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직장의 이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다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식물들이 대거 동사(凍死)했다. 이사 가는 집에 벽지가 너무 지저분해서 도배를 하려고 하루 보관이사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영하의 추위에 겨울철 이삿짐 트럭에서 하루를 지내는 게 식물들에겐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얼마나 사랑으로 키워온 식물들인데.. 마음이 아팠다.
이제 곧 봄인데.. 다시 초록초록한 식물을 들여야지 하는 마음으로 대형마트 배달 어플에서 식물들을 주문했다. 잠시 외출하고 돌아오니 문 앞에 식물들이 배송되어 있었다. 80년도 후반에 태어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급격한 산업변화를 겪었지만 클릭 몇 번으로 집 앞까지 화분이 배송되는 사실은 아직도 너무 신기하다.
내가 좋아하는 고무나무, 테이블야자, 아레카야자 화분을 개당 3천 원~7천 원의 가격에 구입해서 집에 있던 화분에 분갈이를 해주었다. 화분들을 줄지어 놓고 햇빛에 반짝이며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초록한 잎사귀들을 바라보면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한지 모른다.
15년 된 구형 아파트의 장점은 베란다가 넓고 커다란 통창이 있어 식물들에게 바람과 햇빛을 충분히 선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탁 후 물기가 있는 옷감을 탁탁, 털어 베란다 건조대에서 햇볕에 바짝 말릴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렇게 올초에 새로 들인 식물 식구들이 우리 집에 잘 적응해서 새로운 잎을 피워낼 때, 나는 행복을 느낀다. 일요일마다 식물들에게 물을 줄 때에도 꼭 아이들에게 하듯이 다정한 말을 건넨다.
"많이 먹고 쑥쑥 자라렴~!"
실제로 식물들에게 애정을 주고, 다정하게 말해주면 더 잘 자란다는 결과가 있다. 양파 두 개를 수경재배하면서 한 양파에는 칭찬과 사랑의 말을 해주고, 다른 양파에는 나쁜 말을 퍼부으면 칭찬과 사랑을 받은 양파가 훨씬 더 잘 자란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말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치면서 많이 하는 실험이다.
어제 오후, 우리 집 식물 식구들을 살펴보다가 극락조 화분에 돋아난 새 잎이 너무 크게 나서 잎사귀 끝부분이 창문에 닿아 많이 구부러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살살 잡아서 예쁘게 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잎사귀를 건드렸다가 금방 악! 소리를 질렀다.
극락조 잎사귀가 지익~ 하면서 끝부분이 결대로 찢어진 것이다. 다른 식물에 비해 잎이 단단하고 두꺼워보여서 찢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찢어지니 너무 당황스럽고 미안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식물도 사람도 본디 난대로 살아야 행복한 것인데...'
내 입맛에 맞게 예쁘게 고쳐보겠다고 하다가 식물에게 오히려 상처를 입혔다. 분명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일인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무리 커도, 자식을 마음대로 하려고 너무 옥죄면 자식은 숨이 막힌다. 지인 중에 아주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란 분이 있는데 그 분은 어릴 때 너무 계획적이고 엄격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언제나 자유를 갈망했다고 한다.
나도 타고난 대로, 나답게 살아야 행복한 사람인데 그동안 너무 주변의 시선에 맞춰, 사회에서 보편적이라고 말하는 가치에 맞춰 살려고 애쓰다 보니 자연스럽지 못하고 힘들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과하게 나를 억누르면 남에게 좋은 사람처럼 보일 순 있으나 행복한 사람이 되기는 힘들다. 당당하게 나를 드러내고 예의를 지키면서 내가 할 말을 제대로 하는 것은 타인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다. 찢어진 극락조 잎이 준 교훈을 되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