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나무 Mar 27. 2023

꾹꾹  참고 눌렀던 감정들이 폭발하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보듬어 주는 법

엄마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버림받았다는 절망감,  버린 엄마에 대한 분노(물론 엄마는 버리지 않았고 잠시 떨어져 있었을 뿐이라고 더 잘 키우기 위해 안전한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 있게 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버려졌다고 느꼈다.), 당연히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는 데서 오는 상실감, 그리고 기대했던 사랑이 오지 않은 데서 오는 슬픔,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데서 오는 외로움, 그래도 엄마라 보고 싶은 그리움, 엄마가 짊어져야 할 동생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돌봄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 사과도 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살아가는 나와 엄마에 대한 분노를 무의식에 꾹꾹 눌러놓고 겉으로 보이는 나는 행복한 척, 평온한 척 살아갔다.



잘 살아가는 듯했다. 대학교 때까지는 내 마음을 볼 줄 모르기에, 주어진 대로 앞만 보고 달리며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고 살았고 대학원에서 마음을 공부하면서부터는 내가 내 마음을 잘 다스린다고 생각하며 엄마와 겉으로 보기에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착한 딸, 예의 바른 딸, 책임감 있는 딸이 되려고 노력했고 남들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기도 했을 것 같다. 엄마도 참 잘했다. 그동안 못했던 엄마 역할을 하려는 듯 고등학교 때부터는 도시락도 정말 정성스럽게 싸주셨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하지 않게 챙겨주셨고 원하는 것은 다 해주려 노력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때도 꼭 받아야 하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정서적인 돌봄. 정서적인 돌봄이 채워지지 않으면 마음이 텅 비게 된다. 나무의 뿌리가 만들어지지 않아 뿌리 없는 나무처럼 살게 된다.


엄마는 늘 바빴다. 생존의 문제가 있기에 아침 7시에 일어나 슈퍼를 하면서 일을 시작하면 잠들기 전까지 일을 해야 했고 그 틈틈이 집안일을 하며 아버지의 기분을 맞추고 동생들을 챙겨야 했기에 나까지 챙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나는 그때 정서적으로 허기던 것 같다. 마음이 배가 고팠던 것이다. 내가 그때 원했던 것은 엄마와의 눈 맞춤 한 번, 웃는 얼굴 한 번,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런 돌봄이 필요했었지만 나는 그때 내가 그것을 원하는 지도 알지 못했고 엄마도 주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이사를 한 지 4년쯤 지났는데 이모랑 삼촌이 우리 집이 궁금하다고 했다. 다른 형제들은 집에 초대해서 식사대접을 하는데 나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을 보이셨다. 어려운 일 아니었다. 음식 솜씨 좋은 엄마가 도와줄 거라는 든든함이 있기에 나는 장소만 제공하고 몇 가지는 포장하면 한 상차림이 되는 것을 알기에 그러자고 했다.


밥을 맛있게 먹었다. 표현을 잘하는 삼촌이 기분이 좋았는지 나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셨다.

"초등학교 때 쪼꼬만 한 것이 깔( 소에게 먹이기 위한 풀)을 베어서 한 포대씩 머리에 이고 오는 것을 보면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초등학교 5학년 엄마가 떠나고 난 후 엄마아빠가 하던 일을 나와 동생이 나눠하던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시절 초등학교 3학년인 동생은 할머니를 도와 밥을 하고 초등학교 5학년인 나는 할아버지를 도와 가축을 돌봤었다.

"그랬지~ 내가 그때도 일을 참 잘했어~" 나는 웃으며 넘기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를 받았다.

"그때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아냐?"

삼촌이 그 시절에 속상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고 싶은 듯했다.

"에고~ 우리 삼촌이 속상했구나."

'삼촌이 그렇게 속상했으면 나는 어땠을까요?'라는 말이 올라왔지만 나는 내 마음이 아니라 삼촌의 마음에 집중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이때다' 싶었는지 엄마가 시집살이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연세가 드시고 엄마도 편안하다고 느끼면 단골손님처럼 할머니이야기, 힘들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반복되고 있었다. 아버지가 옆에 계셔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하신다.

"아이고~ 말도 마! 얼마나 독한지 우리 어머니, 아침저녁으로 불 때서 밥 다 해대고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나 야(나를 지칭함) 낳고 이틀 후에 나가 일했잖아"라며 힘들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 속에 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뽀작뽀작 올라온다.

"그러게 우리 엄마 힘들었겠네. 그런데 엄마~ 나도 힘들었다. 엄마도 감당하기 힘든 할머니 내가 감당했어. 5년 동안."

그때 내 이성의 통제력이 상실되고 있었다. 어른들에게 맞추느라 술을 한 잔 마신 것이 통제력을 잃게 한 것인지 반복되는 할머니 비난에 화가 난 것인지 모르지만 상대와 상황을 고려하는 말 대신 내 마음 깊은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무의식이 통제력을 잃은 것이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은 다시 엄마였다.

