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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과 활동가

by 이용석 Jan 05. 2025

서울은 눈이 많이 왔나 보다. 어젯밤 한강진에서 밤을 지새운 시위대가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사진을 전없세 친구들이 보여줬다. 반팔 반바지 입고 다니는 치앙마이에서 보고 있자니 무슨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빙하기가 다시 찾아온 세상의 종말 같은 기분이다. 계엄 이후 사라진 현실감각이 이 사진을 더 영화적으로 느끼게 한다. 


옛날의 나였다면, 치앙마이에서 서울 집회 소식을 계속 찾아보며 참여하지 못하며 발을 동동 구르거나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 싸움과 한미 FTA 반대 투쟁을 열심히 하다가 병역거부로 구속된 나는 밖에 두고 온 일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8월 17일인가, 18일인가에 구속되었는데 그해 가을 결국 대추리 주민들은 최종적으로 마을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나는 그 상황에서 감옥에 갇혀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감에 날마다 무너졌다. 한미 FTA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반대를 하신 분도 많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을 신문에서 읽고선 모욕감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우리는, 나는 협상력 높이기 위해 반대 투쟁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 다음에 찾아오는 감정은, 내가 밖에 있어봤자 세상이 달라질 것이 없다는 참혹하고 무기력한 현실인식이었다.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편인데도, 당시 나는 과자를 앉은자리에서 다섯 봉지를 까먹었다. 초청유과 다섯 봉지는 내 입천장을 허물기에 충분했고 나는 부대끼는 속을 부여잡고 화가 나서 배가 아팠다. 


역설적으로 감옥생활 경험은 세상일을 여유를 갖고 바라보게 해 주었다. 내가 없어도 전쟁없는세상은 굴러갔다. 당연한 일이고 다행스러운 일인데, 어쩐지 나는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던 것만 같아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감옥 바깥세상의 큰일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이 처음에는 내가 중요한 역사의 한 국면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무슨 큰 손해를 본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나고 나니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에서 고유한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나는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한 것이니까. 그 뒤로는 개인적인 일들 때문에 중요한 집회나 사건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큰일이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회다 보니, 그 모든 사건에 직접 뛰어든다면 내가 버틸 수 없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탄핵 시위에 지금 몸이 함께하지 못하지만,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전없세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없더라도 다른 동료들이 훌륭히 해내고 있을 거고, 치앙마이에서 잘 쉬고 돌아가서도 내가 할 일이 많을 것이고 그때 잘 해내면 된다. 사회운동은 마라톤이고, 아무 때나 스퍼트를 해서는 안 되니까. 확실히 활동가의 호흡은 마라토너의 호흡과 닮았다. 물론 마라토너는 자기 페이스로 주행을 하다가 마지막에 스퍼트를 하고, 활동가는 중간중간 스퍼트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쨌든 긴 레이스를 자기 호흡으로 지속해 나간다는 점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활동은 마라톤이면서 이어달리기다. 우리 활동의 어떤 목표는 내가 죽기 전에 달성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내가 선배들의 활동을 이어받아온 것처럼, 내 뒤에 오는 누군가가 우리들의 목표를 향해 내 바통을 받아 들고 달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나, 이 탄핵 국면에서 전쟁없는세상은, 평화활동가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전없세는 작은 조직이고 큰 집회에서는 의외로 특별한 역할 없는 경우가 많다. 수십만, 수백만이 모이는 거리 집회의 목표와 요구조건은 아무래도 더 광범위한 사람들을 포괄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보수적이라서 나쁜 게 아니라, 이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모여서 더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대규모 집회에서 전없세처럼 뾰족한 주장을 하는, 소수의 인원으로 가시적인 액션을 하는 것에 특화된 전없세 같은 단체는 의외로 집회에 참여하는 보통의 시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게 있다면 우리 주장을 담은 피켓을 만들어 가는 정도일 뿐, 주도적으로 집회 주최단체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확실히 나는 대규모 집회나 행진에서 특별한 해방감을 만끽하거나 참가자들의 에너지로 임파워링 되지는 않는 거 같다. 좋은 분위기에 초치는 게 아니고 비관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나 또한 응원봉 시위와 젊은 여성들의 높은 참여율에 고무되어 있지만, 뜨겁게 끓어오른 뒤 일상의 시간이 돌아왔을 때 활동가들의 역할을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계엄은 활동가들에게도 예외적이고 전대미문의 상황이지만, 정치적인 주장을 하는 집회와 시위는 우리에게 일상적 시간이다. 탄핵 국면이 끝나면 돌아갈 일상이 있는 게 아니라, 이 투쟁의 현장이 우리의 일상이니까. 애정하는 평화활동가 수영이 자기 페이스북에 쓴 것처럼 사회운동은 "대부분은 버티고 지루하고 실패하고 무시당하는 것"이고 "냉소나 조롱과 싸우며 잘 버티다가 필요할 때 필요한 자리에 꼭 있는 것. 그게 사회운동이라는 업의 본질"이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이 대단한 응원봉 시위가 있기 전에도 민주노총과 전농, 참여연대와 전장연의 활동가들이, 퀴어운동가들과 기후정의 활동가들이, 인권운동이, 여성운동과 동물권 활동가들이, 그리고 우리 평화활동가 동료들이 실패를 쌓아가며 냉소와 조롱에 지지 않고 버티고 버텨왔다. 그렇게 켜켜이 쌓고 다져온 토대에 응원봉과 선결제가 더해져 큰 힘이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가슴 벅찬 남태령 대첩은 전농 활동가들의 트랙터 시위에서 시작되었던 것이고, 거기에 여성 청년들이 함께 하면서 감동적인 순간을 만든 것이 아닌가. 활동가들이 다 했다는 게 아니다. 다만 전농의 활동가들이 트랙터 시위를 기획하고 조직하지 않았다면, 그 이전에 일상적으로 식량주권과 농민들의 생존권을 위한 다양한 투쟁-정부 감시, 학습과 토론, 정책 제안, 시위와 직접행동을 해왔던 것이 트랙터와 응원봉의 역사적 만남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탄핵 집회는 앞으로도 수많은 결정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어 낼 것이다. 물론 광장의 속성상 아름답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혐오가 고개를 쳐들기도 하겠지. 사람들은 희망을 보다가 냉소를 겪게 되고 더러는 광장을 떠나고 때로는 다시 돌아오겠지. 윤석열이 탄핵되고 구속돼 이후에도, 한국사회가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간 뒤에도, 활동가들은 계엄 이전에 해왔고 계엄 이후에도 해온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또다시 실패하고, 무시당하는 시간을, 지루한 일을 버티고 버티다 필요할 때 필요한 자리에서 필요한 판을 열겠지. 그래서 나는 차분하게 끓어오르고, 오래도록 온기를 유지하는 뚝배기의 속성을 닮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예외적 시간을 일상으로 살아야 하는 활동가로서 나의 분노와 슬픔은 되도록 길고 오래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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