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꽃이 흐드러지게, 하지만 소박하게 피어가는 양평. 봄바람을 쐬다 오리백숙이 유명한 가게를 찾았다.
카페를 개조한 것 같은 식당. 묵직한 커피 향기가 맴돌아야 할 것 같은 인테리어와 푹신한 소파 사이 테이블에 끓는 뚝배기 속 오리백숙의 향이 어색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때 앳된 얼굴의 군인과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가게로 들어섰다.
“7시 예약했어요.”
테이블에 앉은 그들이 소곤소곤 채 몇 마디를 나누지도 않았을 때, 아주머니가 펄펄 끓는 뚝배기를 씩씩하게 버너 위에 올린다.
“익어서 나왔으니 바로 드세요.”
원피스의 여자가 고기를 가득 떠 군인에게 건넨다. 그런 여자를 쳐다보는 군인의 입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왜 웃어?”
“......"
"왜 자꾸 웃냐고?”
"...... 귀여워서......”
역시 연인 사이였구나. 남자 친구의 몸보신을 위해 고른 오리백숙이겠지만, 군생활에 지쳐가던 그의 마음을 달래주는 건 자꾸 접시를 채워주는 그녀의 얼굴인가 보다.
“나 닭다리 안 좋아해. 오빠 더 먹어.”
“응? 이거 오리백숙인데?”
“...... 응. 나 오리 다리 안 좋아해. 오빠 하나 더 먹어.”
봄날 산수유 같이 예쁜 이 연인의 대화에 힐끔 고개를 돌리는 순간, 군복 위 작대기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별이 가장 많이 찾아온다는 일병 말호
봉의 고비가 이 산수유 커플에게도 찾아올 것인가.
그리고 문득, 서른 넘어 때 묻어버린 우리네 과거에도 이들처럼 순수했던 사랑의 시간들이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고무신. 분단이 만들어 낸 불행하지만 가장 순수했을 사랑.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던, 짝사랑도 아닌 사랑인데 가슴이 닳아 없어질 것 같은 아쉬움에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사랑의 시간.
오리 백숙 집을 나와 밤 길을 달리는데 양평 가득한 모텔과 무인텔의 수요가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 기다림의 시간 끝에 서로를 만나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수많은 청춘들이 군복과 예쁜 원피스를 벗고 서로의 넘치는 사랑을 밤새 섞는 곳.
산수유 커플도 그렇게 하나가 되고, 다시 수개월의 시간 잘 지내자는 포옹과 키스를 나누고 서로 다른 행선지를 향해 등을 돌리겠지.
양평, 그곳의 청춘들. 군복 위 작대기가 늘어가고 하나 둘 후임이 늘어갈수록, 하나 둘 시련이 주는 아픔을 겪고, 어른이 되어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이별하고, 언젠가 양평에서의 그 밤을 추억하고, 후회하고, 아파하고, 또다시 시작하겠지.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사랑으로 가는 길에 벽을 세우고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던질 질문들을 쌓아만 가겠지.
마침내 마침내 모든 문을 통과해 마음에 다다른 것 같은 사람에게 깜빡 잊었던 줄자를 꺼내 재어보고 그를 다시 문 밖으로 밀어내는, 사랑의 진화. 아니 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