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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Apr 03. 2022

나의 사적인 명상 기록

명상이 일상 속 레이어가 되길 바라며


2년 전 삶이 질이 달라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란 제목으로 명상에 관해 글을 썼다. 가끔씩 명상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묻거나 자신이 명상을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지닌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명상은 그 어떤 경험보다도 더 내밀하고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경험이기에 일반화하거나 보편화할 수 없다. 정답이 있거나 왕도가 있는 것도 아니며, 온전히 내가 겪는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하기도 꽤나 까다로운 작업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가 아닌 명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이야기와 체험 수기가 많아졌으면 한다. 개인마다 완전히 다른 경험이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의 이야기가 오히려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다양성이 되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여전히 초보 명상러이지지만, 글과 명상을 좋아하고 명상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기에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사적인 명상 체험 일지를 적어둔다. 




01 명상 방법


꾸준히 명상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짧은 시간 명상부터 시작했다. 방석에 아빠 다리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유튜브에 있는 10~15분짜리 가이드 명상을 틀고 그 지시에 따라 명상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명상을 해보며 제일 마음이 편안해지는 명상을 실험하듯이 찾았다. 싱잉볼 버전의 차크라 명상이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날그날 테마에 맞춰 주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로 가이드 없는 명상 음악을 틀고, 따로 시간을 재지 않고 명상을 하고 있다. 조용한 날에는 아무 음악도 틀지 않고 명상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방석에 아빠 다리로 앉아 명상을 시작한다. 밤에 잠들기 전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앉아서 명상하고 그렇지 못한 날은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짧게나마 명상한다.


짧으면 10분, 아주 길면 1시간까지 명상을 하고, 보통 30분가량 명상을 한다. 명상을 꼭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려고 하지는 않는다. 좋고 편안해서 명상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가 너무 피곤해 잠자리에 들 때는 의식 없이 지낸 것 같아 조금 아쉬운 정도이다.




02 명상할 때의 마음가짐


어찌 보면 명상의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내면의 마음가짐이나 목적에 대해 적어두고 싶다. 


처음 명상을 시작할 때는 몸과 마음이 진정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명상을 했다. 어릴 때부터 생각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타입이었고 감정이 격하게 요동쳤기 때문에 기쁘다, 행복하다는 감정은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편안하다, 평온하다는 느낌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고통이 사라지길 바라며 명상을 시작했다. 감정의 바다의 폭풍이 잠잠해지고 고요하기를 염원하며 명상했다.


그 과정에서 명상에 집중이 되지 않은 날도 있었다. 특히, 감정과 연관된 특정 사건이 강하게 떠올라 떨쳐낼 수 없는 날에는 마치 증폭기를 매단 것처럼 명상할 때 그 감정이 더 격렬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안녕! 너는 어딨어?'라고 목소리를 내며 중심을 잡으려고 했다. 그 생각에 딸려가지 않는 동시에 그 생각을 무시하거나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억지로 외면하면 다음번엔 더 강하게 그 생각이 몰려올 것임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감정적 동요를 몸이 일으켜도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괴로워하지 않으며 괴로워하는 몸과 마음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정도 그 시간을 보내면 그 안에 내가 왜 괴로워하는지 그게 작동하는 기제가 무엇인지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가능해졌다. 그게 이유를 제대로 알아주자 그 생각과 감정은 잠시 머물러 내 몸을 훑고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건 사안마다 달라서 단 번에 파악이 되고 사라지는 사건도 있고, 이유를 알았다고 생각했는데도 내내 떠나지 않고 오래도록 날 괴롭히고 지배하려고 들던 사건도 있었다. 그럴 때도 나를 미워하거나 그 사건 감정을 미워하지 않고 분명 이유가 있고 내게 말하려는 게 있을 거고, 언젠가 난 그것을 이해하게 될 거고 그때의 나는 한층 나은 인간이 되어 있을 거라고 나를 응원했다. 


그 과정에서 내 안에 주로 나타나는 감정적 조건화들을 하나하나 씻어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에서 명상은 생각을 억누르거나 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이 원활하게 지나가는 것을 자각하는 활동이란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다. 몸, 감정, 객체에서 3인칭 관찰자처럼 그러나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명상이기도 하다.



처음 원룸에서 감정과 생각이 멈추고 아무것도 없이 그저 존재함이 느껴지는 평온을 느낀 날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자리로 돌아오면 다시 평온해질 수 있겠구나란 행복이 느껴져 삶이 너무 감사해 눈물이 났다. 물론, 그 경험을 한 번 했다고 매일 그럴 수 있진 않았다. 그러나 다른 조건 없이 내 몸과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그런 상태가 존재한다는 확신 만으로 많은 게 괜찮아졌다.



