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책의 음악노트 (9) 사랑처럼 깊은

A Thousand Kisses Deep

by 푸른책

레너드 코헨의 A Thousand Kisses Deep은 노래라기보다 시다.
그의 낮은 목소리는 고백과 회한의 경계에서 머문다.
천 번의 키스란 천 번의 열정이 아니라, 그만큼의 세월이다.
사랑의 깊이는 하루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건 오래 머물며, 서서히 스며드는 시간의 다른 이름이다.


이 곡은 처음부터 ‘깊이’를 주제로 한다.
깊다는 것은 단지 무겁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멈춰 있는 시간, 잃어버린 순간,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마음의 흔적을 말한다.
코헨의 시 속에서 사랑은 구원보다는 회복에 가깝다.
그는 상처를 치유하려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며 바라본다.
그것이 이 곡이 지닌 고요한 울림이다.


Chris Botti의 트럼펫은 그 고요에 불빛을 비춘다.
그의 연주는 도회적이고 세련되며, 감정의 결이 명확하다.
한 음 한 음이 잔잔하게 울리며, 도시의 불빛 속에서
사랑을 추억하는 사람의 실루엣을 그린다.
그의 A Thousand Kisses Deep은 감정의 통제를 잃지 않는다.
아름답고 냉정하다. 사랑의 회한을
우아하게 견디는 법을 아는 사람의 연주다.


반면 Till Brönner의 버전은 한층 내면적이다.
트럼펫과 베이스만으로 공간을 구축하며,
그의 음색은 마치 새벽의 공기처럼 차갑고 부드럽다.

그는 사랑의 이야기를 노래가 아닌 숨으로 전하려 한다.

그의 연주는 말 대신 여백으로 감정을 남긴다.


그리고 문득, 나는 Tord Gustavsen Trio의 Deep as Love를 떠올린다.
그의 피아노는 침묵과 여백으로 사랑을 말한다.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이 감정의 온도를 만든다.
더블베이스와 드럼은 결코 소리를 채우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의 무게를 줄이려 하지 않고,
그저 그 깊이에 머무른다.


결국, 사랑의 깊이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건 눈물이 아니라 고요이며,
고백이 아니라 기다림일지도 모른다.
천 번의 키스는 결국, 우리가 견딘 세월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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