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랑, 남겨진 나

by 김성희

"사람을 알아가는 데도

나를 알아가는 데도

삶의 의미를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 일들은 언제나 신중해야 하는 일들이니까"

-살아온 날들이 당신 편이에요- 중에서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길고 어둡고 차가운 시공간에서

철저하게 외로운 싸움을 했다


그것은

그와의 싸움이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지독하게

버텨낸 날들

누구도 나의 아픔과 상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

내 삶이 힘들어질 때면

그렇게 가깝고 많았던 사람들조차

더욱더 완전한 타인이 되어버렸다


외도는 들키는 순간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파괴시킨다

쌓아왔던 신뢰를 송장처럼 불태워버린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들은 내 삶을 완전히 멈추게 했지만

어쩌면 그 멈춤으로 세상을, 사람을 더 넓고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성장을 주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

그것은 어쩌면 그 시간들을

버텨낸 자신의 힘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그 사람을 남편이기보다

아이들의 아빠

그리고 그저 한 사람의 존재로 바라본다


예전의 나의 남편

나의 사람

내 아이들의 아빠..... 등등

그 모든 수식어들을 정리했다


그러므로

나는 그에게서 더 멀리 멀어질 수 있었다

온전히 내게 어떤 존재라는 정의보다

한 사람, 한 남자........

그것으로 관계의 정리는 더 명료해졌다


이제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나에게 어떤 사람'이기보다

그 사람 존재만으로 인정하려 한다

내 삶에 어떤 인연이 온 것처럼

누군가에게 나 또한 어떤 인연으로 마주했을 뿐


지옥 같은 그 시간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무너졌다고 생각했었지만

나는 절대 무너지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내려놓음이 무엇인지

인간에 대한 많은 것들을

한 사람을 통해 깨달은 시간이었다


한 때 그와 나의 사랑했던 시간은 모조리 사라졌지만

'나'만큼은 세상에 여전히 남겨졌다


'나'를 지켜낸 나에게

'참 잘 버텨냈다고, 참 많이도 애썼다'고

이제 '희망'이라는 두 글자로

매일 설레이는 삶을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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