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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슝이모 Aug 07. 2022

태국 살이, 눈치 하나로 살아남기

때로는 나도 눈치 없이 살고 싶습니다.

타국의 국경으로 들어서는 그 설레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우리는 그 순간부터 차 떼이고 포 떼인 무력한 신세가 된다.

생경한 문화와 생소한 언어에 잔뜩 긴장한 몸뚱이가 허둥대는 동안 모든 감각이 곤두선 상태고 내 안에 몰랐던 능력인 ‘눈치’가 풀가동을 한다.

남의 홈그라운드에서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은 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끌어내야 하는 만큼 고된 일이다.


나의 경우, 이 나라 저 나라에서 혼자 집을 구해 살아왔던 시간만 모두 끌어오면 15년은 족히 된 것 같다.

손발 짓 언어는 일찌거니 제2외국어로 자리 잡았고, 곁눈질로 상황을 판단하고 습득하는 눈치 하나는 기똥차게 늘었다.

그런 나라고 해도 처음 만나는 타문화의 초기 생활은 늘 긴장되고 어렵다.

사소한 것도 도움이 필요한데 그 도움을 요청할 곳이 있고 없고가 타국 생활의 질을 좌우한다.     


이번 태국 살이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내가 살 집과 거주 비자 해결을 태국 학교에서 알아서 다 해주었고 학교 내 옆자리에는 한국말이 통하는 태국인 교사가 있으니까.

상황이 이러하니 이번 타국 살이의 시작은 무용담이 될 법한 별스러운 일 하나 없이 평탄하게 시작되었다.

단지 하루의 시간 대부분을 생소한 언어만이 난무하는 태국 학교에서 지내다 보니 내 눈치 시스템만 열심히 가동하고 있을 뿐.


그런데 이게 또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교무실에서 교실에서 눈치껏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다 보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어 퇴근할 때는 영혼까지 탈탈 털린 기분이다.

주는 사람은 없다 하는 눈칫밥을 굳이 찾아 먹고는 소화불량으로 꺽꺽대는 꼴이랄까.      


얼마 전 열렸던 ‘영한중일의 날’ 행사 때만 해도 그랬다.

‘영한중일의 날’이란 우리 학교 외국어과의 영어과, 한국어과, 중국어과, 일본어과에서 각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고 각 문화의 전통 게임 등을 진행하는 행사로 매년 열리는 학교의 주요 행사 중 하나다.

이번에는 4개 언어 분과 중 영어과만 게임 활동을 진행하기로 했고 나머지 언어 분과들은 음식 판매 부스만 차리기로 했다.  


행사가 열리기 며칠 전부터 태국 교사들은 무언가를 만들고 사러 다니고 물건을 나르고 하면서 매우 바쁜데 그 누구도 나에게는 딱히 무엇을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아 답답했다.


“내가 할 일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여러 번 부탁을 했지만 ‘알겠다’는 말대답만 돌아올 뿐 내게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지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모든 교사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그 사이에서 눈치껏 행동할 수밖에.

무거운 짐을 계속 실어 나르는 교사를 보면 눈치껏 뛰어가서 같이 움직였고 수북이 종이를 쌓아 놓고 자르고 붙이는 교사 옆에 가서 눈치껏 같이 자르고 붙였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과에는 각각 담당 태국인 교사들이 많아서 행사 준비가 수월해 보였지만 한국어과에는 나와 단 한 명의 태국인 교사인 펜 선생님만 있어 부담이 컸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에게 그 어떤 부탁도 하지 않고 툭하면 교무실 자리를 비운 채 어디에선가 혼자 준비 중인 듯했다.


“펜 선생님, 나에게도 일을 좀 마구마구 시켜주세요, 제발!”

나는 눈치껏 움직이는데 이력이 나서 애원을 했다.

“글쎄요. 선생님은 딱히 할 일이 없으셔서요.”

“이렇게 다들 바쁜데요? 음... 그럼 우리 한국어과 음식 부스를 꾸미는 걸 내가 준비해볼까요?”

“네, 그러세요.”

아싸, 드디어 나에게 일이 생겼구나!


부스의 생김새는 펜 선생님도 모른다고 하여 영어학과 교사들에게 물으니 두 개의 옆면과 뒷면으로 된 철조물 구조라는 정보를 얻었다.