"아이고 왜 그렇게 독했는지~"

"사돈어른이 좀 그랬지"

이모와 삼촌 중 한 분이 엄마의 말에 박자를 맞춘다. 그때 갑자기 엄마에 대해 억압하고 있었던 서운함, 그리움, 슬픔, 부담감, 두려움, 분노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대표 선수는 분노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날 지키고 돌보며 함께 했어! 엄마는 날 버렸지만!!!"

나도 모르게 저 깊은 무의식에 있던 말을 뱉어 버리고 말았다.

"버리기는 누가 버려! 내가 힘들어서 살려고 그런 거지~"

"그게 버린 거야. 데리고 가든, 못 데리고 가면 이해시키고 가든 했어야지~ 당일 날 말하고 가는 게 어디 있어!"

할머니가 서울 고모집 이사를 도우러 가신 틈을 타 시집살이를 버티기 힘들었던 엄마는 아버지를 졸라 방 한 칸이 딸린 슈퍼를 계약하고 갑자기 이사를 강행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설득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데리고 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앞날이 불안하니까.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했었다. 그런데 나도 몰랐던 마음속 말이 튀어나오고 만 것이다. 평소의 나와 다른 모습에 모두들 놀란 듯하다. 사실은 나도 놀랐다. 준비하지 않았던 말이기에.

"그만 가자"아버지가 불편하신 듯 일어나신다. 모두들 허겁지겁 따라나선다.


 '내가 좋은 자리를 망쳤나' 하는 불편함이 올라온다. 그러나 붙잡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 불편한 마음에 머물러준다. 용기를 내서 말한 나를 내가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 말을 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이해해 주고 싶었다.


"누나 잘했어~우리 누나 힘들었겠네!" 동생의 한 마디에 내가 한 말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받고 이해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의 눈물인지, 안도와 후련함인지는 몰라도 눈물이 났다. 그날 난 울었다.


마음을 보듬어 줍니다.


"엄마는 나를 버렸잖아!"

나무야(나를 지칭하는 말, 닉네임)

너도 인식하지 못했던 마음속 말이 갑자기 튀어나와 많이 놀랐지?

괜찮아~잘했어!

네가 그랬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거야.

너의 감정은 네가 가장 잘 알 테니까

그때 너는 엄마랑 함께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속상하고 슬프고 힘들었던 거야

그것을 용기를 내어 오늘 말한 거라고 생각해.


나무야(나를 지칭하는 말, 닉네임)

너는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있었구나

아니라고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며 이해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나마 아픔을 알아주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음에는 아픔이 남아 있었구나

알아주지 않아서 억울했겠다.

앞으로는 종종 너와 만나서 내가 너의 마음에 머물러 줄게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나는 알아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용기를 내서 표현하니 동생이 위로해 주는구나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표현하는 용기도 좋아

표현하면 이해해 주는 사람이 늘어날 거야

조만간 동생의 이야기도 들어주자

동생도 힘든 것들을 말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자.


너는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야

사랑한다.



나무님들~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아서 타인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또는 습관적으로  불편함과 서운함을 견디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로 당황한 경험은 없으신지요? 혹시 있다면, 그땐 마음이 용기를 내어한 말을 덮으려 하지 말고 직면하고 만나기로 해요.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기로 해요.


사느라 살아 내느라 우리는 마음을 놓치고 삽니다. 그리고 그 놓친 마음은 우리에게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예측하지 못한 강도로 폭발하여 당황하게 합니다. 그 폭발은 알아달라는 간절함인데 모았다 터트리니 모두가 당황스러워집니다. 모으지 말고 그때그때 감정을 알아주고 표현하는 힘, 그것이 나에 대한 내가 해줄 수 있는 존중이고 사랑입니다.


편안하고 안전하며 친밀한 관계는 불편한 말도 편안하게 할 수 있어야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가 불편한 말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불편한 말도 편안하게 하는 용기를 내면 좋겠습니다. 불편한 순간이 지나면 친밀감과 편안함이 찾아옵니다.


혹시라도 내 아이가 내 가족이 상처받았다고 말한다면 그   말을  비난의 말로 듣지 말고 '알아주세요 '라는 요청의 말로 듣고 '그랬구나~'라고 진심을 담아 말해주세요.

그 말은 상대에게 '이해해주고 싶어'라는 말로 들려서 상대가 질문할 거예요. '왜 그랬냐고~'그때 상황을 말해주세요. 그럼 말한 사람은 편안해지고 들어주는  사람도 가벼워지며 둘 사이엔 친밀감이 선물처럼 찾아옵니다.



                   

이전 12화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 세운 위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