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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Sep 26. 2023

당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모른다

짧은 리뷰 

얼마 전 막을 내린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부대행사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룬 다큐감독들과 대담에 패널로 참석했다. 2022년 2월 24일에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는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다는 내 말에 폴란드 출신 감독님이 바로 반박을 했다. 전쟁은 2014년에 시작된 거라고.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바로 대답을 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거라고 배웠지만, 북한의 대대적인 남한 침략이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건 맞지만 사실상 그전에도 남한과 북한은 38선을 사이에 두고 국지적인 전쟁 행위를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이전에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우리가 한국전쟁을 1950년 6월 25일로 시작된 거라고 생각하는 것, 우크라이나 전쟁을 2022년 2월 24일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가 전쟁을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는 거라고 대답했다. 


전쟁의 발발 시점뿐만이 아니다. 전쟁의 원인, 전쟁의 양상, 전쟁의 책임, 전쟁의 결과 모두 단순하게 봐서는 안 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갈등과 이해관계가 극단적이고 폭력적으로 폭발한 것이 전쟁이다. 전쟁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쉽게 선악을 나누고, 쉽데 정의를 부르짖고, 복잡한 전쟁의 구조를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쉬운 판단이 위험한 까닭은 둘로 나뉜 이분법의 세계가 바로 군사주의와 폭력의 세계관, 다시 말해 전쟁이 작동하는 구조다. 아군 아니면 적군, 승리 아니면 패배, 아군이 승리하면 정의이고 패배하면 불의다. 이때 적은 섬멸의 대상이지 대화와 타협 혹은 불편한 채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일 수 없다. 전쟁의 논리 구조대로 사고하고 판단한다면 우리는 전쟁을 멈출 수 없다. <시스터 아웃사이드>의 저자 오드리 로드는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전쟁이 작동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막거나 중단시킬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전쟁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판단할 때는 늘 전쟁에 얽혀있는 복잡한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이해관계 모두를 살펴야 한다. 그건 무척이나 고된 일이기 때문에 보통은 쉽게 나쁜 놈을 찾아 단죄하고 싶어 진다. 마치 히틀러 한 명만 없었다면 유대인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처럼, 혹은 조지 부시가 아니었다면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처럼.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전쟁을 막아서고 싶다면 우리는 고통스럽더라도 전쟁의 복잡한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복잡한 문제는 복잡하게 인식하고 생각해야만 한다. 그 복잡함의 고통을 견디는 것이 평화를 위한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모른다>는 평면적이고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을 분석하는 책이다. 미국의 훌륭한 페미니스트 반전 단체 '코드 핑크' 활동을 하는 메디아 벤저민과 니컬러스 J.S. 데이비스가 썼다. 나는 이 책이 진영론에 입각해서 "푸틴 나쁜놈"만 되풀이하거나, "젤렌스키는 서방의 꼭두각시" 같은 말만 반복하지 않아서 좋았다. 전쟁에 얽혀있는 각자의 행동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고 다른 행동의 기회는 없었는지를 따져보아서 좋았다. 나는 이들이 평화활동가이기 때문에, 그리고 (평화활동가는 페미니스트여야 하기 때문에) 동어반복이지만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들은 러시아와 푸틴이 침략을 시작하고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잘못과 책임은 기본으로 삼고, 전쟁으로 치닫게 된 우크라이나 내부의 복잡한 갈등 양상을 설명하며, 러시아를 전쟁으로 내몰아간 미국과 나토의 직간접적인 전쟁 책임을 날카롭게 묻는다. 책의 분량만으로만 보자면 상대적으로 러시아보다 미국과 서방 국가의 잘못을 규명하는 내용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다고 이를 저자들이 교묘하게 러시아의 편을 든다고 이해하거나 양비론이라고 생각한다면 오독이다. 


