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들이었다. 어느 날은 눈보라가 쳤고 또 어느 날은 천둥이 치고 칼날 같은 바람도 불었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시간들 속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궂은 날씨 속에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손 내밀어 주는 햇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 햇살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말보다는 눈빛으로 행동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었다. 암소의 눈처럼 크고 선한 눈망울을 가지신 할아버지는 싸우는 것을 싫어하셔서 할머니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묵묵히 들어주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대놓고 우리를 보호하진 못하셨지만 소죽을 끓이면서 같이 불멍을 해주셨고 고구마를 구워주기도 하고 5일장에 갔다 오신 날은 사탕을 사다가 무심한 듯 툭 던져 주기도 하셨다.
차 타고 통학을 하던 중학교 때는 주머니를 털어 차비를 주시고 당신 주머니가 비어 있을 땐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옆집에서 빌려서라도 내 손에 쥐어 주셨다. 물론 할머니도 누룽지도 만들어 주셨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아침밥은 먹고 갈 수 있게 해 주셨다. 그것은 그분들 만의 사랑의 표현이고 위로였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저 벗어나고 싶었다.
그 시절엔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그때 나는 가까이 있는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고 그저 떠나간 엄마의 뒷모습만 보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 핵심감정은 그리움이다. 아마 이때 형성된 것이리라. 그리움이란 감정의 근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그 추운 터널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반추해 보니 그 중심에 할아버지가 계셨다.할아버지의따뜻한 손길이 있었기에 그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분명 내 마음을 알아주고 있고 내 편이 되어주는 따뜻한 불씨 같은 사람이 나타날 거라는, 그런 순간이 찾아올 거라는 희망을 꿈꾸며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살다가 무섭고 힘든 일들이 생기면 한 순간은 멍하다가도 그것을 해결할 힘을 얻는다. 그 힘은 잘 될 거라는 누군가 함께 해줄 거라는 믿음에서 오는 것같다.
나는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사람, 옳은 말을 해주는 사람보다는 '밥 먹자'는한 마디에서 사랑을 느끼고,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사람에게서 더 힘을 얻고, 명품백처럼 작정하고 사주는 큰 선물보다는 친구랑 먹다가 맛있어서 같이 가고 싶었다는 말 한마디, 길을 걷다가 생각나서 사 왔다는 호떡 하나 붕어빵 하나에 더 힘을 얻고 행복해한다.
"우리 엄마는 참 저렴한 사람이야."
"응?"
"우리 엄마는 참 쉬운 사람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1초 안아주는 것에 힘을 얻고 호떡 하나에 이렇게나 행복해하니까 감동시키기 쉬운 사람이라는 말이야."
"아~"
아들의 말이 이해되었다. 나는 쉬운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욕심이 많은 사람인데 아들 관점에서 보면 스치듯 하는 순간의 포옹, 그리고 적은 돈으로 행복해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에게 밥 먹자는 말 한마디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연결의 말로 들리고, 호떡 하나, 붕어빵 하나는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랑의 행동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침묵하면서 옆에 조용히 있어주는 것은 나를 지켜주고 있고 '네 곁엔 내가 있어. 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리고, '네가 그랬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말은 나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말로 들린다. 그 말과 행동은 내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사람의 시간 속에 내가 있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따뜻한 불씨 같은 사랑의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마음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다.
특히 자존감이 무너졌을 때, 세상에 상처받아 펑펑 울고 싶을 때, 너덜너덜 해져 무기력하거나 우울하다고 생각될 때 ' 밥 먹자!'는 말은 나를 살리는 생명의 말이 된다. 다시 힘을 내게 하는 따뜻한 불씨가 된다.
그냥 곁에 있어 주는 것, '밥 먹자'라는 한 마디, 호떡 하나, 붕어빵 하나가 내가 바라는 사랑이고 위로인 것이다.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는것도 고맙고 해결책을 알려주는 것도 고맙지만 내 방법은 내가 찾을 수 있게 기다려 주고 대신 '네 곁에 내가 있어'라는 신호를 주면 나는 다시 일어서는 사람인 것이다. 먼 옛날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 친구가 힘든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위로해 주면 좋을까?"
"무슨 일로 힘든 지는 모르겠지만 저렴하게 위로해 줘~"
"저렴하게? 그건 엄마에게나 먹히지!"
"나는 생각이 다른데. 오히려 멋진 말로 위로해 주려하면 더 상처가 되는 경우도 있잖아. 나에게는 큰 일인데 별일 아니라는 말, 힘내고 싶어도 안되는데 힘내 라는 말 등. 그래서 위로가 될지 상처가 될지 모르는 조심스러운 말보다는 그냥 밥 한 끼 같이 먹으면서 옆에 있어 주고 그 친구가 하는 말 들어주는 것이 더 안전하고 좋은 위로일 수도 있어......"
며칠 전에도 오랜만에 '밥 먹자'라는 한마디를 건네는 친구 덕분에 나는 봄의 싱그러움을 듬뿍 선물 받고 다시 뚜벅뚜벅 나답게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 힘으로 자신 있게 아들에게 조언해 본다. 물론 그것은 나에게 맞는 위로 방법 일 수 있지만 '네 곁에 나 있어 '라는 마음은 최소한 전달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누군가 곁에만 있어줘도 우리는 힘이 생긴다.
마음을 보듬어 줍니다.
나무야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들만 있었다고 생각되어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지나간 시간들을
다시 돌아보니
여기저기 사랑이 있었음이 보이는구나
할아버지, 사탕, 고구마, 밥 먹자라는 말, 붕어빵, 호떡, 불멍, 곁에 있어주는 사람, 잘 지내냐는 안부의 말, 놀자는 말, 말없이 잡아 주는 손 등......
너는 버려졌다고 느꼈었는데
곁에 있어준 햇살 같은 할아버지의 말과 행동으로 지켜지고 있었구나.
그렇게 추운 겨울에도 지켜진 넌
분명 소중한 사람이고 어떤 순간에도 지켜지는 사람일 거야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고 마음껏 너답게 살아봐.
그러다 또 상처받고 지치면 누군가 곁에서 '밥 먹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을 거야
너 또한 주변에 있는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밥 먹자'라는 말을 건네는,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되어보자.
사랑을 건네며 살아보자
눈보라 속에서도 작은 불씨 하나만 있어도 살아지더라.
살아간다는 것은 상처받는 길 위를 걷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살아있음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삶의 여정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움츠리고 살기보다는 상처받았을 때 다시 일으켜주는 작은 불씨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고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면 되지 않을까?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불씨가 되고 싶다. 곁에서 관심으로 지켜보다 힘들고 지치면 말없이 어깨도 내어주고 손도 잡아주고 곁에 앉아서 불멍도 해주고 밥 먹자고 한마디 건넬 수 있는 따스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무님들은 인생길에서 눈보라를 만났을 때 어떤 위로가 힘이 되셨나요? 나무님들 인생에서 작은 불씨는 무엇이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