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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Mar 29. 2023

 '미안해'가  '밥 먹자'라는 말로  배달되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보듬어 주는 법

사랑한다는 말의 모양은 참 다양하다. 그리고 그 모양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는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누군가는 스키쉽을 통해 사랑을 전달하며. 누군가는 선물로 그리고 다른 이는  곁에서 돌봄을 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또한 어떤 이는 사랑을 가슴속에 꼭꼭 쌓아 놓고 보물처럼 간직만 하는 이도 있다.


미안하단 말도 동일하다. 어떤 사람은 직접 말을 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무심코 도와줌으로써 마음을 전하고 어떤 이는 표현하지 않고 피해 다님으로써 마음을 표현하고 다른 이는 선물을 함으로써 미안함을 보상하려 한다.


엄마는 '밥 먹자'라는 말로 미안한 마음을 전하셨다. '밥 먹자'는 '미안해'로 해석해 들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엄마가 궁금해질 때쯤 엄마가 먼저 연락을 주셨다. 엄마 전화번호를 확인한 순간 반가우면서도 선뜻 통화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끊어질 무렵 조심스럽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긴장하고 받는 나와 긴장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애쓰는 엄마 사이의 어색함이 양방향으로 전달된다. 멀리 떨어져 있는 데도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의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점심 먹었냐? 안 먹었으면  김밥 먹으러 와라"

사포처럼 쏟아내고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허겁지겁  끊으셨다.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편안해졌다는 신호였다.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어색함과 불편함 그리고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놓았던 말을 해버렸고 엄마는 그저 잘 자랐다고 생각했던 딸에게서 벼락같은 말을 듣고 약 한 달가량이 지났지만 아직은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러나 그것을 깨기 위해서 난 기꺼이 엄마를 만나기로 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토마토를 한 박스 사서 엄마 집으로 향했다.


"엄마~"

"왔냐? 맛있는가 먹어봐라"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눈을 피하며 준비해 놓은 김밥 접시를 내민다. 나 또한 눈은 허공을 응시하며 토마토 박스를 엄마 앞에 놓았다.

"맛있네~엄마도 토마토 먹어. 좋아하잖아"

김밥 하나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맛있으면 됐다. 많이 먹어라."라고 말하며 엄마는 토마토를 집는다. 토마토를 씻어 입에 베어 물고 엄마가 박꽃처럼 웃는다. 그 웃음에 나도 따라 박꽃이 된다.


김밥과 토마토는 엄마와 나 사이의 높은 벽을 눕혀 둘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징검다리가 된다. 박꽃 같은 웃음은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전하다는 신호이다.


우린 그날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때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고  이상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표정으로 엄마의 미안한 마음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만들어준 김밥은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는 엄마만의 사과인 것이다. 김밥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울푸드였고 엄마는 그것을 통해 난 네가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 또한 엄마가 좋아하는 토마토로 엄마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라는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말하기 전보다 아직 편안해졌다고는 할 수 없다. 편안해지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난 이 불편함과 어색함을 피하지 않고 직면할 것이다. 또한  기꺼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 내 마음에 편안함과 사랑이 가득 채워지는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이미 그 시간들이 다가옴을 느낀다. 엄마의 감정이 보이고 엄마의 시간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마음을 보듬어 줍니다.


엄마에게 폭탄을 던지고

시원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을 나무야(나무는 나의 내면아이를 지칭합니다.)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니 어색하지?

당연한 거야

예측하지 못한 말

"엄마는 날 버렸잖아 "라는 말을 너는 해버렸고

엄마는 들었으니 둘 다 당황스럽고 어색하고 불편한 것은

당연한 거란다.

그 불편하고 어색한 시간을 견디면 진정한 친밀감과 편안함이 찾아올 거야.


다행인 건 너는 엄마의 "밥 먹자"라는 말을 "미안해"라는 말로 바꾸어서 들을 여유가 생겼고 

엄마 또한 토마토를 통해  "엄마 미안하고 사랑해요"라는 말을 알아듣는 지혜로운 분이시라는 거야

둘 다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용기는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마음은 전달하고자 했다는 거야

그것이 서로에 대한 사랑 아닐까?


둘 다 고맙고 감사해

특히 폭탄을 맞고도 아프지 않고

변명하려 하지 않은 엄마에게 감사하자.

그게 엄마만의 사랑 표현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여유를 가지고 엄마의 말을 잘 번역해서 들어보자.



나무님들 혹시 아플 때 약해졌을 때 술 마셨을 때 누군가에게 반복해서 하는 말이 있으신가요? 그건 이해받고 싶어서 마음이 용기를 낸 말일 거예요. 불편한 상황이 힘들어 후다닥 수습하거나 꾹꾹 눌러 참으려 하지 말고 그 마음에 머물러 주면 어떨까요? 그럼 어느 지점에서 마음이 이젠 됐다 수습하자라고 신호를 줄 거예요. 그때 수습해도 괜찮을 거예요.  


지나간 상처를 꼭 이야기하고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말해봤자 무엇이 달라지냐고 묻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달라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와 나 사이의 상처는 더 이상 둘 사이의 벽이 아니라 둘 사이를 연결하는 디딤돌이 됩니다.


과거의 상처를 알아주고 표현하면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 추억이 됩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함께 공유한 우리들은 더 끈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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