이 책의 주요 독자는 러시아 시민들이 아니다. 이 평화활동가들이 만약 러시아 독자를 위한 책을 썼다면 반대로 푸틴과 러시아 정부의 잘못을 낱낱이 고발하는 글을 썼을 것이다. 서방 국가들과 나토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러시아에서 시민들의 반전 운동을 조직하려면 푸틴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전략적인 판단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에 위치한 코드핑크 활동가들이 전쟁을 멈추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심했을 것이다. 러시아를 비난하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 박수를 받겠지만 푸틴과 러시아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판단을 박수받자고 반복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이 전쟁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잘못을 알리고, 미국 시민들이 자국 정부에 대해 전쟁을 끝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평화협정을 맺도록 역할을 할 것을 촉구하도록 북돋는 것이 전쟁을 멈추는데 효과적이지 않을까? 러시아보다 미국과 나토에 대한 비판이 더 많이, 저 정교하게 들어가 있는 까닭은 이런 맥락을 살펴야 한다. 


나는 이 책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인사이트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저자들은 미국과 나토의 책임에 대해, 서방 국가들의 위선과 서방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 이야기들은 보통의 한국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정보들이다. 미국의 대외 정책과 나토의 방향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라도 이 책에 담긴 세세한 이야기들 중에는 처음 접하는 정보들이 있을 것이다. 가령 전쟁이 발발한 지 두 달 만에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470억 달러의 무기를 지원했는데 이는 미 국무부의 1년 치 예산과 맞먹고 바이든 행정부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데 쓰겠다고 한 금액보다 많다는 이야기(21쪽), 미국이 어마어마한 무기 지원을 하면서 레이시온은 생산 중단 예정이었던 스팅어 대공 미사일을 3억 4000만 달러어치를 팔았다는 이야기와 미국에 위치한 세계적인 군수산업체 록히드 마틴과 레이시온의 최고경영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을 거라고 주주들과 투자자들에게 말하고 다녔다는 이야기(110쪽), 전쟁 직후 전 세계의 유가가 오르자 미국이 우방국인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에 원유 생산의 증가를 요청했지만 두 나라는 거절했는데 이 나라들이 예맨 내전에 개입해서 살상한 민간인 숫자가 러시아가 살상한 우크라이나 민간인 숫자보다 훨씬 많고 이들은 주로 미국산 무기를 사용했다는 이야기(193쪽)처럼 새롭고 흥미진진한 사례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더 중요한 것은 전쟁에 어떻게 저항하고 전쟁을 어떻게 중단시킬지에 대한 저자들의 고민 방향이다. 대다수의 한국 시민들도 이 전쟁의 가장 큰 책임이 푸틴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러시아군이 저지른 끔찍한 전쟁 범죄에 분노한다. 한국에서 푸틴을 비판하는 건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판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행동이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백날 푸틴을 욕해봤자 전쟁에는 아주 조그만 영향도 끼칠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 시민들은, 한국의 평화활동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단시키고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을 어떻게 조직하고 어떤 액션을 누구를 상대로 해야 이 전쟁이 끝나는 것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 책이 그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미국 사회에서조차 저자들의 접근 방식이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전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와 전쟁에 저항하는 운동의 전략을 배울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이나 나토처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직접적인 책임이나 연관은 없지만, 전쟁이 지속되는 데에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다. 거듭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요청에 대해선 한국 정부가 거부하고 있지만 폴란드처럼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하는 나라에 부족한 무기를 파는 형식으로 우회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한화, KAI, 풍산 같은 한국의 방위산업체들은 록히드 마틴을 능가하는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또한 미래에셋자산운용과 키움투자자산운용 같은 한국의 금융기업과 국민연금 공단은 러시아 정부의 전쟁 자금줄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의 화석연료 회사들에 투자를 했고 전쟁이 일어난 뒤에도 투자를 철회하지 않았다. 한편 한국 정부는 푸틴의 동원령에 맞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러시아에서 도망쳐 나온 병역거부자 난민들을 인정하지 않고 난민 심사 자격조차 부여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전쟁에 저항하기 위해, 한국에 사는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평화행동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당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모른다>를 읽으면서 생각해 본다.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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