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보라
자주 보라 자줏빛 보라
없을 거 같이 있는 소리야
자주자주 보고 싶어 자주 보라야
자주 보라 자주 보랑
검붉힌 게 귀엽다는 자색 친구야
자주자주 같이 놀자 자주 보라야
자주 보라 자줏빛 보람
네가 있어 무지개야!
자주자주 사랑하자 자주 보라야
특이한 특별함 자주 보라야
무지개를 만들자 자줏빛 보람아
사랑을 머금자 자줏빛 보랑아
언제나 그렇지만, 난 평소보다 더 흥분돼 있어. 왜지? 아, 오늘은 특별한 날이구나. 오늘은 특별히 기대되는 날이야. 사실 오랜만에 흥분한 거지. 그래, 점점 기억나. 내가 이 좁은 강당에 젊은 사람들과 옹기종기 앉아 있었던, 이때가…….
(중략)
내가 스스로, 나라는 존재의 가벼움과 구차함을 느끼며 경멸하는 이유는 뭘까? 사람은 보통 자기애가 강하지. 나도 마찬가지야. 난 날 세상에서 제일 아끼는 거야. 하지만 나도 자신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을 거야. 이 모순도 분명, 결국 자신을 위한 행동이니까 계속되는 거겠지.
우리의 지독한 자기 합리화를 보통은 인지하지 못해. 한 대학교수는 우리에게 자기 합리화를 인지하고 비판하고 벗어나야만,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그것이 사회과학의 시작이라고 했지. 맞아. 그저 던진 거야. 간단하게 이해되지 않으니까 던져야 했던 거야······.
아! 물론 내가 이런 지론에 영감과 인상을 얻어서 자아비판 하는 건 아니야. 난 정말 우연히 얻어걸린 거 같아. 네 덕에 난, 혼자선 알 수 없는 것을 많이 마주할 수 있었거든.
인간관계란 기본적으로 이런 거야. 사랑이 작용하면, 더 특별해지지. 난 네 덕에, 내 존재의 가벼움을 배웠어. 나의 졸렬함과 내숭과 비겁한 생존 전략, 상식과 우월주의, 수없는 가면 속 표정 연기를 발견한 거야! 모든 인간이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도. 네 덕에 난, 전에 없이 뒤틀려선, 낯간지러운 표현들에 중독된 거야.
난 절망해 버렸지. 그 어떤 것에도 떳떳하지 못할, 내 존재의 가벼움······. 그 사실을 너는 알까? 넌 나에 대해, 난 너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 걸까? 지금보다 널 몰랐을 때, 난 네가 한없이 가벼운 존재인 줄 알았단다. 나하고 네가 자유를 찾는 개인인 줄로만 알았단다.
하지만 난 가벼움이나 자유 같은 것을, 사실은 잘 몰랐던 것 같아. 네가 내 앞에서 사라진 때에야 알 수 있었지. 진짜 가벼운 존재는 나였고, 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거운 사람이었던 거야. 아마 네가 옆에 없으니까, 널 더 사랑할 수 있게 된 거야. 자유로운 사람은 무거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인 거지······. 근데, 이걸 다 알아도 난 여전히 네가 참 밉다?
진짜로 이제 영원히 내 옆에 있을 수 없는 걸까? 한없이 기다리는 그날은 올까? 와줄까? 찾아갈 수 있을까? 볼 수 있을까? 언제까지 그리워하고, 그리움을 고통과 연결하는 가벼움을 견뎌야 할까? 언제까지 괜찮은 척 연기하며 버틸 수 있을까? 죽음은 언제 찾아올까?
“여러분이 사회과학부에 들어온 이유는 분명,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누군가는 배움에 뜻이 있어서, 누군가는 학교가 마음에 들어서, 누군가는 성적에 맞춰서, 누군가는 별생각 없이.”
아마 대부분이 듣지 않을 시간에, 널 처음 봤어.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내겐 충격적인 일이었지. 대부분 학생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 하지만, 교수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에 개의치 않았지. 그저 자기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는, 그런 사람이었어.
대단한 사람이지. 이치에 맞는 지식을 추구하고, 학생들에게 자신의 지식에 도전시키려는 교수였어. 짜증 나는 구석이 있었다고. 아무튼, 그 정도로 무난하게 끝을 맺을 자리였어. 다들 그 정도로 끝나길 바라고 있는 그런 자리. 그야, 지금은 새터 행사잖아?
