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라 Jul 21. 2022

가로등 아래의 소년들 11

감정을 조절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

이 소년은 가난한 중국 시골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소년의 부모님은 장사를 시작했고 치밀한 근면 성실함으로 대도시로 상경했다. 순박하고 순수한 이 소년은 대도시의 휘황찬란함에 매료되었다. 부모님은 비싼 사립 기숙학교에 아들을 보냈다. 소년은 기숙학교에서 담배를 배워 사감 선생님과 맞담배를 피웠다고 했다. 소년은 한국돈으로 100만 원이 넘는 용돈을 받았고 그 돈을 펑펑 써댔다. 중국 환율로는 엄청난 돈이었을 거다. 소년은 중학생 때부터 대도시의 클럽을 쏘다니며 술, 패션, 춤, 그리고 감각을 배우고 즐겼다.


 그러던 중, 부모님의 사업이 기울었다. 가족들은 빚쟁이들을 피해 떠나야 했다. 겨우 중3인 소년은 먼저 가서 동생을 챙기고 있으라며 초등학교 1학년인 여동생과 함께 한국으로 덩그러니 보내졌다. 한 평짜리 고시원에서 말 하나 안 통하는 한국에서 소년은 아침이면 여동생을 깨워 밥을 먹이고 학교를 보냈다. 그리고 자신도 외국인 학교로 등교했다. 외국인 학교를 가도 말이 안 통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는 영어로 수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중국어, 한국어, 영어 속에서 힘겹게 어린 여동생과 버텨나갔다. 


소년은 참고 또 참고 참았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언제나 정의는 올바르고 세상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그리고 드디어 부모님도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여기저기로 막노동 일을 다녔다. 씀씀이는 이미 커져있었지만 이제 집은 여유가 없었고 소년은 부모님과 자주 싸웠다. 싸우고 집을 나가고 비행을 반복하다 소년은 우리 센터로 왔다.


처음 왔을 때 그 아이는 말이 거의 없었다. 아니 사실 말을 거의 못 한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한국어가 잘 안 되었기 때문에 나는 아이와 번역기를 돌려가며 소통했다. 아이는 센터의 형님인 D를 가장 좋아했다. 정 많고 따뜻한 D 덕에 소년은 우리 센터에 잘 적응했다.


이 아이는 진실하고, 속 깊고, 인내심 있고, 정의로웠다. 그런데 그게 너무 곧이곧대로 여서, 도저히 불의를 넘어가지 못했다. 아니면 어쩌면, 그건 불의를 못 참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 풀이에 이유가 필요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평소엔 좋은 형이고 친한 친구이고 착한 동생이자 믿음직한 학생이던 이 아이는, 벽돌로 학교 선생님을 교무실에서 죽이려 했다. 때문에 고등학교를 전학을 갔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도 교장 선생님을 때릴 뻔했지만 사과를 하고 학교를 다녔다. 우리 센터 문 앞에서도 강아지를 괴롭힌다며 지나가던 노숙자를 식 가위로 죽이려 들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착한 이 아이는 분노가 일어나면 주체하지를 못 했다. 그건 아마 사실 이 아이의 분노는 오랜 시간 누적된 것이어서 그랬을 거다. 아이는 참고 참으며 좋은 날이 오길 기다렸지만, 결국 그런 날이 오지 않았을 때, 이 아이가 느낀 절망이 분노와 폭력으로 바뀐 것이었을 거다.


다행히 아이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고 아이의 감정조절 능력은 점차 나아져 갔다. 그렇게 아이는 우리와 3년을 일했고 이후 자신의 감각을 살려 의류업계 일을 시작했다.

지금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자신과 동생을 위해 휴일 없이 14시간을 일했듯,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이 아이는 노력 끝에 좋은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정의롭고 열심히 살아간다.

나는 이 아이가 결과도 좋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그 날들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며 행복해지기를 기도한다.

이전 11화 가로등 아래의 소년들 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