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들어 생생한 꿈을 자주 꾼다. 얼마 전 꿈에서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대기번호가 너무 길어져 무인 예약이 되지 않았다. 안에 들어가자 그 시간 이례적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의 작은 결혼식이 열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결혼식장을 엿보고 나와서는 알 수 없는 의식의 흐름에 의해서 정부와 군인들의 통제가 있었고, 결혼식장 바깥에서 둥그렇게 서서 대기해야만 했다. 내 주변에는 친구들과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그리 불안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결혼식장이 통째로 하늘로 두둥 날아올랐다. 마치 UFO처럼. 순간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점점 멀어지는 땅을 바라보며 떨어질까 봐 두려움을 느꼈지만 곧이어 의외로 아무 문제없이 우린 잘 날고 있으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다. 그 순간 마음인지 외부인지 우리가 선택된 자들이며 우린 의식의 확장을 위해 이 희한한 비행물체에 올라탔고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희한한 일을 겪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고 두려움 없이 평화로워졌다.
나는 요새 자주 운다. 수도꼭지가 고장 난 것 마냥 울고 싶지 않을 때에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 멈추고 싶어도 멈춰지질 않는다. 나는 평온하고 안정되어 있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를 알 수 없이 답답하고 불안해졌다. 너무 행복했다가도 스르륵 절망감 쪽으로 한 없이 치우쳐 삶이 너무 막막해지기도 한다.
어제는 L이 1년 후, 3년 후, 5년 후, 10년 후,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 것 같냐고 물었고 그 질문에 폭발하여 '몰라! 모르겠다고.' 짜증 섞인 대답을 하고는 혼자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에도 내가 낸 화는 그에게 부당하며 그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 확실하게 그가 날 사랑하고 이해하고 노력하고 배려하고 있지만 내게 아무런 위안도 줄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내가 두려운 건 12월이 되었는데도 자잘한 기쁨을 느끼는 감각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전 날 기쁘고 감동스럽게 만든 소박한 순간은 꿈처럼 모두 사라져 버렸다. 아니, 오히려 꿈속에서 나는 더 기쁨을 자주 느꼈다. 나는 멈춰있는 데다가 감탄이나 감동할 수 없는 내가 점점 죽어가는 게 아닐지 의심스러워졌고 그러다가 내가 삶을 놔버리고 싶어 질까 두려웠다.
이 기묘한 슬픔은 구름처럼 날 감싸고 있다.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지 않고 언뜻 보면 꽤나 맑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왜 나 자신은 벗어날 수 없는 위기에 휩싸여 있는 것만 같을까?
나는 어디라도 도망치거나 뭐라도 해야 하거나 어떻게든 변화하지 않으면 영원히 침몰해버릴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두 눈을 크게 뜨고 그 아무것도 날 압박하거나 괴롭히는 실체가 없단 사실을 확인하고는 안도감과 슬픔은 동시에 느낀다.
어제는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잠시 고민해보았고, 조금의 위안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극을 제외하고는 내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잠깐잠깐 누구라도 만나서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그것 또한 크게 나를 기쁘게 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나는 무언가를 말하거나 누군가를 만날 여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를 만나야 할 상황이며 가장 기쁜 상태로 그를 위해 진심으로 연결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시간 동안은 한결 나아지겠지만 그 이후 더 지쳐버려 가라앉을 게 뻔했다.
오늘 아침에는 깨어난 이후 한참이나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다 마지못해 아침밥을 먹고 운동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기분이 다운되자 몸이 동기화되었는지 텐션이 아주 낮았고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힘든 동작이 끝나자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운동을 할 때만큼은 날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라거나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 오로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운동을 하고 있다고 몰입하려 애썼다.
돌아와서는 몇 장 읽다 잠시 멈춘 '유리알 유희'를 스타벅스에 가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소한 라떼를 마시며 나는 나를 부정하고 살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자신을 확장하기 위해서 유연하고 열린 태도도 자신의 한계와 부족한 점을 인정하는 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자신 혹은 자신의 삶에 대한 부정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적어도 나만큼은 나와 내 삶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애인이 되어줬어야 했다.
몇 달간 내가 가장 자주 했던 생각은 내가 틀렸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고 어쩌면 삶의 방식이나 태도 선택 또한 내 생각만큼 지혜롭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미 지난 과거를 후회하거나 자책하는 건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며 이제라도 나를 위해 좋은 선택을 내리고 부족한 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애썼다. 그러나 중심추를 제거하고도 흔들리지 않게 홀로 서기란 내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였다.
그렇다고 삶의 방향을 틀어 모든 걸 부정하고 갑자기 반대로 뛰어 들어가 만회하듯이 다른 길을 가려는 나를 붙잡고 내 영혼은 자신을 말살하지 말라고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완전하진 않지만 분명 이유가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까지 한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걸 모두 부정해버리는 건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아 모든 게 무너진 기분이 들게 한다.
울고 싶은 기분과 다시 내 안에 강하고 단단한 추를 하나씩 쌓아 올리는 내적인 힘을 동시에 느꼈다. 세상이 뭐라 해도 설사 내가 틀렸고 다른 날엔 다른 생각을 한다 해도 다시 나를 믿어주고 싶다. 나를 기쁘게 해 주며 살고 싶다. 나를 사랑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일만 하며 살고 싶다. 이 기쁨은 쾌락도 아니고 고통 없는 편안함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귀를 닫고 매몰되어 혼자 살고 싶진 않다. 나와 다른 걸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알고 필요하다면 유연하게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살고 싶다. 그러나 가장 중심에 있는 중심의 추를 다른 사람의 언어와 생각으로 채우고 싶진 않다. 설사 그게 변화한다고 해도 오로지 내적인 결정에 의해 억지나 강요가 아닌 사랑과 자연스러움으로 변화하고 싶다.
아니, 스스로에게 그것 외에 아무것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 뭐가 되라고 틀렸다고 증명하라고 내몰고 싶지 않다. 틀렸다고 해도 그게 나의 완전함과 사랑의 길이라면 그게 내가 내린 선택이라면 그 길 위에서 조용히 살다 가도 좋다. 지금의 삶이 틀렸어도 좋다. 어리석은 선택이고 모두 후회해도 좋다. 그래도 나는 오늘의 나를 내가 느끼는 충만한 삶을 사랑할 것이다. 다시는 중심추를 갈아 끼우거나 의심하고 싶지 않다. 괜찮아. 나는 언제나 너의 곁에서 함께 걸어갈게. 너무 조급하게 변화하려고 하지 마. 나는 영원히 널 사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