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이 그러하듯, 소설로 쓰고 싶은 이야기도 갑자기 찾아올 때가 있어. 인제 보니, 무슨 신내림처럼 얘기하고 있네. ^^ 뭐,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을 거 같아. 신내림도 시가 찾아오는, 또 다른 형태일 테니까.
아무튼, 가끔 소설도 쓰게 돼. 약간 감당할 수 없는 거라도, 지르고 보는 심리 같아.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매료된다면, 앞뒤 가리지 말아야지!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능에 몸을 맡기면 즐겁기 때문이야. 나에게 소설을 쓰는 거란, 부모님 속 썩일 사고를 치는 것과 같은 감각인 거지.
난 내가 생각한, 어떤 소설도 책임질 수 없어. 나에게 그것은, 단편적인 아이디어일 뿐이거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사진 한 컷 찍어내는 것뿐이야. 물론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면,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희대의 한 컷을 찍어내겠지만, 그런 장인정신과는 좀 거리가 있지. 어쩌면 내겐, 하고 싶은 말이 짧으면 시고, 중간 정도면 소설이고, 말도 안 될 정도로 길거나 짧으면 헛소리인 걸지도 몰라. 딱히 다를 게 없는 말들이 얼마나 장황하냐에 따라 분류되는 거지. 소설은 특히, 갑자기 매료된 꿩이 도무지 날지 않아서, 닭이라도 사용하는 느낌이야.
그러는 판이니, 시작한 소설을 도무지 끝맺을 수가 없는 거야. 항상 새로운 비전의 장면을 시작하고만 있어. 하나의 이야기에 기막힌 기승전결과 세계관, 서스펜스를 유지하면서도 때로 놀라운 반전을 사용하는 게, 나의 영역은 아니라고 봐. 물론 내가 만난 거의 모든 작품이 그렇기에 재밌는 거지만, 이상하게도 내 작품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고 싶은 얘기를 굳이 돌려 말하는 동시에, 아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야 한다니! 나에겐 좀 사치스러운 일인 거 같아. 난 한 가지도 제대로 해낼까 말까 한 놈이니까.
그래서 한동안 스토리가 없는 소설을 써보려고 했어.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지. 그런 잔꾀를 부리는 걸, 오만이라고 부르는 거야. 이건 미국의 스탠딩 코미디가 정말 멋있어 보여서, 만일 내 인생을 망친다면, 다 포기하고 미국으로 날아가 코미디언이 될 거라는 망상과 같은 수준이야. 하지만 지금도 그렇게 놀랍진 않아. 난 그런 미친 상상을 밥 먹듯이 하니까…….
자괴감을 대가로 이 두 흑역사를 언급하는 이유는, 두 가지 모두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없는 상상이기 때문이야. 한 마디로 생각할 가치도 없는, 저급한 상상이라는 거지. 그 상상들을 실행한다면, 난 수없이 노력하는 모든 작가와 코미디언에게 모욕을 주는 거야. 그들이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의 가치를 깎아내리고선, 같은 반열에 서려고 한 거니까.
하지만 이 모든 걸 머리로 알고 있어도, 나라는 인간은 여전히 비겁한 놈이야. 난 여전히 가끔 소설을 쓰게 되고, 기회만 되면 개그 욕심을 부리는, 그런 존재라는 거야. 억만장자의 성공 신화를 칭송하면서 비트코인을 사는 심리랑 비슷한 걸까?
이건 또 많은 투자자를 욕보이는 거지만, 즉석에 생각한 비유 치곤 괜찮은 거 같아. 실력으로 돈과 명성을 차지한 사람을 인정하고 선망하지만, 아무튼 돈을 쉽게 벌었으면 싶은, 그런 심리……. 분명 난 이런 투자 시스템이 그저 싫은 거 같아. 상당히 비뚤어진 시선이네. 아무튼, 이 주제도 다음으로 미루면 좋을 거 같아. 이야기가 엇나가면 곤란하니까.
다시 내 욕심으로 돌아오자. 사실, 이런 욕심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지. 어떤 상상이든 모두 자유니까. 아직 내 머릿속에 있다면, 그들은 모두 무죄고 무적인 거지. 그런 측면에서 코미디언의 상상은 완전 무죄야. 얘는 그냥 장난 어린 판타지 같은 거니까. 누구나 다른 세계에서의 상상이 하나쯤은 있는 법인걸.
하지만 스토리 없는 소설은 유죄야. 난 이걸 심각하게 생각하고, 실현하려 하니까. 물론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야. 내 나름의 글을 쓰면서, 생각나는 소설의 장면들도 끼워 넣으려는 거지.
난 이기적이야. 아무런 책임도 지지 못하는 이야기라도, 내게 찾아오는 하나의 시상일뿐인걸. 난 그런 불완전한 이야기도, 그 자체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이라고 생각해. 난 생각나는 시상들을 안 적고는 도저히 못 견디겠어. 게다가, 난 그 모든 자잘한 것들에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잖아. 그렇다면 그저 하던 대로,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를 해나갈 뿐이야.
그렇게, 이렇게 못난 나라도 가끔은 소설을 쓰게 돼. 이것도 하나의 시상이니,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닌 거지. 그저 가끔 보게 되는, 자신이 소설을 구상하고 써본 적이 있다는 친구들의 취미랑 완전히 같다고 생각해. 물론, 난 뻔뻔한 거야. 내 욕심으로, 완성할 수도 없는 이야기를 세상에 던져버리기로 정한 거니까. 그래도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보단 훨씬 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