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
모로코에 가고자 하는 마음은 1도 없었어. 오히려 '모로코라는 나라? 들어는 봤지.' 정도였지.
그런데 모로코에 도착한 첫날, 나는 알았어. 내가 왜 모로코에 왔는지를.
어학원에서 크리스마스를 중심으로 3주의 방학이 있었어. 우리나라의 설날이나 추석처럼 서양 나라에서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큰 명절이잖아. 그래도 그렇지, 내 입장에서 3주 방학은 너무 심했어. 나는 이미 영국이라는 나라에 여행을 온 셈인데 또 어디로 가야 하잖아. 물론 꼭 어디를 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작은 마을에 3주 동안 가만히 머물러 있는다는 건 내 성격상 안될 말이었어.
어디로 여행을 가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어. 사실 영국 내에서도 여행을 거의 못했었는데 이미 겨울이었기 때문에 손을 호호 불며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고, 가고 싶은 데도 하나도 없었어. 영국의 우중충한 날씨와 홈스테이나 어학원 적응도 쉽지만은 않았고, 남자 친구와 헤어진 것도 한 몫해서 나는 우울의 끝을 달리고 있었지.
언제나처럼 비가 오는 어느 날, 어학원을 마치고 숙제를 하려고 내가 좋아하는 Nero 카페를 향했어.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접했던 나는 서양에서는 전부 다 주변 사람들이랑 눈 마주치면 '헬로' 하고 스몰톡을 나누는 줄 알았는데, 영국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 미국과는 다르게 마트에서 줄을 서거나 카페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어. 그런데 그날, 아시안을 찾기 힘든 그 작은 마을에서 그 보기 드문 일이 일어났지. 내가 앉아 있는 자리 옆으로 한 여인이 비를 맞은 개를 데리고 들어왔어. 그 개는 내가 좋았는지 흥분해서 내 자리 옆으로 올라와서 비 묻은 털을 한껏 내 엉덩이에 비벼대더라고. 그 주인도 얼마나 미안했겠어. 나는 한국에 있는 우리 강아지도 생각나고 해서 괜찮다고 말했어. 그렇게 우리 대화가 시작되었지.
"어머, 미안해요. 얘가 잘 안 그러는데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저도 개를 좋아해요."
"고마워요. 비가 정말 많이 오네요."
"그쵸, 늘 그렇듯이 말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도 좀 외롭지 않았나 싶어.
그녀가 말했어.
"여기 자주 와요?"
"네, 저는 이 근처 어학원을 다니는데 가끔 공부하러 와요."
"아, 사실 저는 여기로 이사온지 얼마 안 됐어요. 고향은 북쪽인데 모로코에 몇 년 있다가 돌아와서 이쪽으로 이사 오게 되었어요."
"많이 남쪽으로 내려오셨네요. 그런데 모로코에서는 어떻게 몇 년을 살게 되었어요?"
"제가 요가를 가르쳐요. 모로코에 여행을 갔다가 너무 좋아서 요가 강사로 몇 년 일하며 그곳에 있었죠."
모로코라고 하면 세계 테마 기행 같은 곳에 가죽 염색하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나에게 모로코에 대한 지식은 그게 전부였어.
"모로코에 살다 왔다는 사람은 처음 봐요. 저도 요가를 좋아해요."
"오, 그래요? 그럼 한 번 꼭 가봐요. 모로코는 참 매력적인 나라예요. 요가 스쿨도 많구요."
안 그래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사인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던 찰나에, 생각지도 못한 선택지가 뿅하고 등장한 것 같았어. 그렇게 그녀와 모로코에 대한 대화를 좀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모로코 요가 스쿨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지. 뭔가 매력적이고 체계적인 것 같은 홍보 사이트들에 뭔가 기대가 되기도 했어.
모로코에 가야겠다 마음을 정한 건 바로 그다음 날이었어. 같은 반인 스위스에서 온 S(공교롭게도 나와 같은 초등교사인 그리고 결국 모로코 일정을 일부 같이 하게 된)가 나에게 물었어.
"너 크리스마스 때 어디갈지 정했어?"
"아니, 아직 못 정했어. 정말 모르겠어."
"아직도? 이제 몇 주 안 남았잖아. 음.. 우리 오빠는 예전에 모로코에 갔다 왔는데 엄청 좋았대. 그걸로 책도 냈어."
"와, 책을 냈다고? 대단하다. 아니 그건 그렇고, 모로코? 안 그래도 나 어제 모로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
"응, 오빠는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해서 여행기를 낸 건데 나 같으면 못할 것 같아.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다 봤거든."
이틀 동안 생전 듣기도 힘든 나라 이름을 연속으로 들었다는 건, 만약 신이 없다 해도 이건 뭔가 있지 않나 싶었어. 왠지 이곳에 가야겠다는 확신이 생긴 거지. 그렇게 나는 요가 스쿨을 찾게 됐고, 안타깝게도 나에게 트라우마가 있는 서핑과 요가를 같이하는 스쿨이 제일 마음에 들어서 그냥 등록을 해버렸어. 그 스쿨이 모로코의 아가디르라는 지역에 있기에 나는 그냥 아가디르행 티켓을 끊었어.
홈스테이 부부가 나에게 물었어.
"크리스마스에 어디갈지 아직 못 정했어?"
"드디어 정했어요! 저 모로코로 가요!"
"정말? 너무 재미있겠다!"
"저도 정말 기대돼요. 모로코에 대해서 잘 모르고 상상도 안되지만요."
나는 정말 몰랐어.
내가 모로코에 가야 했던 이유를. 그리고 모로코는 스페인어나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이슬람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술을 안 판다는 것도.