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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Feb 05. 2022

아이들이 내몰리는 과정

왜 소년들은, 소녀들은 거리를 헤매게 되었나

 올해면 아이들을 만난 지 6년째가 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이들이 나에게까지 오게 되는 과정은 6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내가 만난 청소년들은 모두 죽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들이다.


 정말 10명 중 10명,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폭력을 경험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는 가장 좋은 것을 받고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 한 아이들이 있다. 대부분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는 기본이고 아주 까마득히 어릴 적부터 폭력 속에 살았다. 그 폭력은 너무나 오래되고 지속적이어서 대부분 아이들은 그것이 폭력인 줄도 모르고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폭력의 90%는 친부모이다.


 부모들이 삶이 힘들 수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기도 하고, 사회적 어려움이기도 하며 그들 삶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그런 건 아이들에게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아이들은 정직과 도덕이 삶의 기준이 된다.


 나는 현장에서 찢어지게 가난해도, 부모가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어도, 아이를 사랑으로 키운 집의 아이들은 바르게 잘 자란 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하지만 집이 재벌 같아도, 아빠가 대기업을 다니고 의사이고 엄마가 변호사여도  아들이 봉고차를 훔쳐 몰다가 소년원에서 10대 대부분을 보내고 정신분열과 우울증으로 폐쇄병동에서 10대를 보내는 것도 보았다. 어린아이들은 생각보다 '우리 엄마 아빠가 돈이 없어서 싫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은 돈이 없는 부모를 함께 마음 아파하지, 돈이 없다고 삐뚤어지는 아이는 없었다. 부모가 큰돈을 벌면서도 마음 주기에 인색해서 아이가 삐뚤어지는 건 많이 보았다.


한 아이가 그랬다. 아빠가 실직을 하고 와 집 거실에서 술을 드시고 있더란다. 아빠가 울면서 삼 형제를 붙들고 이런 일이 있어 '미안하다'라고 했다고 했다. 아이는 내가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정말 열심히 지금도 산다.

 다른 아이는 그랬다. 아빠가 자기를 때리더라고. 왜 때리는지 몰라도 내내 맞았고, 자신은 가출을 해서 몸을 팔며 살았다고. 몇 년이 지나도 아빠는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고.


 아이들은 부모들, 당신들의 영원한 한편이다. 세상의 잣대로 바라보지 않다. 세상이 다 욕해도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아빠가 조폭이어도, 직장을 잃어도, 엄마가 술집 여자여도, 바람을 피워도 아이들은 부모를 사랑하도록 태어났다. 그런 아이들이 자신을 세상처럼 대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솔직하지 않다. 부끄러움을 숨기려 멀리하고, 때리고 욕하며 아이들에게서 도망친다.


 아이들은 대부분 '아빠가, 엄마가 왜 그러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그들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그 이유들을, 그리고 공감하고 돕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자기 부모들을 사랑하도록 태어나서 그렇다. 그들은 부모들을 사랑하러 온 것이 '아이'로서의 본능이다. 하지만 때리는 부모들은 진짜 그들의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 침묵하고 아이들을 때리면서 그들은 그들 자신을 속이고 아이들의 진심에서 도망친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부끄러워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부모들은 계속 때리고 도망친다. 그렇게 1년, 2년, 3년,

청소년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들을 포기한다. 부모에게서 이유를 '듣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일단 자신이 '맞아 죽거나' '미치지' 않기 위해 집을 나온다. 부모들만 아이들을 포기하는 게 아니다. 청소년들도 포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들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나는 가출을 6년을 하고 부모 때문에 사회 밑바닥 생활을 하는 아이가 막노동으로 번 돈 10만 원을 전부 아버지에게 주는 것을 보았다. 왜냐고 물었다. 정말 너무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널 때리고, 너의 수급권을 훔치고, 널 내쫓고, 네가 길에서 맞고 경찰서에 있을 때 오지도 않고, 네가 병원에 입원해도, 소년원을 가도 단 한 번도 면회를 안 오는데, 지금도 같이 안 사는데 왜 그랬냐고. 그 돈으로 너부터 이틀 굶었는데 밥도 사 먹고 샤워도 하고 집 월세도 내고 해야지.