나는 동네 문방구점을 돌아다니며 철조물 부스 삼 면을 가득 채울 양으로 풍선아트를 할 풍선, 종이접기 할 색종이와 태극기 바람개비를 만들 재료와 한국 지도를 그릴 전지, 부스에 조명 장식을 할 전구 등등을 샀다.

그리고 며칠 동안 퇴근 후 부스에 꾸밀 것들을 만들기에 열중했다.


행사 당일, 평소보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한복으로 갈아입은 후 부스를 꾸밀 재료들을 들고 행사가 열릴 강당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뭐람.

3개 면으로 구성된 철조물 부스는 영어학과가 진행하는 게임 활동을 하는 곳에만 설치가 되어 있었고 음식 만드는 곳에는 테이블만 기역자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앞 뒤 옆 모두 아무것도 없이 뻥 뚫린 채로.

부스를 꾸밀 꾸러미를 가득 들고 온 내 양손이 민망해졌다.

망연자실한 내 얼굴을 본 건지, 펜 선생님은 자신도 부스가 이런 식으로 차려진 건지 오늘 아침에 와서야 알았다고 말한다.

눈치껏 잘해보겠다는 나의 야심 찬 계획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 상황.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탓할 그 누구도 없다는 게 더 야속하다.     


행사 판매 음식 만들 준비에 바로 들어가야 해 당황한 마음을 식힐 시간도 없이 바로 음식 만들기에 들어갔다.

판매할 한국 음식은 소떡소떡, 수박화채, 달고나.

달고나는 이미 다 만들어진 상품으로 판매하는 거였고 소떡소떡과 수박화채만 즉석에서 만들어야 했다.

펜 선생님은 영어학부의 교사들 몇몇과 이미 얘기가 되었는지 지원 인력으로 불러와서는 일사천리로 바삐 음식 준비를 했다.


또다시 나의 눈치가 발휘해야 할 시간.

태국 교사들끼리 태국어로 이거 해라 저거 해줘 끊임없이 말하면서도 내게는 별다른 요청을 안 하니 나는 빈틈을 눈치껏 찾아보고 냉큼 움직일 수밖에.

나중에는 한국어 전공반 고3 학생들도 달라붙어 큰 힘이 되었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단연코 소떡소떡이었다.

영어과의 스파게티, 일본어과의 초밥과 어묵, 중국어과의 찐빵 판매대 앞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소떡소떡 판매대 앞의 줄이 가장 길었다.

소떡소떡의 소스 맛이 매콤새콤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태국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았던 거다.

“소떡소떡 맛있어요!”

한국어로 한 마디씩 던지고 가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찌나 뿌듯하던지 손이 바쁜 그 와중에도 학생들에게 손하트를 날렸다.


오전부터 점심시간까지 반나절 진행된 행사는 성황리에 무사히 끝났다.

다른 행사 프로그램도 구경하고 싶었고 다른 언어학부에서 만드는 음식도 사 먹어보고 싶었지만 행사 내내 한국 음식을 만드느라 짬을 낼 수가 없었다.

물론 눈치도 보였고.


행사 후 온몸이 땀에 절어 장아찌처럼 쪼글 해진 상태로 교무실로 달려가 오후에 있을 수업 준비를 했다.

그리고 출석부를 챙겨서 수업에 막 들어가려던 찰나 그제야 오늘 오후 수업이 없다는 걸 알았다.

어쩐지. 다른 태국 교사들이 너무 태평하게 교사 휴게실에서 쉬고 있더라니.

이번엔 내가 미처 눈치를 못 챘다.

아마 교사들 생각에는 누군가가 나에게 이미 말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나에게 따로 말하지 않은 거겠지만,

그래도 서운한 이 내 마음은 어떻게 하나.


오후 수업도 없어졌고 해서 학교 앞 카페로 가서 잠시 한숨을 돌렸다.

탓할 대상은 딱히 없어도 명백히 서운한 감정도 식힐 겸.     


이럴 때 내 홈그라운드가 참 그립구나.

가끔은 나도 눈치 볼 필요 없는 곳에서 맘 편하게 듣고 말하고 웃고 싶다.



우리 학교 '영한중일의 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었던 한국어과 음식판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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