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학교에서 느낀 태국다움에 대해
마이펫 카! (맵지 않게요!)
맨 처음 태국에 와서 익힌 음식점 용어는 맵지 않게 해 달라는 말이었다.
매운 음식에 취약한 나는 한국 신라면도 수프를 반만 넣어서 끓여먹는 수준이다. 그런 나에게 태국 음식은 혹독하리만치 맵다.
태국 음식이라면 응당 들어가는 빨간 고추의 위력은 어마무시해서 맵지 않게 해 달라는 말을 깜박했다가는 음식을 입에 넣은 후 잠시 실신할 수도 있다.
내 돈 내고 밥 먹는데 까나리 아메리카노 버금가는 벌칙을 받는 기분이다.
그나마 사정하듯 두 손까지 모으고 ‘맵지 않게요!’를 수차례 말하며 맵기의 수위를 조절하지만 태국 음식을 시킬 때마다 불안 불안하다.
단맛이 섞인 한국의 매운맛의 풍미와는 아예 다른 차원으로 통각을 강타하는 태국의 매운맛, 태국에서 살고 있다면 넘어야 할 산이요 건너야 할 강이다.
요즘, 7월 중순은 태국 중고등학교의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이다.
시험기간 동안에는 수업이 없어 수업 준비를 밭게 하지 않아도 되니 모처럼 여유롭다.
학교마다 다르다는데 우리 학교의 경우는 외국인 교사들에게 시험감독을 맡기지 않아 일주일 내내 게을러도 괜찮다!
물론 정시 출퇴근을 해야 하긴 하지만.
점심시간은 또 어떻고. 교사들이 점심식사를 아무 때나 원하는 시간만큼 이용해도 눈치 주는 사람 하나 없다. 이 기회를 이용해 학교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야외 테라스가 강 위에 있는 그럴싸한 음식점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우리 동네에 몇 안 되는 영어메뉴판이 있는 음식점이다.
코코넛 우유가 섞인 국수를 시키면서 ‘맵지 않게!’를 수차례 강조하고, 내 어눌한 태국어 발음을 영 미덥지 않아 번역 앱으로 태국어 문장까지 보여줬다.
그러한 노력의 결실인지 내 앞으로 대령된 음식은 내 혀가 감당할 수 있을 딱 그만큼 매웠다.
제한이 없는 점심시간, 한껏 여유를 부리며 느긋하게 태국 음식을 음미하다가 불현듯 스친 생각 하나.
이 태국 음식 한 그릇이 마치 태국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태국 음식은 참 오묘하기 그지없다.
태국의 음식을 대변하는 달콤하고 시큼한 맛이 맨 처음 혀를 통해 감각이 되면 그다음으로 짜고 쌉쌀한 맛이 치고 들어온다.
없으면 섭섭한 아지노모또의 감칠맛이 혀끝으로 퍼질 때쯤 존재감을 훅 드러내는 매운맛은 든든한 형님처럼 이 모든 맛을 뒤받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함이 어우러지는 맛의 교향악은 대부분의 태국 단품 음식이 가진 특징이 아닌가 한다.
심지어 식감마저 다양하다.
바삭하고 부드럽고 아삭하고 쫄깃한.
하나의 그릇 안에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모든 맛이 들어있다니 놀랍지 아니한가.
이 모든 맛의 감각이 하나의 그릇 안에서 따로 또 같이 각자도생하고 어우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의 그릇 안에서 발견되는 '다양성의 공존'.
이는 비단 태국 음식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자연의 품새, 다양한 즐길 거리, 다양한 생활양식.
태국이라는 하나의 나라 안에서 다양한 자연을 감상하고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특권이 아닐 수 없다.
그날의 기분과 온도, 체력에 맞춰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이나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골라서 여행할 수가 있다.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유적물과 최첨단 거대 쇼핑몰 또한 하루 코스 안에서 모두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태국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다양한 소수자들이 별반 다르지 않게 어우러져 사는 모습을 경험하는 중이다.
하나의 교무실 안에서 만나는 게이 교사와 레즈비언 교사들, 트랜스젠더 교사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받으며 학교 사회 안에서 당당하게 교사로 산다.
장애를 가진 교사들도 불교인이 대부분인 곳에서 히잡을 쓴 무슬림 교사들도 다른 교사들과 어우러지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다.
하나의 교실 안에도 다양한 학생들이 공존하고 있다.
한 교실 안에 한국의 길거리에서는 쉬이 보기 힘든 극도 비만의 학생이 있고 어떠한 이유로 거뭇한 수염이 난 여학생들이 있고, ‘저는 여자에게 관심이 있어요’라고 소신껏 말하는 여학생이 있고,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뚝이는 학생도 있고, 어릴 때 사고로 한쪽 팔이 잘려나간 학생도 있다.
타 학생들과 조금은 다른 학생들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리하여 학교 생활을 하는 내내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관찰한 결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학생들이 한 교실 안에서 다수에 의해 내쳐지는 일 없이 잘 어울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엔가 팔 한쪽이 없는 학생이 복도를 걸어가길래 옆에 있던 태국인 한국어 교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친구는 한쪽 팔이 없는 게 학교 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요?”
"그게 왜요?"
내 관심이 무안해지는 대답, ‘그게 왜요?’라는 말에 나는 내 관심이 되려 차별적 시선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태국 관광청에서는 2022년 올해,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태국의 소프트파워를 적극 홍보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태국다움(Thainess)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태국 관광청이 태국다운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고 있다면 여기에 나는 감히 숟가락 하나 얹어서 말하고 싶다.
다양한 음식을 하나의 그릇에 허용하는 마음
다양한 ‘다름’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것이 별스럽지 않은 마음
태국의 태국다움은 그 다양한 것들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