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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슝이모 Jul 10. 2022

교사의 진통제는 '학생'이었어!

외국인 교사가 아프면 두루두루 민폐

타지에서 혼자 지내는 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서러운 상황이 발생했다.

아.프.다.


때는 지난주 토요일 밤.

샤워하다가 샤워타월이 떨어져 그저 그걸 주워서 일어났을 뿐인데 허리에서 우지끈 태풍이 몰아쳤다.

그 상태 그대로 ‘얼음’.

일어나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비누 묻은 몸을 어찌어찌 끌고서 침대 위로 던졌다.

그 상태로 누워 핸드폰으로 이런 상황에 어찌해야 하는지 폭풍 검색을 했다.

허리에 중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누운 자세로 휴식을 취해야 하고, 냉찜질을 하란다. 진통소염제와 근육이완제를 챙겨 먹고 파스 등을 붙이는 것도 좋단다.


좋다, 다 좋은데, 문제는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걸 어째.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부탁을 해서 약도 먹고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기도 할 텐데.

혼자서 지내는 서러움이 찔끔 눈물로 폭발을 했다.      

그다음 날인 일요일 오전, 함께 일하는 태국인 한국어 교사에게 S.O.S 메시지를 보냈다.

‘펜 선생님! 저 병원에 좀 데려다주실 수 있어요? 허리를 다쳐서요.’

나의 메시지를 보고 고마운 펜 선생님, 급하게 차를 몰고 내 숙소로 왔다.

내 상태가 걱정된 그녀는 집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씻지도 아침밥을 먹지도 않은 상태였다.

휴일에 이게 웬 민폐람...

고마운 맘보다 미안한 맘이 더 커진다.     


찾아간 태국 종합병원은 시설이 매우 현대적이고 깔끔해서 여느 한국 병원 못지않았다.

태국 병원 의료 시설이 매우 잘 되어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태국의 큰 도시도 아닌 이런 변두리 지방의 병원도 매우 세련되었다.


중후한 중년의 태국 의사는 내 아픈 허리를 꾹꾹 찔러보더니 급성 허리 근육통이라 판정을 했다.

며칠간 휴식을 잘 취하고,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그때 허리디스크 문제인지 알아보기 위해 MRI를 찍자고 한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닌가 보다.

의사 진료를 마치고 진통 주사를 맞고 약을 짓고 허리보호대를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펜 선생님은 음식을 제대로 해 먹지 못할 나를 위해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되는 밀키트 음식들, 게살볶음밥, 순두부찌개, 오물렛덮밥 등등을 세븐일레븐에서 챙겨주었다.

에고에고... 미안하고 고맙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건 다 내 탓! 태국에 온 이후로 운동은 거의 하지 않고 밤마다 책상 앞에 거북목 자세로 지내왔던 게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늘 건강 챙기기를 우선으로 해야지 각오가 절로 인다.

     

월요일.

일어나서 허리를 움직여보니 여전히 통증이 있다.

‘펜 선생님, 나 오늘 병가 낼게요. 오늘 제가 5학년(고1), 6학년(고2) 수업이 있거든요. 수업시간 동안 학생들에는 연습문제를 풀라고 좀 전해주세요.’


교사가 병가를 내니 여기저기 민폐가 생긴다.

우선 내 대신 펜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가야 하고, 학생들 수업 진도에 차질이 생긴다.


학교의 하루가 내 병가와 상관없이 온전히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그 시간, 침대와 물아일체가 된 나는 누워서 '지금은 5학년 수업이구나, 이제는 수업이 끝났겠구나, 이제 막 6학년 수업이 시작되었겠구나' 생각을 했다.

     

요즘은 수업 전후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할 학생들 연습을 시키고 있었는데, 나 없이 말하기 연습은 잘하고 있을까.

코로나에 걸려서 계속 나오지 못했던 민주는 오늘 코로나가 다 나아서 학교에 왔을까.

6학년들, 요즘 결석생들 많았는데 오늘은 몇 명이나 출석했을까.

조만간 중간고사인데 오늘 하루 진도를 못 나가서 어쩌지...

      

아파서 누워있는데도 수업 걱정, 학생들 걱정을 하고 있다니 초보교사인 나, 차츰 교사의 참맛을 알아가나 봐.

기특한 마음에 소박한 미소 한번 씨익~

     

한국어 전공반 학생에게 문자가 왔다.

‘선생님! 빨리 회복하세요~~’

생각지도 못했던 문자에 가슴이 저격을 당한 양 찌릿하다.

그래, 빨리빨리 낫자!


화요일.

아침, 아직 허리 통증은 남아있지만 허리 움직임이 훨씬 수월해져 출근을 단행했다.

오토바이 택시 뒤에 타는 것이 허리에 무리가 될 것 같아 걸어서 출근을 했다.

안 그래도 더운 아침인데 옷 안으로 찬 허리보호대 덕에 아침부터 땀 샤워다.     

출근하는 나를 발견한 한국어반 학생들이 멀리서부터 달려와서 우렁차게 인사를 하고는 조회하러 사라진다.

수업 시간, 교실로 들어가자 학생들 몇몇이 내게 쪼르르 와서는 “보고 싶었어요. 선생님”, “기다렸어요, 선생님” 속삭이고 간다.

수업 후 학생들 몇몇이 교무실로 나를 찾아와 직접 만든 태국 간식이라며 주고 간다.       


고마운 학생들의 표현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너희들이 진정한 나의 진통제구나.

선생님이 이제는 다시 아프지 않도록 진짜 진짜 노력할게. 찡찡!(정말!)

코쿤 카 막막! (엄청 엄청 고마워!)     



문자 하나에 가슴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태국 간식이 내게는 그 어느 진통제보다 더 큰 진통효과를 가져다 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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