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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Mar 31. 2023

 '말하길 잘했어!'마주하니 치유가 시작됩니다.

이제는 나로 살아갑니다.

참았다. 몰라서 참았고 말하면 상처받을 엄마를 지키고자 참았고, 내가 용기 내어 이야기를 했는데 원하는 반응이 아니라 비난하고 평가하는 말이 올까 봐 두려워 날카로운 말로부터 나를 지키고자 내 감정과 욕구를 억압하고 살았.


리고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난 괜찮지 않았고 그 깊은 슬픔은 나도 미처 몰랐던 거라고. 그리고 이제야 알았다.


 '아픔을 인정하고 표현할 때 그리고 상대가 잘못을 인정할 때 상처는 치유되고  관계는 돈독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지내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포기하고 상대의 감정과 욕구 그리고 상황에 맞추며 살아가는 날들이 많다. 

내가 약해서 내 감정이나 욕구를 알지 못해서 나보다 더 소중한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서 내 욕구와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고 살았고 엄마 또한 어린아이들을  가난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당신이 자신보다 더 소중한 부모님들께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자신보다 약한 아이의 감정과 욕구도 알아주지 못하고 살았다.


그 그림자는 언젠가는 나타나게 되나 보다. 감정이 쌓이고 몸이 힘들고 이성의 통제가 느슨해지는 순간이 되면 엄마는 스트레스를  힘들었던 시간 속에서  남편으로써 보호해 주지 않았던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서운함을 표현하였고 나는 그보다 좀 더 성숙하게 해결하고 싶어 공부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려 노력하였지만 저 깊은 곳에 있던 무의식이 결국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해버렸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참았던 감정을 자신을 살리기 위해 표현하는 용기를 낸 것이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 엄마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괜찮은 사람임을 인정하기 위해 참고 또 참았지만 터져버린 것이다

"엄마는 날 버렸잖아."우연히 터져버렸지만 그 순간을 기회로 엄마와의 사이에 벽은 무너졌고 그 불편한 벽은 이제 엄마와 나 사이의 징검다리가 되어 우리를 연결시켜 주고 있다.


우리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수용해 줄 때 위로를 받는다. 아픔을 공감해 줄 때 위로를 받는다. '오죽하면 네가 그런 생각을 했겠니'라고 내 감정과 욕구와 정당성을 인정해 줄 때 비로소 우리는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불편한 감정을 억압하는데 쓰는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니 그 에너지를 내 마음에 집중하는 데 쓰고 세상을 관찰하는 데 쓰니 내 마음에 힘이 생기고 자연의 변화도 더 섬세하게 다가오고 타인의 감정과 욕구가 더 잘 보여 편안함과  연결됨, 자유로움이 선물처럼 찾아왔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고 나니 긍정적 감정이 올라왔다. 감각과 감정이 깨어나고 인식하니 내가 주인이 된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보듬어 줍니다.

나무야 말하길 잘했어. 용기 내주어서 고마워.

말하고 나니 오롯이 너로서 살아갈 편안함이 엄마와의 관계에서 친밀함이 찾아오잖아

인간에게는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한다고 한다. 하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적응하기 위한 나이다.  이 둘이 일치하면 가장 좋다.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며 살면 되니까.


그러나 그러지 못한 상황이 되면 둘 중 보여 주었을 때 더 안전한 자아가 남고 나머지 자아는 무의식에 저장되는 것이다. 나는 상처받고 약하고 섬세하고 외롭고 두려움이 많은 자아가 무의식이란 저장 창고에  저장되었다.  무의식을 의식화하여 알아주니 편안함이 찾아왔다. 무의식 창고에 있는 그림자는 허용하면 힘이 약해진다. 부정적인 감정은 알아주고 수용해 주면 약해진다.



나무님들

혹시 이 글을 읽다가 나도 내 상처를 엄마에게 또는 상대에게 말할 용기를 내어 볼까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은 저에게는 내가 내 상처를 외면하지 않겠어라는 말로 들려 고맙습니다. 상처받은 나를 나만이라도 알아주고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겠다는 다짐으로 들립니다.


혹시 말해볼 생각이라면 말했을 때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말해도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말했을 때 평가 판단 조언 없이 오롯이 함께 느껴주는 사람에게  먼저 말한 후에 감정을 정리하고 엄마나 상대에게 말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 방법이 아니면 글로 써서 내 마음을 충분히 정리하고 난 후에 내가 이 말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감정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지  답을 찾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말하는 목적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되는 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상대와 나 사이의  벽이 징검다리가 될 수 있고 친밀함과 편안함이 찾아올 확률이 높아질 것 같아요.



이전 15화  '미안해'가  '밥 먹자'라는 말로  배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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