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은 코미디

어떤 게 진짜?

by 연꽃부용


가끔 아주 심각해지려는 나는 내 생에 가장 아팠던 때라고 생각되어진 시점을 슬쩍 다녀온다.


이것저것 내려놓아도 한 티끌만큼의 기대를 가짐으로써 또 한 대 제대로 얻어맞고 패대기쳐지던 그 시점에.


그러면 금세 쫀쫀하게 경직되던 마음이 말캉말캉해진다.

가끔은 제어가 안 될 때도 있지만 말이다.


때로는 너무 많은 것들에서 감정을 배제하는가 싶은 때도 있지만, 사실 돌아서면 감정적으로 대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사랑하는 어머니가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소해 계셔도, 나를 막내딸이라 말하며 어여뻐해 주시던 아버지의 임종을 못 봐도 슬퍼지거나 괴롭거나 하진 않았다.


정신 총총할 때 충분히 부비부비 사랑했고 시간을 공유해서도 그렇지만, 노후에 접어든 한 존재의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나 역시 치매는 아니어도 내 몸 하나, 사지육신을 움직이기 벅찬 순간이 올 것을 알아서다.


며칠 동안 어머니의 전화는 잠잠하다. 치매가 심해졌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왜 전화가 뜸해졌는지 안다.

막내 아들의 안부를 물어야 하는 걱정거리보다 재미난 일이 어머니에게 생겼다.


친구.


어머니는 일생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 괜한 시간을 내 사람과 앉아 수다를 떠는 일도 없었다. 딱 한 사람, 친구가 아니어도 괜한 사람 한 사람이면 이냥저냥 사는 얘기를 늘어놓으며 한 스런 한 생을 널어놓았던 게 다다.


가장 특이점은 앞에 앉은 사람의 선한 기운, 맑은 기운을 안다는 것, 도무지 사람 인성에 대한 분별력이 없는 나와는 찰떡궁합 고부였다.


그런 어머니의 친구가 엊그제 전화를 했다.


어머니?!


받았네. 뭐라혀. 응!?


누, 누구세요?


......뚝!


어머니가 아니다. 누구지?

후다닥 번호를 누른다.


잉! 여보쇼.


어머니?! 누구세요?


뭐라 하는디?


(통장 도라해.)


통자?!


여보세요?!


(낄낄낄, 가지러 오것제)


없댜!


..... 뚝


난 좀 멍했다. 상황 정리를 해보니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보라 시켰다. 재미난 놀이를 찾은 거다.


치매병동에서 어머니가 다른 치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도록 했다.

음색과 발음에서 어머니보다 좀 더 심한 치매 상태인 걸 알겠다.


옆에서 하는 말이 귀에 닿기 전 사라진다. 전화를 든 친구 분 입에서 어머니가 하는 말과 다른 말이 전해진다.

그렇게 얼렁뚱땅 통화는 끝났다.


어머니에게 친구가 생겨 좋은데 이건 좀 묘한 상황. 놀지 말라고 절대 말하면 안 되는 찐친을 치매병동에서 만났다.


예상해 보면 어머니는 1, 5, 3 , 1, 5, 3. 1, 1, 5, 3을 반복하고, 치매 친구는 0, 0, 0, 0 들으시며 고개를 끄덕이고 계실 테다.


어머니에게 볼트와 너트 같은 친구가 생겨 나는 더 맞지 않는 짝이 되려 1, 5, 3에 호응하지 않아도 되지만 왠지 쫌 서운하다.



반려와 나는 그 사실에 깔깔깔 박장대소했다.

두 치매 노인이 마주앉아 끊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어머니가 치매인데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건 사회 시스템 덕이야. 정말 감사한 거지.


맞아, 집에서 모셨다면 가능하지 않은 모습이지.


그래, 요양병원이 없으면 힘들었을 거야.


얘기를 하다보니 감사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요양보호사 분들부터 해당 병원에 상주해 있는 의료진.

특히 같은 질환으로 입원한 어머니 친구까지.


심각하지 말자, 감정적이지 말자.


마음이 아팠다 저몄다 시었다 하는 것도 곧 게인다.


사는 일은 한 편의 희극

울다가 웃으면 된다.


웃다가 우는 것도

울다가 웃는 것도 괜찮다.


나는 자주 그런 꼴을 보이기도, 보기도 하는데

사는 데 전혀 문제 없다.


우리 모두

그냥

그렇게 살아요.



옴 샨티 샨티 샨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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