최근엔 명상을 하며 생명 에너지를 느껴보려고 한다. 들숨과 날숨을 내쉬는 코와 부풀어졌다 작아지는 폐와 배, 횡경막을 느껴본다. 내게 보이지 않는 빈 공간을 향해 응시한다. 몸속 미세한 변화를 명료한 의식으로 느껴보려 한다. 사랑과 감사로 온 몸을 채우는 시각화를 한다. 가끔 사건이 생기거나 감정적 동요가 생길 때는 어디가 불편한 지 살핀다. 주로 심장 쪽이나 가슴 밑 하복부가 찌릿하거나 막힌듯한 답답한 느낌이 든다. 저항을 내려두고 두려움이 어디있는지를 확인하며, 다시 나를 세상에 열어본다. 


마지막 마무리는 이런 식이다. 
'감사합니다. 무엇이든 좋다. 오라.'



03 명상의 자세


명상을 하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내 다리였다. 나의 굳은 다리와 틀어진 골반으로는 아빠 다리 자세로 편안하게 앉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석을 사서 엉덩이 뒤에 깔고 앉으니 조금 버틸 만했다. 


너무 아프거나 저리면 다리를 피거나 다리를 바꾸었다. 지금은 처음에 비교해서 자세가 좋아졌고 복부의 힘도 생겼기에 덜 아프긴 하다. 그러나 오래 명상하는 날은 여전히 다리가 저리고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땐 무시한다. 명상에 깊이 들어간 날은 그게 너무 좋아 그 상태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불편해하는 다리를 본다. '그래, 불편하구나 몸은 불편해하고 있군. 응 그래 알겠어. 별로 큰 일 날 일은 없어. 괜찮아.' 조금 더 편안한 쪽으로 신경을 보내면 곧 괜찮아진다. 

눈을 뜨고는 가만히 다리를 펴고 피가 다리를 순환하는 상상을 하며 고맙다고 다리에게 말한다. 



04 일상에서의 명상


매 순간 깨어 있는 건 피곤하고 품이 드는 일이다. 그렇지만 무슨 일을 할 때든 깨어나 의식하고 응시하는 명상의 마음이 되면, 그 일의 의미가 달라지고, 내 상태가 달라지는 걸 알고 있다. 예전에는 설거지나 빨래가 귀찮았다. 아침에 일어나 잔뜩 쌓여있는 그릇을 보며 지겹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요즘에는 그런 반복적인 순간, '오 이게 지겨워하는 상태구나'라고 생각한다. 손에 닿는 물의 촉감, 그릇을 만지는 촉감을 느끼며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집중하다보면 설거지가 꽤 멋진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런 마음으로 설거지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편안한 곳에서 편리하게 사는 일상의 노동 하나하나가 축복처럼 느껴진다.


과거 내게 일상은 단조로움과 지루함,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겨우 이러고 살려고 태어났나 하는 오만한 자기애가 강했다. 의식을 깨우고 몸과 마음을 비워 거기 무엇이 들어오는지 볼 수 있는 상태에서 단조로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변화와 자극, 거기에 따라 달리지는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흥미롭다. 아무 일도 없어도 내 몸과 마음은 휙휙 잘도 변화한다.



물론 지금도 깜빡하고 잠이 든다. 무언가에 푹 빠져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영상을 볼 때, 맛있는 걸 먹고 또 먹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을 때, 어떤 걸 살 지 뭘 해 먹을지 고민할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사라지고 시간은 어느새 저만치 흘러가 있다. 그 순간 의식을 잃었고, 내가 무얼 했는지 그때 내 상태가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명상하지 않은 채 보낸 시간이고 그럴 때 나는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기도 하고 감정과 생각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도 한다. 물론 그덕에 행복할 때도 많다. 


행복할 때는 크게 관여하지 않지만 화가 나거나 실망스러울 때 무언가가 두렵거나 경계될 때,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명상 하는 마음가짐으로 내 안에 자리를 찾아 모든 것을 응시한다. 이질감이나 막힌 곳이 없는지 머리가 아프지 않은지 이 감정이 과거의 어떤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지 내가 풀어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살뜰히 살핀다. (그 과정은 끝이 없다)



명상은 내가 알게 된 가장 든든하고 강력하고 믿을 만한 삶의 도구이다. 채우려고만 하던 가난한 마음에서 벗어나 바삐 초조해하며 욕심을 부리던 내게 명상은 비워내는 지혜와 평화를 가르쳐주었다. 삶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 삶이 한결 수월해진다는 걸 천천히 알려주었다. 명상은 레이어이다. 나는 그 레이어를 깨어있는 동안 내내 겹쳐 삶을 경험하고 싶다. 모든 것이 명상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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