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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May 04. 2024

#11. 넘쳐야 흐른다.

중독

나는 검정고시를 십사 개월 동안 공부했다. 당시 검정고시 합격 기준은 여섯 과목 평균 60점으로, 40점 이하의 과목은 따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검정고시는 시험이 어렵지 않고 기출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공부하면 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대입을 목표로 공부했던 나는 초중등부의 기초 과목을 6개월 그리고 고등부의 과정을 8개월 동안 공부했다. 부족한 과목은 새벽 반과 오후 반 특강으로 채워나갔다. 나는 독하게 공부했던 만큼 마음만 먹으면 대입도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나에게 공부는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아니라 고생 끝에 고생이었다.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첫 지하철을 타고 학원에 도착하면 그날 배울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 학원에서 쉬는 시간, 십 분을 한 시간처럼 사용했고, 공부하면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일반수학 정석의 함수 종합문제 8번을 일곱 시간 걸려서 풀면, 당연히 공부를 잘할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달랐다. 방정식 공식을 안다고 함수를 다 맞출 수 없었고, 영어의 8 품사를 이해했다고 문장의 5 형식을 통달할 수 없었다. 공부가 재미있으면 잘할 수 있다. 하지만 공부가 계속 재미있으려면 잘해야 한다. 공부는 잘하면 재미가 있지만, 잘할 수 없으면 그 재미가 빨리 소진된다. 그렇게 공부에 대한 나의 열정도 점점 시들어 갔다.  

  

같은 반에 담배를 피우면서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는 누나가 한 명 있었다. 학원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나는 그 누나를 볼 때마다 "저렇게 공부해서 대학교 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판단은 보기 좋게 틀렸다. 그 누나는 연세대학교에 합격했다. 술만 먹고, 담배도 피우고, 공부도 안 하는 누나가 연세대학교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모범생은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연애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답답하다.) 그런데 재수할 것으로 생각했던 누나가 연세대에 합격한 후, 생각이 복잡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머리가 좋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못 하는 것이고, 그 누나는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 역시 착각이었다. 그 누나는 외고를 2학년 다니고 중퇴한 실력자였다.




검정고시와 수능을 준비하면서 내가 배운 것은 두 가지였다. 공부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었고,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부는 습관이라고 말한다. 습관은 똑같은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생각과 반복의 결과물이다. 이런 점에서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행동의 반복 곧 생각의 체현(體現)이 필요하다. 생각을 먼저 하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면서 나중에 생각하는 습관 말이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열심히 하면 공부를 잘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수백 번 되풀이하면서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노력은 보상받지 못했다. 검정고시는 통과했지만, 수능성적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실패라고 생각했던 검정고시의 경험이 하나의 퍼즐 조각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에서야 맞춰본다. 만약 내가 큰 형의 말대로 검정고시를 하지 않았다면, K 학원에서 조폭 형이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다는 경험을 못 했다면,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지 않았다면, 공부에 대한 나의 그림은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검정고시 때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앞으로 언급하겠지만) 군 생활 동안 하루 한 시간 삼십 분을 쪼개서 천자문, 책 100권, 펜글씨 교본 4권, vocabulary 2200을 암기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미국 유학과 박사과정을 통해서 공부의 결과를 습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상학자 메를로-퐁티(Merleau-Ponty)에 따르면,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현상이다. 진짜는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 우리는 공부라는 거대한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 정상에 도착한 자기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등산에 필요한 옷과 장비를 챙기면서 나는 할 수 있다고 수없이 다짐한다. 하지만 예상할 수 없었던 것들이 산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보이기 시작한다. 질퍽한 땅과 울퉁불퉁한 돌 그리고 가파른 언덕은 내가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후회하게 만든다. 끝도 없이 펼쳐진 험난한 길과 쏟아지는 땀 그리고 끊어질 것 같은 호흡은 왜 내가 바다가 아닌 산을 선택했는지를 스스로 원망하게 한다.  


"나는 처음부터 산을 오를 수 없었어. 짧은 다리와 선천적으로 약한 체력을 가지고 어떻게 저곳에 도착할 수 있겠어. 저기 산 정상에 있는 사람은 나와 달라. 그들은 다리도 길고 지칠지 모르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고. 난 정상에 오를 수 없어."


아니다. 오를 수 있다. 오를 수 있는 습관을 만들면 된다. 짧아도 걸을 수 있고, 힘들면 쉬면 된다. 산을 오를 수 없었던 것은 지금까지 실패에 익숙했던 습관 때문이다. 마음만 앞서고 쉽게 포기했던 그릇된 습관 때문이다. 만약 보이는 것이 실패였다면, 보이지 않는 것은 실패의 의미일 것이다. 실패할 것 같으면 실패하면 된다. 또 실패할 것 같으면 또 그렇게 하면 된다. 다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실패에 적응하지 말고,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을 위한 하나의 퍼즐 조각이었다는 사실을 어느 날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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