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봄. 봄. 봄.
'봄'은 왠지 희망을 안겨주는 말입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얼었던 땅도 녹고, 죽은 것처럼 보이던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순도 돋아나고, 마침내 예쁜 꽃을 피우는 생명의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을 뜻하기도 합니다. '내 생애 봄날은'이라는 제목의 노래도 있고, '다시, 봄'이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지요.
그런데 해마다 봄은 쉽게 오질 않습니다. 일단 봄이 시작된다는 절기인 ‘입춘’은 늘 한겨울이라고 느낄 때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겨울의 한복판에 봄의 씨앗 하나가 뿌려진 모양이라고 ‘입춘’을 풀이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입춘’을 맞이한 후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우수’와 ‘경칩’이 지나도, 한겨울 같은 매서운 강추위가 몇 번 지나야 하고, 그러고 나서도 꽃샘추위가 몇 번 더 지나야, 비로소 봄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봄을 제대로 느끼나 보다 하면, 어느새 봄은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지요.
젊었을 때는 봄이 오기 위해 이토록 날이 풀렸다 다시 추워졌다 하는 진통을 겪는 게, 그냥 추위만 계속되는 것보다 훨씬 견디기 힘들어서, 봄이 온다는 게 반갑지 않았습니다. 날이 풀려서 ‘이젠 봄인가 보다’ 하고 두꺼운 옷을 세탁해서 옷장에 집어넣으면, 귀신같이 날이 추워져서 다시 꺼내 입어야 할 때도 종종 있었는데, 그러면 번거로운 건 둘째 치고, 괜히 세탁비만 아깝게 날렸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기온이 널뛰기를 하면서 일교차가 많이 벌어지다 보면,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 걸리기도 딱 십상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름만 예쁜 '꽃샘추위'의 변덕스러움은 삶에 피곤함을 더해서, 어디서든지 병든 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졸게 하는 바람에 질색이었습니다. 사람을 피곤하게 하려면 이름이 예쁘지나 말던가, 이름이 예쁘면 이름값을 하던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늘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꽃피는 봄을 기다리고, 봄을 좋아하는 선배 분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봄을 기다리고 좋아할 수 있을까’, 속없는 사람처럼 여기기도 했습니다. 마치 연인과 사랑의 줄다리기라도 하듯이 올 듯 말 듯 애태우는 봄이 괘씸하지도 않나 안타까웠고, 봄을 좋아하는 건 짝사랑이나 외사랑과 다름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봄에 비하면 차라리 화끈하게 더운 여름이나, 모든 게 얼어붙은 겨울이 낫다고 여기면서, 봄을 사계절 가운데 제일 좋아하지 않는 계절로 밀어놓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비로소 알겠더군요. ‘봄이 오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오고 있다’는 것을요. 더불어 그렇게 애쓰면서 오고 있는 봄이,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처럼 참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안쓰럽고, 신성하게까지 느껴집니다. 문득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봄을 기다리고 봄꽃을 반기던 선배 분들은, 그런 봄의 저력과 계절의 순리를 알고, 삶의 지혜를 깨닫고 계셨던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의 저처럼 단지 봄을 맞아 피어난 꽃만 보면서 예쁘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지난하고 힘든 과정까지 다 좋고 아름답게 보셨던 거니까요.
나이 들어 봄꽃처럼 밝고 화사한 색깔의 옷이 좋아진다는 분들의 심정도 이해하겠습니다. 젊었을 때는 ‘나이 든 외모에 옷색깔까지 칙칙하면 더 늙어 보이기 때문에 나이 들면 옷을 밝은 색으로 입으려고 하나보다’라고만 얼추 짐작했는데, 그보다 더 깊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흔히 좋아하는 대상이 있으면 그 대상을 닮아간다고 하잖아요. 봄을 좋아하니까 스스로도 봄꽃을 닮고 싶고, 닮아가는 거라는 해석을 해봅니다. 이렇게 새삼 봄의 본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니까, 제가 봄에 대해 가졌던 오해와 편견 때문에 그동안 봄이 저한테 몹시 서운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새삼 봄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집니다.
또 하나 그동안 봄에 대해 착각했던 걸 고백해야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봄을 두고 계절의 시작이라고 얘기를 많이 하는데, 봄은 겨울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겨울을 제대로 잘 보내지 못한 식물은, 죽거나 싹을 틔우지 못하잖아요. 물론 계절은 순환하는 거니까 엄밀히 말하면 계절에는 시작이나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겨울에서 봄의 변화가 너무나도 확연하기 때문에, 봄을 세상 만물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로 삼는 걸 텐데요. 봄이 겨울의 결과라는 것을 깨달으면 덩달아 겨울의 이미지도 달라지고, 겨울도 좀 더 다르게 보낼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런 깨달음은. '인생의 겨울'로도 이어지게 됩니다. 실제 나무들이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아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마치 인생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 같습니다. 특히 천년 고목이 봄을 맞아 어김없이 새 순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도 그렇게 늘 새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작이 없으면 변화가 없고, 변화가 없으면 결실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인생 어느 시절의 봄이든, 청년의 봄 못지않게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어쩌면 나이 들수록 봄이 더 소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해마다 힘들게 오는 봄더러, 어서 와서 제대로 자리를 잡으라고 많이 응원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