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폭력, 또 교권침해

모두는 익숙한 듯, 낯선 생을 살고 있네

by 연꽃부용


아이들이 굵어지니 부모 역할을 하는 일도 그만큼 무게가 더해진다. 세 녀석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제 세상이 전부인 양 고개를 처들고 살고 있을지도.


개뿔 가진 것도 없고, 배경도 시원찮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당당했을까 싶은 청소년기 시절.


하물며 편모에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성장했지 않았던가.


내세울 것은 뻔뻔할 만큼 당당했던 고지식한 정직함.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을 혼자의 힘으로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이른 나이에 알아버려서 그랬을까.


절대 사람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신들은 알겠지 싶은 것들에 더욱 정성을 쏟았다.


정직함, 순수함, 선함, 바름

십계명은 그렇게 나를 혼란한 청소년기를 지나 안전하게 태워 망망한 대해를 건너 뭍에 내려주었다.



발 디딘 뭍이 안전하지만은 않았지만, 세상 사람들 눈에 들 만큼 잘나지도, 잘 갖춰지지도, 내세울 것도 없었지만, 결정적인 순간 보이지 않는 나를 봐온 신은 나를 붙들었다.


삶의 방향이 90도로 급격하게 꺾여 두 무릎을 꿇었을 때도 나를 다시 일으켜 방향만 바뀌었을 뿐, 살아오던 대로, 가던 대로 그대로 가면 된다고 나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아이들의 머리가 굵어지고, 그들의 눈이 밝아진다.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눈이 나를 지켜보던 신들의 눈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어긋나지 않기로, 그들의 귀를 속이지 않기로, 그들의 입을 막지 않기로, 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나도 그들도 함께 성장해 오며, 어린 그들 앞에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약한 모습도 보이고, 어른들의 삶에 서툰 부모 역할을 이해해 달라고 청한 때도 있었다.


십대 중후반에 들어선 그들이 그들의 얘기를 풀어놓는다.

학교에서 얘기, 선생님들과의 관계, 더러 무례한 급우들의 태도, 무이해의 참변, 거짓말들의 승리, 진실의 참패


역할의 무책임, 방치, 무관심, 아이러니



편들지 않는다. 그들의 사회가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은 고심한다.


나의 경험들이 그들의 경험을 재단할 수 없듯, 그들의 분별력을 한 방향으로 고정시킬 수 없다.


그 시절을 건너오던 때의 나를 만난다.


모든 정황은 납득할 만해야 하고, 예의가 있어야 하며 양방향으로 소통 가능해야 한다.


일방적인 방향으로의 소통이 안타깝다.


굳이 교내폭력, 교권침해 같은 말을 붙이지 않아도 될 상황들이 짱돌처럼 오가는 시절이.



다, 부모탓이다.

성장을 멈춘, 낳고 알아서 크겠지 해버린, 본인 스스로는 모른 채 아이들을 잘 안다고 착각해 버린, 부모탓이다.


신들의 눈을 속일 수 있다고 착각했거나 그들이 신들인 줄 모르고 막 멋대로 살아버린 부모탓.


작은 아이들의 다툼이 부모의 자존심을 건들었다고 교내 폭력이 돼 버리고, 아이의 임기응변식 거짓말이 교권 침해가 돼 버리는 시절.



나마스떼,

내 안에 신이 당신 안의 신께 경배를...


입술 끝에서만,

소리로만 그럴싸하게 맴도는 시절.


진심이 뭔지 궁금하지 않은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순수하고 깨끗한 본래의 신을 품고 살고 있지 않은가...


서로가 조금씩만 더 사랑하면 안 될까.

서로가 조금씩만 더.



원수는 원한을 갚기 위해 만나는 게 아니라

원한을 풀고 잘 안녕하기 위해 만나는 게 아닐까.


악연은 악연이여서 만나지는 게 아니라 선연을 맺으려 악연을 풀려고 만나는 게 아닐까.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은 길을 잃고, 다 지나간다는 말은 족쇄에 채워져 단단한 기둥에 묶여 있는 듯하다.


그들과 그들

주변과 주변

배경과 배경이

모두 아름다운 하나의 풍경으로 녹아지길.




옴 샨티 샨티 샨티히.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시국 시민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