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날 버렸잖아"라고 말하고 나서 20여 일이 지날 때까지 엄마에게선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나도 연락하지 않았다. 평소의 나라면 나이 드신 엄마 마음 불편할까 봐 먼저 찾아가서 미안하다고 하고 화해의 제스처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하지 않았다. 아니할 수가 없었다. 한번 폭발한 마음에서 분노가 지나가니 슬픔이 찾아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무기력하게 막고 있었다. 난 마음을 달랬다.'알았어. 네가 허락할 때까지 기다릴게'
잘 먹지도 못했다. 목에서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난 꾹꾹 눌러 놓았던 마음을 알아주며 내면아이와 소통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허락할 때까지 난 그 아이의 서운함을 억울함을 힘겨움을 끊임없이 들어주고 있었다.
엄마와 나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그날 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당기면 끊어질 듯 팽팽한 그 감정들을.
그 시간 동안 근처에 사는 남동생이 엄마를 전담해서 돌봤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외삼촌이 엄마에게 사과하라고 했다는 말까지 들렸다. 엄마는 평정심을 찾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비롯 이모 삼촌 동생들까지 온 가족이 돌봐서 다행히 잘 회복된 것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편안하고 안도감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폭탄을 터트리고 그 폭탄이 엄마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힐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란 녀석은 나에게 먼저 다가가지 말라고 했다. 고집쟁이였다. 난 그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분노가 가고 슬픔이 오더니 슬픔 자리에 통찰이 오기 시작했다. 엄마도 힘들고 아팠겠다. 머리로 하는 이해가 아니라 온 마음으로 엄마의 힘겨움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엄마가 무관심으로 준 상처에 비수를 꽂아 돌려준 나에게 내가 실망스러웠다. 내가 더 아팠다.
용서가 아니라 이해가 되었다. 그럴 수 있었겠다. 엄마도 힘들었겠다. 엄마의 마음을 안아주고 싶어졌다. 이해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엄마에게 연락을 하고 싶어졌다. 이제는 의무감으로 하는 효도가 아닌 마음을 다하는 효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통 났던 아이가 평정심을 찾아 평온해졌다. 이제는 엄마를 만나보자고 마음이 먼저 말을 한다. 그 아이는 내가 알아주고 표현해 주고 기다려주니 꽤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 아이가 원했던 것은 마음의 주인인 내가 알아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됐다고 할 때까지 좀 더 깊이.
마음을 보듬어 줍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모습에
네가 더 놀라고 아팠을 나무야
말할 용기를 내어 알아준 후련함과
유연하게 표현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감
엄마가 놀라 아프시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으로
또 힘들어하고 있구나
잘 될 거야.
네가 유연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그만큼 네가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고
엄마 사랑을 간절히 원했던 거란다.
다행히 엄마는 잘 지내시는 듯하니
앞으로 엄마를 더 많이 사랑하면 되겠다.
엄마가 표현해주지 않아서 상처받았으니
네가 더 많이 표현하고 살자.
똑같이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먼저 주는 방법으로 마음을 표현하자.
나무 너답게
나무님들은 엄마,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힘들다면 나무님들의 마음을 만나보기로 해요. 마음은 감정으로 우리의 경험을 기억한대요. 혹시 엄마나 아버지와 편안하지 않다면 상처를 받았다고 서운했다고 억울했다고 마음이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 마음에 머물러서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그러면 마음이 괜찮다고 신호를 줄 거예요.
더불어 자녀가 당신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어려워한다면 자녀가 상처를 받았다는 신호일 수 있으니 자녀의 마음에 머물러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어떨까요. 그러면 자녀가 당신이 기대하는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고 당신과의 관계에서 힘을 얻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