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곳을 다니며 조사하다가 길 잃은 이야기
식물 조사하는 일을 하다 보니, 저의 일터는 식물이 자라고 있는 곳은 어디 나입니다. 산, 하천, 호수, 갯벌, 사구, 버려진 경작지, 계곡, 길가 등등. 한 줌의 흙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씨앗이 날아와 정착했는지 모르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어떤 장소에 여러 가지 씨앗이 날아오더라도 그 환경에 맞아야 싹을 틔웁니다. 식물들이 왜 그 자리에서 자라는지, 어떤 형태를 이루어 자라는지를 기록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식물이 자라고 있는 장소 중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가장 넓은 곳은 산이예요. 그래서 다른 장소보다 산에 제일 많이 갑니다. 출발하기 전, 조사지역으로 가는 길과 소요 시간을 파악하고요. 대략 조사에 필요한 일수를 계산해서 몇 박 몇 일로 갈지, 누구와 함께 갈지를 결정합니다. 조사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도로나 길을 파악하고, 도로나 길에서 조사지점까지의 거리와 소요 시간을 어림짐작합니다. 그리고 출발.
십일 년 전의 일입니다. 동료들과 계룡산국립공원의 식물을 조사할 때였어요. 등산로를 따라 걷다가 길이 없는 숲의 안쪽으로, 안쪽으로 들어가 온전히 보전된 곳을 조사했어요. 숲의 안쪽은 등산로 옆의 식물과는 종의 구성이 많이 다릅니다. 숲의 안쪽에는 미세한 지형에 따라 자라고 있는 식물들이 다르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식물을 기록하기 위해 숲의 안쪽을 헤치며 찾아다녔어요. 그러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등산로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숲에서는 휴대폰이 터지지 않았어요. 오후 세 시가 넘은 시간, 이제 조사를 마치고 내려가야 했어요. 지도 앱이 작동하지 않으니, 큰일 났습니다. 이쪽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조사하다가 종종 길을 잃어요. 그래서 길을 잃었을 때는 일단 계곡을 찾아라, 그리고 계곡을 따라 쭉 내려오라는 말들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어요. 길을 잃은 순간 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길 없는 산을 헤치며 다녔던 감으로 계곡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한참을 내려왔을 때, 산세가 완만해지면서 피부에 닿는 공기가 싸한 느낌이 들었어요. ‘음기가 강한 곳이구나.’ 조금 더 내려오니 불이 켜진 흰 초와 뚜껑이 열려 있는 녹색 소주병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조금 더 내려오니 허름한 집 한 채가 보이는데, 무당이 거주하는 집이었어요. 느낌이 쎄 하면서도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그날 봤던 생소한 풍경과 느낌이 되살아납니다. 십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며칠 전의 일처럼 생생한데요. 산에 다녔던 경험과 무당이 모시는 여러 신들의 보호하심 덕분이었을까요. 우리는 어둑어둑 해진 후 계룡산국립공원의 입구에 무사히 도착했고,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 길을 잃었던 당일은 마음이 급하고 불안하여 사진 찍을 여유가 없었어요.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날짜에 계룡산국립공원에서 촬영한 사진을 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