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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기억이란 무엇인가?

by 생각하는뇌


기억은 무엇인가? 도대체 어떻게 기억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앞서 해마는 공고화를 통해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만드는 중요한 기관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해마에서 만든 기억은 일련의 '길'을 통해 저장된다. 마치 고속도로처럼 말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해마의 치아이랑(dentate gyrus, 치아처럼 솟아오른 부분이라는 뜻)에서 CA(Corna ammonis)라는 부위로 신호가 이동한다고 해보자. CA는 4 부위로 나뉘는데, 각각 CA4, CA3, CA2 CA1라고 불린다. 어떤 신호는 치아이랑에서 출발해 CA3를 거치고 바로 해마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다른 신호는 CA1을 거치고 해마 밖으로 나간다. 이 두 경우 서로 지나는 회로가 다른 만큼 해마 밖으로 나간 뒤에 각자의 길을 간다. 마치 경부고속도로를 가냐, 호남고속도로를 가냐에 도착하는 곳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해마에서 만들어지는 길은 차도보다도 더욱 복잡하다. CA3라는 부위에서 바로 나가지 않고, CA3 -> CA1을 거친 뒤에 해마 밖으로 나갈 수도 있다. 거기에 고속도로 외에 국도나 비포장도로가 있듯이 각 CA 부위에도 하나의 뉴런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조합이 더욱 다양하다. 가장 큰 차이는 운전 도로와 기억 회로의 근본적인 속성 차이다. 자동차는 목적지만 같으면 어떤 길로 가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뇌는 같은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그 중간길을 어디로 왔느냐에 따라서 기억의 종류가 다르다. 그리고 그 중간 과정을 방해하면 기억이 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기억은 신경 세포인 뉴런을 타고 움직인 그 과정의 종류, 즉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억이란, 신호가 이동하는 패턴인 것이다.



시냅스, 기억의 핵심 요소

그러나 아직 핵심적인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기억이 패턴이라면,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 패턴을 뇌에 새긴다는 말인가? 우리 뇌가 글씨로 종이에 적어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인데 말이다. 놀랍게도, 뇌에도 자체적인 기록 시스템이 있는 듯하다. 바로 시냅스이다. 시냅스란, 서로 다른 두 뉴런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해 주는 사이 공간이다. 그리고 시냅스에 일어나는 변화가 기억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1966년에 밝혀졌다. 바로 이전에 언급한 노벨상 수상자 에릭 캔들(Eric Kandel)에 의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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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동물 중 하나인 군소(Aplysia Californica, 바다달팽이의 한 종)는 찌르면 아가미를 반사적으로 움츠린다. 그런데 에릭이 실험해보니 이 군소를 짧은 간격으로 여러 번 찌르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 연체동물이 원래보다 약하게 찔러도 아가미가 움츠러들었다. 이것은 찌르는 행위를 '기억'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래서 이 생물을 대상으로 시냅스를 방해하는 약물을 처리해보았다. 그러자 아무리 여러 번 찔러도, 약하게 찌를 때에는 아가미가 움츠러 들지 않았다. 즉, 기억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이 결과로 시냅스가 기억을 기록하는 신체의 비법이라는 것을 알아내었고, 이후 연구를 통해 사람에게도 시냅스가 기억을 기록하는 방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음에는 시냅스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길래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건지, 그 정확한 메커니즘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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