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했다는 말에 어느 선배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변하게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과연 선배들은 옳다. 아이를 갖고 내 세상이 무너졌다. 그리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건되는 중이다.
아이를 가진 뒤 가장 큰 변화는 평생 주문할 수 없는 음식이 하나 생겼다는 것. 바로 오야코동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계란과 닭고기를 올린 덮밥에 '오야코(부모와 자식)'라는 이름을 붙여도 괜찮은 태도는 영영 가질 수 없다. 그런 무감한 상태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오야코동을 먹는 사람들이 반인륜적이라거나 오야코동을 즐기는 부모는 있을 수 없다거나 하는 말은 아니다. (오야코동은 죄가 없다.) 내가 부모, 그리고 자식이라는 단어에 과몰입을 하게 됐다는 뜻이다. 비가역적으로.
부모가 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아이가 불행에 처하는 이야기는 볼 수 없게 됐다'고 고백한다. 나라고 다를 리 없다. 얼마 전에 남편과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봤는데, 극장을 나오면서 "남편, 우리 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해, 이제." 말했다. 앞뒤 맥락 없이 불쑥 꺼낸 말이었는데 남편은 "그래. 나도 그 생각을 했어." 결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 순간 남편과 내가 복기한 장면은 어린 코제트가 맨발로 겨울 숲길을 헤매는 장면. 심지어 나는 그 장면을 보다가 꺽꺽거리며 울고 말았다. 또르르가 아니라 꺽꺽. '시체관람'이라고들 부르는 적막한 객석에서 치솟는 울음에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예전에는 '안타깝네' 정도의 감정으로 넘겼던 장면이었다. 부모를 잃은 뒤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아이라니. 임산부는 슬프다 못해 공포스러웠다. '아무 선택권도 없는 아이를 우리가 세상에 내놓기로 했으니, 최선을 다해 번듯하게 살아남아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뮤지컬을 보고 며칠 뒤 남편과 다이소에 가서 8칸짜리 약통을 샀다. 칸마다 하루치 약을 넣어두면 그날 약을 건너뛰진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벌써 약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어른이 될 줄을 몰랐는데. 매일 밤 잠든 남편의 뺨을 쓸며 그의 건강과 안전을 기도한다. (여기에는 내가 요즘 통 잠들지 못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누우면 숨 쉬는 게 힘들다.)
"복직 일주일 만에 과로사한 공무원 워킹맘 얘기를 읽으며 떠오른 무교동 사거리의 어느 겨울날. 첫 아이 낳고 복직한 지 얼마 안 됐던 그 때,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다 불현듯 나는 울었다. ‘아, 나는 자살할 자유를 잃었구나.’ 어떻게라도 살아남아 새끼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 너무 무서워 거리에 선 채 통곡했던 그 마음이 그 사무관에게도 똑같이 있었을 것이다."
몇 년 전 박선영 기자의 칼럼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눈이 멈춰섰다. 글에 책임감과 사랑이 충격적일 만큼 무거워서. 요즘 그의 칼럼을 종종 떠올린다. 나는 이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무섭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