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여, 눈을 뜨세요

by 윤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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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 그리기를 좋아한다.
하얗게 비어있던 눈구멍에 우주를 그려 넣는 희열이란. 수차례의 사각사각 끝에 그윽한 눈매의 소녀를 마주하면 - 알이라도 낳은 듯 뿌듯하다.
한때 나는 많은 소녀를 낳았고, 오똑한 콧날과 도톰한 입술에 생기를 더하는 눈동자에 집착하곤 했다.
눈 그리기의 아쉬운 점은 그 주변을 열심히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코의 그림자와 턱 선이 미흡하면 끝내주는 눈을 그려도 아름답지가 않다. 마지막 잠깐의 쾌감을 위해서는 뺨과 콧볼과 우묵한 눈가에 음영을 넣는 수고를 감당해야만 한다.

세상만사가 그런 것일까.

이상한 소설을 적어둔 노트를 학교 애들이 돌려보던 열여섯의 초봄.
문예창작과를 갈 것인가 미술과를 갈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운동장에 쪼그려 앉아 앞머리를 매만지는 친구들과 고민상담을 했더랬지.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은 교복 입은 어른과 다름없다. 심지어 글을 쓰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 중 어떤 게 취직하기 편할까 생각했던 것을 고백한다. 현실과 이상, 적성과 진로. 오만 기준을 벌여놓은 수다판에 깃발을 꽂은 것은 노래방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좋아하는 걸 일로 하면 금방 싫어질 텐데."

혼자 서너 시간은 너끈히 마이크를 붙잡고 있는 애. 그래 놓고 너는 왜 가수를 준비하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취미가 직업이 되면 지겨워진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읽은 듯도 하다. 그건 싫은데.
글쓰기를 따분해하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나의 유일한 친구, 하나뿐인 다락방.
상담실 선생님보다 책 속 한 문장이 나를 달랬고 울적한 마음은 일기장을 달리는 연필만 닦아주었다. 내가 온전히 다리 뻗고 누워 쉴 수 있는 이 작달막한 공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미술과에 갔다.
그림은 덜 사랑했으니 100명 중에 98등을 해도 견딜만했다. 3년을 그린 끝에 얼추 그림 직하게 되자 붓과 도화지의 냄새도 좋아지더라.
좋아는 하지만 잘하지는 못하는 최초의 일.
사랑하지 않으니까 자존심이 덜 상했던,
나를 짝사랑하는 못생긴 남자애 같은 일.

붓과 색연필로 대학까지 갔지만 졸업을 앞두고 그림을 일로 삼지는 못했다. 그만큼 잘 그리지도 못했을뿐더러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액수의 크기를 생각하면 돈을 만들어내는 일을 택해야 했다. 그 관점으로만 보면 4학년에 부전공으로 경영을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나는 졸업장 잉크 마르기 전에 사원증을 받았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잘 모르는 일들을 하면서 안정을 행복으로 포장했다.
아메리카노 대신 프라푸치노를 선택할 수 있고 이따금씩 호캉스를 즐기는 주말. 작아도 확실한 여유야말로 최고의 호사라고 늘 되뇌었다. 좋아하는 일,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하는 일은 취미로 하면 되니까. 부담 없이 일하고 주말과 휴가에 쉬는 일상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자책했다. 욕심은 더럽게 많아가지고 감사할 줄 모르는 스스로를. 하지만 끝내 저 깊은 구석에 숨겨뒀던 질문이 눈을 깜빡이기 시작한다.

평일 동안의 노력은 무슨 결과를 가져오는가.
때때로 쉬지만 대부분 일을 하는 내 젊은 날의 결국은 - 무엇이 되는가.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성공한 스토리들이 친구의 지인으로 들려올 때면, 풀이 죽었다.
월급 모아서 결혼하고 대출받아 집 사고 아이를 키우는 알콩달콩한 내일에서 설렘을 느낄 수 없다면,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다고 그들처럼 당장 퇴사하고 뭘 시작할 용기도 없는데. 아니, 뭐부터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문예창작과를 갈 것인가, 미술과에 갈 것인가와 꼭 닮은 고민의 기로에서 나는 맴맴 돌았다. 노래방을 좋아하는 친구를 불러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는 왜 결국 가수의 길을 포기했느냐고.
좋아하는 걸 일로 하다 보니 싫어졌던 거냐고.

좋아하지 않는 것을 일로 삼아 무미건조하게 사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하다가 싫증이 나는 것. 둘 다 끔찍하지만 걸어보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지금뿐이라면. 안 하고 후회하기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직업 찾기를 시작했다.

내가 잘하는 일은 무엇일까.
일곱 개의 업을 갈아치웠어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부끄럽지만 그건 더더욱 모르겠다.
막연하게 좋아한다고 여겼던 것도 일이 되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다. 스스로 삶의 재미를 깎아내고 있는 것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여전히 눈동자 그리기는 재미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짙은 보랏빛 틈바구니로 하얀 눈동자를 그리고 있노라니 조금 마음이 가라앉는다.
어쩌면, 아직 윤곽선을 그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완성되기 전까지는 콧볼이며 이마며 광대의 붓터치가 어색한 법이니. 내가 그리는 얼굴이 유난히 커서 막막한 기분이 오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누군가는 평생 동안 여러 개의 눈동자를 그리기도 하고, 일생을 바쳐 하나의 눈동자를 그리기도 한다. 어느 것이 더 아름답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나의 소녀도 언젠가 눈을 뜨게 되리라는 것을 믿고 기대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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