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기
글을 쓰는 동안 여명을 자주 봤다.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려고 동트기 전 집을 나설 때면 늘 어스름한 하늘 아래서 집 앞에 놓인 파란 쓰레기봉투를 치워주던 키 큰 청년과 마주쳤다. 평소에는 좀처럼 그와 만날 일이 없었는데 어느덧 활동하는 시간이 비슷해졌다. 그 청년도 생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방에서 몇 권의 책과 마주할 것이다. 그는 어떤 책을 주로 읽는 독자일까. 혹시 내가 편집한 책도 읽었을까. 가끔 글을 쓰기도 할까.
너무나 책을 만드는 사람의 글이다. 책 만드는 사람은 사람을 보면 그가 읽는 책이 궁금한 모양이다. 그의 연봉이나 이력, 행복과 불행을 짐작하는 대신에. 어떤 책을 읽을지 상상한다. 동시에 저자는 누구나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천진해보일 정도로 단단한 희망이 좋아서, 밑줄을 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