아이가 나에게 말하기를,


아버지가 생신이라고 했단다.


난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러다 나중에 돌이켜 보니 사실 그 아이가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다. 많은 길 위의 아이들은 자신을 죽일 듯 때려도 참 미련하게도 부모들을 사실 사랑한다. 정말 사무치게 사랑한다. 말로는 실컷 욕하지만, 막상 아동학대로 고발하려 하면 아이들은 왜 인지 막는다. 아이들은 고발을 하고 나면 그들이 자신들을 영영 사랑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그들을 집에 두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온 거다.


하지만 그들의 부모는 모른다. 정말 죽어도 모른다. 그들은 죽는 날까지 아이들이 그들을 정말 사랑했다는 걸 모를 거다. 아니, 알아도 이용하는 부모들도 정말 많이 봤다.


 아이들이 처음 하는 가출은 그냥 나오는 거다. 맞다가, 욕을 먹다가 견딜 수가 없어서 그냥 슬리퍼만 신고, 심지어 맨발로도 그냥 나온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첫 가출이 초등학생 때라고 많이 말한다. 어린 아이라 뭘 알까, 아이들은 그냥 걷다가, 혹은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만나 놀면서 슬픔을 날려 보낸다. 그리고 어딘가 마음 한편에 묻어 버린다.


가출은 짧게 여러 번 반복되다가, 점차 여러 번 반복되며 길어진다. 그리고 그 가출이 영영 길어져 버리고 나서야 진정한 가출이 된다. 아이들은 친한 친구 집에서, 쉼터에서, 혹은 여기저기서 노숙을 하기도 한다. 점차 심해지면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오픈 채팅, 만남 어플 등을 통해 성매매나 가출팸 등을 찾아가게 되기도 한다.


가출 이후 범죄를 겪지 않은 가출 청소년은 거의 없을 거다. 집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아이들이 도덕적 문제를 마주칠 기회가 적지만, 가출 이후의 삶은 야생이다. 아무런 범죄를 겪지 않았다면 그 아이는 가출한 지 얼마 안 된 시작 단계이거나, 아니면 아주 운 좋은 아이다. 가끔 굉장히 똑똑해서 범죄를 피해 가는 아이도 있지만 가출 생활이 길어지면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 가출 청소년이 범죄에 빠지는 건, 사실 원래 싹수가 노란 못된 아이들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세상이 열심히 범죄를 가르친 탓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당했던 범죄를 저지른다. 완전히 창의적으로 새로운 범죄를 시작한 아이는 아직 나는 본 적이 없다. 나도 처음에는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은 다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을 계속하며 아이들을 들여다볼수록, 처음부터 가해자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였다. 도움받고 치료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그 상처를 안고 언제든 가해자로 변신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러운 것들을 아이들은 세상에서 어른들에게 배웠지 애들이 세상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피해자들을 치유하면 가해자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생애 처음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돕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발 죽기 직전이라도, 그들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미안함과 사랑을 표현했으면 좋겠다. 어떤 아이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돌아가실 때까지 듣지 못해서, 남은 평생을 '아버지는 나를 사랑했을까?' 라며 되물으며 산다. 부모들이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싶거든, 나는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그들이 상처 입은 세상에게 그랬으면 좋겠다. 그들을 영원히 마음에 품고 100년을 살아갈 아이들에게는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강하다. 강하지 않았다면 나에게까지 오지 못 했을 거다. 아이들은 목숨을 위협하는 물리적 폭력에서, 미쳐버리고 싶지만 미칠 수 없는 정신적 폭력에서 살아남았다. 나는 이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살아가는' 삶을 누리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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