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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기억의 메커니즘

by 생각하는뇌

시냅스는 신호를 연결한다고 했지만, 그 정체는 사실 뉴런이 붙어있는 그 사이의 아주 작은 공간일 뿐이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체계적이다.

synapse.png 이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 걸까?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뉴런을 타고 이동하는 신호와 시냅스에서 전달되는 신호는 다른 종류라는 것이다. 같은 신호를 계속 쓴다면 시냅스 이후 여러 뉴런으로 신호가 나뉘면 그 강도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냅스에서 일어나는 일은 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들이 각자 출구로 흩어지는 형태가 아니다. 오히려 다단계와 비슷하다. 윗사람이 10명을 가입시키라고 명령하면 아랫사람도 10명에게 똑같은 명령을 내린다.


이와 같이 시냅스에서도 이전 단계의 뉴런과 같은 강도의 전기신호가 다음 뉴런에서도 흐르도록 만드는 메커니즘이 있다. 바로 수용체(receptor)다. 신호를 송신하는 뉴런 측에서 신호가 말단부에 도착하면, 그 전기적인 신호에 맞춰 신경 전달 물질(화학적)이 분비된다. 중요한 점은 이 신경 전달 물질이 전기적 신호와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면 다시 다음 뉴런에서 전기적인 신호로 변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수용체이다. 시냅스에 있는 다음 뉴런의 수용체가 신경 전달 물질과 결합하면 양이온을 뉴런 내부로 빨아들인다. 알다시피 양이온은 + 전하다. 즉, 전기->화학->전기적인 신호로 변환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전기적인 신호는 다시 뉴런 안을 쭉 흘러 다시 말단부로 가고, 다음 시냅스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것이 수용체를 통해 시냅스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수용체를 통한 기억의 변화, 장기 증강(LTP)


그렇지만 수용체가 더욱 중요한 점은, 기억을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수용체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용체의 무엇이 바뀌는 것일까? 신경 전달 물질을 일정하게 받으려면 종류가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 구조에 따라서 수용체의 기능도 변화하니 구조도 아닐 것이고. 결국 남은 것은 수용체의 수밖에 없다. 앞서 군소를 계속해서 찌르면 아가미가 반응하는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 기억의 증거라고 했다. 시냅스에서도 이와 같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신호가 전달되면 수신하는 쪽에 그 수용체의 수가 늘어난다. 그러면 더 많은 양이온이 들어올 수 있게 되어서 신호 전달이 쉬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신호 전달이 쉬워진 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을 장기 증강(LTP, long-term potentiation)이라고 한다.


수용체의 수를 늘리는 방법을 보면, 단계적으로 그 방법이 달라진다. 초기에는 가지고 있던 수용체를 그대로 추가한다. 수신하는 뉴런마다 창고에 저장하듯이 수용체를 내부에 재고를 쌓아두는데, 신호가 지속적으로 계속 전달되면 이 재고를 표면으로 이동해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많아진 수용체 수만큼 더 많이 양이온을 빨아들일 수 있다. 이를 E-LTP라고 하고(E는 early의 E), 적어도 몇 시간 정도는 지속된다. 그러나 그렇게 재고를 다 써도 계속해서 신호가 전달되면, 더욱 강력한 방법이 필요하다.


수용체의 재고가 다 떨어지면, 더 많이 만들면 된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세포 내에서 수용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용체의 설계도를 읽을 필요가 있다. 단백질의 설계도, 즉 유전자를 읽는 것이다. 평소에 유전자는 마치 금고에 갇혀있듯이 잠겨서 읽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유전자는 우리 몸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기록해 놓은 가장 중요한 정보이기에, 모든 유전자를 전부 내놓지 않고 필요할 때만 금고를 열어서 읽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여기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칼슘이다. 앞서 언급한 수용체 중에 NMDA 수용체는 칼슘 양이온을 내부로 들여온다. 칼슘 이온은 단순히 전하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뉴런 안에는 특정 물질이 있어야만 활성화되는 단백질들이 있는데, 그중 칼슘이 결합하면 작동하는 CaMKII(Ca2+/calmodulin-dependent protein kinase II)과 같은 단백질이 있다. 이 단백질이 활성화되었을 때 CREB과 같은 전사 인자는 금고를 열고 수용체의 유전자를 읽는다. 그러면 그때 읽은 정보를 토대로 수용체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거기에 더해 수용체가 늘어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단백질을 만들어 장기 증강(LTP)을 더 오래 유지하게 한다. 이렇게 유전자의 변화로 일어나는 LTP는 E-LTP보다도 더 오랫동안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수십 분 정도는 있어야 일어나는 대신, 일단 완성되면 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유지된다. 이를 L-LTP(L은 Late의 L)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수용체가 정말 중요하고, 이 수를 늘리는 것이 얼마나 기억을 만드는 기초가 되는지 알 수 있겠다. 그런데 한가지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있다. 우리가 이 수용체라는 바구니를 늘려도, 아주 좁은 통로를 통해서 신경 전달 물질이 떨어지면 바구니가 많아져도 받을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인 게 아닐까? 다행히도 시냅스에는 그런 범위적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낸다. 바로 시냅스, 그 공간 자체를 키우는 것이다.



스파인, 시냅스를 늘리는 구조


시냅스를 키운다는 것은 뉴런과 뉴런 사이의 간격을 넓힌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연결이 느슨해져서 전달 효율이 더 떨어진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뉴런이 닿는 부위를 넓히는 것이다. 두 뉴런이 더 넓게 붙어있을수록 더 많은 수용체가 신경 전달 물질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를 위해 뉴런의 수신부에는 스파인(spine)이라는 조그만 돌기가 무수히 있다. 이 스파인의 내부에는 액틴 섬유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액틴 섬유는 그 구조상 쉽게 분해되어 짧아지고 다시 중첩되어 길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빠르게 이동하는 신경 신호의 변화에 맞추어 금방 그 구조를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스파인의 형태는 시시각각 변하게 되는데, 이 스파인이 커지면 더 많은 전기 신호가 더 안정적으로 시냅스를 통해 흐를 수 있었다.

스파인의 구조도 재밌는 요소지만, 거기까지는 너무 어려우니 넘어가기로...


오랫동안 연구를 해보니, LTP를 늘릴수록 이 스파인의 크기는 커지고 그 수도 늘어났다. 반대로 오랜 시간 동안 신호가 오지 않으면, 스파인은 작아지거나 심지어 없어져 시냅스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므로 스파인은 시냅스의 강화/약화를 그 형태적인 변화로 저장하는, 기억을 구성하는 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기억을 만들 때 E-LTP로 만들어진 기억은 이미 있는 수용체를 통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고, 더욱 긴 장기 기억은 L-LTP로 유전자를 읽어내 더 많은 수용체, 더 나아가서 더 많은 시냅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스파인은 그런 시냅스의 증강과 생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기억이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지만, 결국 생물학적으로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는지 시냅스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억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 않은가? 공간을 기억하는 것, 시간을 기억하는 것. 이런 기억 사이에는 정말 똑같은 체계가 작동하는 걸까? 그 답은 다음 시간에 찾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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