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길이 식물로 덮인 무질서한 자연을 보며
“으 뜨거워.” 뜨겁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여름이었어요. 밖에 나가도 뜨겁고, 차를 타도 뜨겁고. 40도 이상으로 데워진 차 안의 가죽시트는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요. 어릴 적 햇빛을 돋보기로 모으면 검정 종이가 탔듯이, 차 안의 검은 가죽시트가 언젠가는 타 버리는 게 아닐까, 엉뚱하지만 그럴듯한 무시무시한 장면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이 뜨거운 여름날, 7월 29일과 30일에 충청북도 제천으로 식물조사를 다녀왔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현장조사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날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목적지로 출발하면서 같이 가는 동료에게 가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더니 웃더라고요. 본인도 이번에는 그랬다면서.
식생지도를 그리기 위해 식물 분포의 경계를 확인하고, 어떤 식물이 살고 있는지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 곳은 직접 숲 근처나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해요. 너무 뜨거운 한낮인 한 시에서 네 시 사이에는 주로 차를 타고 접근 가능한 곳의 식생지도를 먼저 그렸어요. 햇빛의 강렬함이 한소끔 식은 후에 차에서 나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분명 카카오맵에서 길이 있다고 안내해 줘서 왔건만, 시멘트 길과 흙길이었던 곳을 덩굴식물인 칡이 점령하고 있어서 더 이상 차가 올라갈 수 없었어요. 이 장면을 보자, 10년 전에 읽었던 앨런 와이즈먼이 쓴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인류가 사라진다면 지구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부제의 흥미진진한 책이었어요.
# 인간이 사라진 바로 다음날, 자연은 집 청소부터 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던 집들은 금세 지구 표면에서 사라져 버린다.(p.31)
# 이러한 초기의 개척자 식물들은 도로포장이 깨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p.46)
# DMZ(비무장지대)는 1953년 9월 6일부터 사실상 인간 없는 세상이 되었다.(p.259)
인간에 의한 교란이 없는 곳은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갑니다. DMZ가 생기고 인간의 출입이 통제된 지 72년이 지난 지금, DMZ와 민통선이북지역은 하천도, 습지도, 산림도 모두 고유의 모습을 찾았어요. 전쟁은 인간에게 상처를 남겼지만, 자연은 치유되었습니다. 38선을 지키는 군인들은 역설적으로 자연도 지키고 있습니다.
"5,000년 동안 농사지었던 땅은 모두 습지가 되었다(p.262)"
논은 습지가 되었고, 원래 숲이었던 곳은 다시 울창한 숲이 되었습니다.
'인간 없는 세상 연대기'를 보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들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대부분 50년, 목조가옥은 기껏해야 10년을 못 버틴다고 합니다. 고가도로를 지탱하던 강철기둥들은 20년이 지나면 부식되고 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100년 후에는 코끼리들이 상아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어 개체수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런 글을 읽으면 소유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후위기’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하여 ‘기후재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요즘입니다. 심상치 않은 날씨로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지금처럼 극단으로 치닫다가는 언젠가 인간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해집니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도 숲에 가면 시원합니다. 길 없는 곳을 헤치며 들어간 숲 안에서, 자연과 가장 가깝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