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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Jul 12. 2020

나는 가끔 나를 사랑해달라고 마구 외치고 싶어.

글쓰기와 글쓴이 사이에도 서먹서먹함은 존재한다. 예전에는 자주 어울려 떡볶이도 먹고 오락도 같이 했는데 살다 보니 우선순위가 밀려 이름도 가물가물한 친구처럼. 어떤 태도와 말투를 취해야 할지 호칭을 어찌 부르면 좋을지 고민된다. 입가가 떨리는 미소를 지으며 온 몸에 어색함으로 묻는다. 


'그동안 잘 있었어?'


내가 그를 잊었던 시간만큼 그도 내게 등을 돌려도 서운해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태양'의 '내가 바람 펴도 넌 바람피지마. Baby'이 노래를 들으면서 얼마나 그 뻔뻔스러움에 치를 떨었던가. 저런 몰상식한 애정을 바라지 말아야지. 파렴치한 사람은 되지 않으리라 결심했건만. 나는 글을 잊어놓고 글은 나를 보고 단 번에 달려와 안아주고 웃어주길 바란다. 그리웠다고 네가 없어 허전했다고 조금의 흔들림 없는 확신에 찬 그 목소리를 원한다.


아쉽게도 내가 글을 잊을 만큼 글도 나를 받아주지 않을 게 뻔하다. 어색하게나마 친한 척 악수를 청한다.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외면하진 않을 거지? 새침한 미소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의 눈빛으로 만족한다. 




얼마 전 고백한 것처럼 뭣도 아니면서 작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나는 두 달간 작가라고 현실세계에서 불렸다. 글 다운 글은 거의 쓰지 않았으며 나는 이러다 내가 영영 글을 잃을까 불안했다. 그러면서 그 불안함이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걸 불안해하는 내가 웃겼다. 


착한 동기들은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나를 '작가'라 칭해주었다. 몸에 맞지 않아 자꾸 옷이 헐거워져 자기변명처럼 '이곳에서만큼은 작가라 불려서 기쁘다'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다녔다. 과분한 애정 덕에 별 노력 없이 추가로 책을 12권이나 팔았다. 역시 그럼에도 책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다. 내가 애쓰지 않으며 내 글이 저절로 소비되는 기적은 꿈속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까 고민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남은 책을 팔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더 이상 나를 작가로 소개하면 안 될 것 같지만 어차피 작가가 아니었으니 작가라 우기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여전히 내 책을 사달라고 부탁할 때는 뒷골이 당기고 눈치가 보인다. 어차피 관심 있는 사람은 사고 관심 없는 사람은 그저 넘길 거란 걸 알면서도 이 상업적인 부탁이 얼마 안 남아있을 나에 대한 애정을 깎아내 버리는 게 아닐까 봐 막 조바심이 난다. 어정쩡하게 책을 사달라고 분명히 말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만있지도 못한 채 1년이 되어가려고 한다.



교육 과정이 끝나고 3개월치 밀려있던 가계부를 적었다. 적는 김에 그동안 책을 만들고 파는데 드는 비용을 정리했다. 마이너스 백만 원쯤 찍혀있는데 남은 책을 다 팔아도 잘해야 60만 원이 손에 남았다. 이거 뭐지? 다시는 종이책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현실적 감각이 날 아프게 때렸다. 그래도 너무 집착하지 말자고 우리 집 창고는 아주 넓고 아직 내 통장은 텅텅 비진 않았느냐고 위로를 보낸다.


다만 내가 가진 부채는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남아있는 책들의 호통이다. 그게 자꾸 마음에 걸려 뭐라도 하게된다.



나는 요새 의도적으로 책을 본다. 책 표지를 보고 책 소개를 유심히 보고 내가 좋아하는 책만 아니라 남들이 좋아할 만한 책도 읽는다. 예전 같으면 무시하거나 별 신경도 안 썼을 내 취향이 아닌 책들을 연구하는 마음으로 구석구석 바라본다.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들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까 싶어서.


요새는 공짜를 마다하지 않아서 기쁘게 아무 책이나 받아든다. 그런 책을 읽는데 차마 이걸 리뷰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해한 책은 아니지만 매력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책은 세상에 왜 나오는 걸까. 못된 심보를 속으로 표출했다. 그러다가 혹시 나의 책을 보고 누군가도 종이 낭비란 생각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싹했다. 그래서 그 책에 미안해져서 오늘은 남은 부분을 마음을 활짝 열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중 꽤 맘에 드는 부분을 발췌하는 데 성공했다.


정리하고 보니 책이 또 꽤 그럴듯하게 보였다. 할 만큼 했다는 뿌듯함과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묻고 서둘러 진짜 읽고 싶었던 '문보영'시인의 신작 에세이를 펼쳐 들었다. 


나는 문보영 시인이 좋다. 아마 시인 중에 누굴 제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문보영 시인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그녀의 시보다도 그녀의 산문을 더 사랑한다. 시인인 그녀의 본업 같은 시보다 부업인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니 난 문보영 시인을 좋아하는 게 맞는 것일까. 책을 넘길 때마다 자꾸 줄을 치고 필사할 문장이 넘쳐나서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녀의 책은 아직 날 실망시킨 적 없다. 이건 대단한 거다. 나는 엄청난 기대와 설렘을 안고 흥분한 상태로 늘 그녀의 책을 펼쳐보기 때문이다.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아직 그녀의 유튜브도 구독하지 않고 일기도 구독해서 읽은 적 없다. 참 힘이 빠지게 만드는 불량 팬이다. 다만 그녀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한 권씩 모으고 있고 누구보다 깊은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책 장을 씹어먹듯이 한 글자도 놓칠 새라 열심히 책을 읽고 문보영 시인이 좋다고 백 번쯤 말할 뿐이다. 아마 그녀는 이런 나의 행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 같고 그렇게 믿게 만드는 문보영 시인의 글이 좋다.
(서평단을 신청했는데 결과도 몰랐다. 어제 무심히 도착한 택배를 받아들고 너무 좋아 길길이 날뛰었다)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십 가지도 넘지만 그녀의 글을 읽고 나면 못 견디게 글이 쓰고 싶어 진다는 점이 그녀의 책을 더 좋아하게 한다. 이 글에는 그녀의 정신이 1g 정도는 깃들까? 모방한다 해도 별 수 없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도 흔들리지 않는 뻔뻔한 사람이니. 



나는 문보영 시인이 유명해서 좋은 건 아니다. 무명의 상태에서 그녀의 글을 읽었어도 똑같이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해서 좋다. 나 혼자만 그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다행이다. 그녀가 엄청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면 좋겠다. 내 취향이 대중적이라는 건 퍽 기쁜 일이다. 아웃사이더인 생이 길었지만 어딘가에 속할 때 가장 기뻐하는 게 또 나다. 



그러니까 이 모든 혼란스러운 글들은 사실은 나를 사랑해달라는 분명한 외침일 뿐이다. 내 목소리가 들릴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다. 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사랑해주길 바란다. 나를 사랑할 필요도 없고 작가인지 아닌지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아니 기다린 적 없더라도 우연히 본 이 글을 보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다음 글이 있으면 읽었을 텐데.라고 무심결에 생각해주길 바라는 그런 사랑을 받고 싶을 뿐이다.


뻔뻔하다고 해도 소용없다. 나는 당신이 내가 문보영 시인의 글을 사랑하듯 내 글을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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