교수의 훌륭한 연설이 끝나면, 모두 박수를 보내고, 한 10초간 질문을 기다린 다음, 다시 박수로 교수를 떠나보내고, 진행자가 감사의 말을 짧게 전한 후, 다음 프로그램을 속행하는 뻔한 스토리 말이야. 그렇게 비겁하게 구차한 형식으로 끝맺을 자리인 거야. 하지만 너는 왜······.
“하지만 여러분이 ‘이’ 나라에서 ‘이’ 학교에 들어와 ‘이’ 학과에 들어온 이상,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아요. 오늘은 세 가지 정도 말해 볼게요.”
당시에 난, 교수라는 존재 자체에 꽤 놀라고 있었지. 나이에 맞는 지혜는 흔한 게 아니거든. 사람들은 이걸 연륜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연륜이라면, 왜 별로 느낄 일이 없는 걸까? 아마 이런 말을 ‘논어’같은 고전에서나 봤기 때문일 거야. 우리 세대에겐 진지충이지만, 내겐 존재 의의인 한 가지가, 책 속을 탈출하곤, 눈앞에서 말하고 숨 쉬는 귀중한 경험이었어! 하지만 너는······.
“그 첫째는 여러분이 이 학교에 온 이상,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이 말은 대학생이 될 거냐, 고등학교 4학년이 될 거냐의 문제예요.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또 큰 학문을 하는 대학생으로서 마음가짐을 새로 해야 할 거예요. 세상과 사회와 인간을 똑바로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언제나 자신의 머리를 깰 수 있는 망치를 갖추고, 진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큰 학문의 숙명입니다.”
교수는 우리의 눈치를 살피더니,
“물론 이 나라의 많은 대학생이 고등학교 4학년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을 우리는 입 밖에 낼 수 없죠. 어떻게 입 밖에 내~, 이런 말 하자마자 빨갱이로 몰려서, 사회적 총살을 당하는데~.”
우리는 조금 웃었어. 연설은 유머를 활용하기 마련이지. 진실로 다가가는 노력의 총살······.
“두 번째로 전하고 싶은 것은, 사회과학은 과학이라는 것이에요. 우리가 들춰볼 사회과학이라는 학문이 과학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앞으로 인간의 과학적 추구를 알게 될 겁니다. 자세한 건 수업을 들으면서 터득해 나갔으면 해요.”
다시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어. 의외로 많은 학생이 집중하고 있는 거 같아.
“세 번째는 그 어떤 것도 맹신하지 말라는 거예요. 맹신과 신뢰는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큰 학문을 하는 이상, 망치를 가지고, 스스로 머리를 깨면서 나아가야 해요. 그 과정에서 맹신은 방해가 될 뿐이에요. 자신의 모든 믿음을 의심하세요. 모든 주장과 텍스트를 의심하세요. 이렇게 여러분에게 잘난 척 설교하는 교수를 선배를 동기를 믿더라도, 맹신하지 마세요. 까놓고 보면, 어느 의미에서 다들 사기꾼이야~.”
이번에도 조금의 웃음이 스쳐 가. 뭔가 씁쓸하게 훈훈하다는 느낌이 있다면 이런 건가? 하지만 난 저 말의 무서움을 알 거 같아…….
“제가 전하고자 하는 건 여기까지예요. 지겨운 말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여러분.”
그 인상 좋은 교수의 연설이 끝나자, 예상한 대로 박수가 이어졌어. 반쯤 격양된 건 의외였지. 꾸밈없는 그런 박수 소리가 뒤섞이고 있어. 오묘했지…….
“혹시, 질문이 있을까요?”
모든 박수 소리가 그치기 직전에 교수가 한 말이었어. 맞아. 분명 더 듣고 싶은 얘기였지만, 그냥 그렇게 지나갈 순간이었다고. 하지만 너만은······. 거리낌 없이 손을 들었어. 그 반역의 손을······. 그 작고도 무거운 손을······.
“거기, 학생?”
웃을 때 하회탈처럼 주름이 잡히는, 인상 좋은 교수가 너를 지목했어. 조금 놀라운 건, 교수의 기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단 거였지. 여태 내가 본 선생들은 질문이 있냐고 물어놓고, 있으면 놀라는 사람이었지.
“네. 교수님은 저희가 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저희가 변해야 한다고 확신하시죠? 누군가는 변하지 않아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변하지 않는 것에 행복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은 왜 변화에 그렇게 집중하시죠?”
!!!! 묘한 분위기가 흘러. 분명 누군가는 질문 자체에 의문을 품고 있었고, 누군가는 흥미로워했으며, 누군가는 관심이 없었지.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반응의 애매한 합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반응을 오묘하게 숨기려고 하는 제스처와 숨소리, 손짓과 속삭임들로 만들어지는 거야. 항상… 그런 거야…….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좋은 질문입니다.”
