랫동안 위안을 얻던 시리즈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차마 보기 아쉬워 몇 달을 망설인 적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미 끝난 프로젝트를 놓지 못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끝내 인정하지 못한 채 그 상실감을 영영 극복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끝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한 상태 또한 편치 않은 일이다. 흐지부지한 결말의 애매함, 무의미한 정체 상태의 찝찝함.
시작이 있는 한, 끝을 피할 길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스스로의 속도에 맞추어 그 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끝을 외면하느라 정리할 기회를 놓치거나, 이미 떠나간 것을 붙잡느라 제자리에 머무는 일은 누구도 원치 않는다.
closure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 외부에 의해 강요되는 황급한 마무리가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로 준비하고 맞이하는 결말. 하루가 걸리든 몇 달이 걸리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충분히 시간을 내어 상실을 느끼고, 차분하게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끝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move on (다음으로 넘어가다, 새로운 일로 옮기다)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태양이 져야 달이 뜨고, 나뭇잎이 떨어져야 눈이 내리고, 겨울이 와야 봄이 오는 것처럼. 모든 끝에는 언제나 새로운 빛, 새로운 시작이 맞닿아있다.
끝을 계속 살아가는 이는 다음을 맞이하지 못한다.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이들만이, 비로소 다음 시작을 또 한 번 온전히 맞이할 수 있게 되리라.
마음을 정리하는 표현들
I need some closure. 나에게는 마무리가 필요해./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I'm trying to come to terms with it. 나는 그걸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어.
I've made peace with it. 나는 이제 받아들였어./나는 이제 마음이 편해.
You need to let it go. 넌 그걸 내려놓을 필요가 있어.
I'm ready to move forward. 나는 이제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어.
I'm done looking back. 난 이제 뒤돌아보지 않을 거야.
She's turning a new leaf. 그녀는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어.
He has moved on. 그는 이제 정리하고 다음으로 나아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