조금 뜸을 들이고 있었지만, 교수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어. 사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뭔가 즐거워 보인다고 할까? 아니, 원래 그랬는데, 이제야 발견했다는 쪽이 정확할 거야. 어쩌면 즐거워함의 정도가 강해져서, 나도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가 더 정확할지도.
“전 변화에 대해 말했고, 그것이 여러분 전체를 칭한 것으로 보이는 것을 인정하는 바예요. 그런 의미에서 내 발언을 조금 수정하자면, 전 여러분의 대부분이 마주하는 변화를 얘기한 겁니다. 방금 학생의 말처럼, 모두가 변화하지는 않아요. 인간은 각각 개인의 수만큼, 다른 존재니까요.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서, 제 말이 여러분 대부분을 칭했을 때, 그 함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새로운 환경에 놓일 때, 변화할 가능성이 큰 존재예요. 사고의 역전, 상식의 변화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전 그런 순간을 맞이했을 때, 대부분 인간이 변한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것은 존재가 서로 다른 점을 가진 만큼, 같은 점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죠.”
교수는 잠시 뜸을 들이며, 우리의 반응을 살폈어.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이 대학생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 만큼, 새롭고 멋있는 사고들과 마주하고 고심하며, 변화하길 바란다는 겁니다. 그 속에서 그 무엇도 맹신하지 않고, 나름의 해석을 해나가는 대학 생활을 했으면 합니다. 대답이 됐을까요, 학생? 시간상 모호한 부분은 이해해 주길 바라요.”
교수는 너와 진행하는 선배를 차례로 바라보며 말했지. 선배는 조금 급하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고.
‘쟤 좀 나대지 않아? 뭘 쓸데없이 질문하는 거지? 재수 없어. 특히 저 말투 말이야.’
순간 내 귀에 스쳐 가는 말이었어. 분명히 익숙한 말인데, 평소보다 많이 거슬리네. 언제나 그렇듯, 스쳐 가는 속삭임은 하나가 아니게 되지. 하지만 조금은 다르다고 할까?
‘쟤 진짜 특이하다.’
‘좀 귀엽지 않냐?’
‘괜히 잘난 척하는 거겠지.’
‘나도 질문할 걸 그랬나?’
‘교수님 정말 멋있어~.’
‘왜 별거 아닌 거로 말꼬리를 잡는 거지?’
‘관종이야, 관종.’
왜였을까? 평소처럼 그 속삭임을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확실한 건, 내가 거의 모든 것에 반감을 품고 살아왔다는 거야. ‘구차하게 타인을 깎아내리는 비겁자 사회’의 필연엔 물론이고, 그곳에 뒤섞이고 싶어 하는 나의, 이해 안 되는 존재의 가벼움에도. 나도 저들과 다를 바 없을 것임에도, 이 집단의 속삭임에 익숙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분하고 짜증이 난단 말이야.
왜 난 교수의 말에 감격한 걸까? 나도 변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새로운 지식에 대한 기대 때문에? 그냥 격양되어서? 너의 질문 때문에? 모르겠어. 아무튼 어이없고 웃긴 일이야.
가장 궁금한 건, 네가 그 교수의 연설을 들을 때 ‘무슨 생각이었는가?’야. 너의 존재하지 않는 족쇄처럼, 그냥저냥 해버렸을까? 너와 나도 다른 만큼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 뭐, 이런 것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지.
새터 행사는 생각보다 재밌고, 흥분되는 경험이었어. 비겁한 속삭임 따윈 금방 잊을 만큼, 그들은 빛나는 존재들이었거든. 여태 본 사람들이랑은 달라. 물론 대학생이 되었다는 생각에, 모두 새로운 자신을 연기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런 건 상관없는 거 아닐까? 난 여기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이 마음에 들어. 어렵든 쉽든 좋든 싫든 말이야.
하지만 난 내 오랜 습성을 버릴 수 없어. 난 몰려다니는 스타일은 아니야. 통제가 끝나길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지. 온종일 남에게 둘러싸이는 것만큼은 질색이야.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거든. 아무리 남이 재밌어도 난, 내가 가장 좋아. 신경 쓰이는 거도 많았고.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오늘 바로 정해야겠어. 멍청한 술 게임에 물이 오르면, 빠져나갈 구멍이야 얼마든지 있지.
난 혼자 밖으로 나왔어. 여긴 분명 시골이거든. 그 말은, 새벽에 수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거야. 그렇게 한참을 버티던 기억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